앞서 다른 분의 글에 댓글을 달긴 했는데...
"민족" 개념이 근대에 나온 거다 보니 삼국시대 각국에 '민족의식'이 없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명확하게 '민족'이라는 개념을 가져오면 그렇긴 하죠. 근데, 최소한 한반도 내에서는 중국/일본과 비교되는 일종의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이 언어적으로 동류여서 소통이 가능했다고 하는 정황증거들이 넘치고요... 언어적으로도 그렇지만, 하나의 뿌리를 가졌다거나 혹은 하나로 묶일 대상으로 보는 의식이 있었기에 '삼한일통'과 같은 프로파간다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서 나당전쟁 때는 또 뜬금없이 고구려 유민들이 신라 편을 들어 당나라군과 맞서 싸우기도 했고요.
보다 명확하게 동류의식을 보여주는 근거는, 고구려의 천하관과 광개토대왕릉비의 내용입니다.
고구려는 천손(天孫)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세우고 그 천하관 내에서의 국제 질서를 수립합니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을 화(華)와 이(夷)로 표현했는데요 (중국의 화/이와 비슷하지만 대상이 다릅니다). 고구려인들의 천하관은 크게 셋 - 몽골고원의 유목민들의 천하, 중국인들의 천하, 그리고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천하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인들의 천하에 속한 이들을 (고구려 천하의) 화(華)로 구분합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중에서, 요약 발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3323#section-8
이쯤 했으면 짐작하시겠지만, 그 고구려인들의 천하 속 화(華) 에는 신라, 백제, 부여 등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광개토대왕릉비에 이런 문장이 들어가죠.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屬民)이었기 때문에 조공하였는데,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 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고상하게 말하면, (고구려 입장에서) 이(夷) 가 화(華) 를 공격했기에 출병했다. 라는 얘기고 ... 노골적으로 말해서, 우리 구역 애들 건드려서 빡쳤다! 는 뜻입니다. 백제나 신라 입장에서는 '누굴 시다바리로 보냐' 며 발끈할 수도 있는 얘기긴 한데, 어쨌든간에 관계 없는 다른 나라 애들끼리 싸운 게 아니고, 다른 놈들이 "우리 애"를 때린 걸로 볼 만큼의 동질성은 있단 얘기입니다.
조선이 중국에 조공을 했지만 그런다고 조선이 중국에 동류의식을 가졌을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건 조선이 중국의 천하관에 편입되어, (민족의식이 아니라) 서양과 구분되는 중국 천하관 하의 동류의식을 가지게 된 거죠.
고구려의 천하관 하에서는 중국, 북방 기마민족, 일본 등의 외부와 구분되는 고구려-백제-신라-부여 등 한반도 인근 지역의 천하관이었던 거고, 그 나름의 동류의식이 있었다는 거고요.
차후 나제동맹을 보면 신라, 백제는 고구려를 타협이 불가한 적국으로 봤습니다.
촉한과 손오가 조위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지만 세 나라를 각각 별도의 천하로 구분하지 않죠.
삼한이나 그 이후 백제 신라 고구려는 통일된 적이 없는데 수평 비교가 되나요...
삼국이 동류의식이 있었다는 박사 논문을 가져오시는 게 제일 좋지 않나 싶네요
그래서 그 정도로 팽팽한 한 나라라는 의식이 아니라, 느슨한 동류의식이라 표현했고요. 당장 백제부터가 고구려 왕자 출신인 온조, 비류가 세운 나라에 신라 역시 삼한일통이라는 프로파간다로 고구려 백제 신라를 엮은 것도 그런 동류의식의 발현이라고 보는 겁니다.
느슨한 동류의식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덜 싸웠나요?
아니면 느슨한 동류의식이 있어서 외적이 쳐들어 오면 다같이 싸웠나요?
둘 다 아니잖아요
먼저 동류의식이 뭔지 개념을 찾아 보신 후에
"느슨한 동류의식"이 뭔지 정의 부탁드립니다.
'외부'와 구분되는 '내부'끼리의 유대감이요.
유대감 맞나요??
"느슨한 동류의식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덜 싸웠나요?
아니면 느슨한 동류의식이 있어서 외적이 쳐들어 오면 다같이 싸웠나요?"
그게 기준이면 북한과 남한도 민족의식 따윈 없는 거겠죠.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나라인 적이 없었고요.
자꾸 왜 수평 비교가 불가한 사례를 가져오나요?
생각을 좀 합시다.
1000년 이상 같은 나라로 묶여 있었던 나라끼리도 발생하는 일인데
안 묶여있던 나라간에 발생했으니 서로 별개로 봐야 하냐는 얘깁니다.
1000년 이상 같은 나라로 묶여 있었던 나라끼리도 발생하는 일이고
500년 이상 같은 나라로 묶여 있지 않았던 신라, 고구려, 백제는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죠.
+
본인 주장이 반박 당했다고, 이렇게 인신공격까지 나와야 하나 싶네요.
더이상은 서로 기분만 상할테니 저는 여기서 하차 하겠습니다.
"느슨한 동류의식이 있어서 자기들끼리 덜 싸웠나요?
아니면 느슨한 동류의식이 있어서 외적이 쳐들어 오면 다같이 싸웠나요?"
“ 1000년 이상 같은 나라로 묶여 있었던 나라끼리도 발생하는 일이고 “
자신의 주장을 훌륭히 반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걸 인신공격으로 생각하신다면, 본인부터 개념을 찾아보라 같은 소릴 하시면 안 되죠.
조선이 중국에 동류의식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명나라 멸망 이후에는 진심으로 나중에는 우리가 중화 문명의 적자다~! 라고 까지 간 상황이었습니다만..
명나라 멸망 이전에도..
'有明朝鮮左議政寅城府院君 諡文靑公松江鄭澈之墓’그 뜻은 “(유명)조선국의 좌의정을 역임했고, 인성부원군의 군호를 받았으며, 사후 문청공이란 시호를 받고 호가 송강인 정철의 묘”란 뜻이죠. 16세기 이후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묘비에는 당사자의 관직과 성명 앞에 ‘유명조선(有明朝鮮, ‘명나라가 있는 조선’)’이란 말이 관용구처럼 따라붙습니다.
뭐 그래도 원과 정신적인 것을 공유하지 않은 고려와 달리 조선은 명의 인정을 받은 제후국으로 중화문명의 계승의식이 확실한 국가였고.. 그래서.. 역사적으로 동족인 여진을 같은 관점으로 천시했죠.(만주의 언어와는 몇일이면 말이 통한다고 했죠.) -_-;; 이성계는 솔직히 몇대 위가 여진에가서 살았고.. 결국 뭘 봐도 여진 출신인 건데 말이죠. ㅎ 이성계의 가병들도 핵심은 다 여진 출신 기마병들이었고..
그래도 청태종이.. 조선이 그나마 자신들과 기원이 같은 종족인지라.. 절만 받고 갔습니다만..
그 시기 유명조선.. 이거.. 사대부들이 무덤에 자랑스럽게 쓴 겁니다.
명나라 멸망이후에는 더 많이 보이죠.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의 눈부신 발전상을 소개하며 열하일기에서 “모든 분야에 장점들을 도입하자”고 제안하니 벼슬아치들이 "어찌 저 개.돼지만도 못한 오랑캐의 습속을 따르겠는가?" 라고.. 조선 사대부들이.. 마지막 중화의 계승자였죠. ㅋ
딱 로마 - 아르메니아 처럼 속국관계로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쵸. 딱 그래서 언어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최대한 널널하게 잡은 '동류' 의식이지... 혹여 밀접한 민족의식이라거나 형제, 같은 표현을 쓰면 오버라고 봅니다.
그것도 무신정권 시기 몽골의 침입에 의해서였죠.
뭘 그걸 극좌 운운하시는 건지...
같은 부류의 족속이란건 의식했었다고 하던데요.
하나로 묶어서 봤습니다.
중국과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동일한 애들은 아니다 이정도?로 보는게 대체로 맞을겁니다.
뭐 지금의 남북한 관계와 비슷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