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니라고 봅니다.
순전히 개인적 생각이니 참고만 바라고요. 제 주장은...
같은 계열이라는 의식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로마로 잠시 건너가 봅니다.
로마는 대제국을 이루고 후일 멸망 한 후에도
유럽 각국의 귀족들은 너도나도 거의 무조건이라고 할 정도로,
로마에 한 다리 걸치려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명분을 강화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에
드러나는 이상의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경에 세워졌습니다.
물론 이 기록을 완벽하게 신뢰하기는 어렵고, 불분명한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근래 고대 유물의 발견이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최근 예로, 발굴 되는 비파형 동검의 연대가 수백 년이 앞당겨졌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여튼, 이 고조선은 중앙 집권적(직할) 성격도 일부 있었던 것 같지만,
크게 보면 여러 지역의 수장들이 다수 존재하는... 성격으로 보입니다.
즉, 원시 제국의 형태였으리라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역사에 기록이 뚜렷해지는...즉, 중국의 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시기에는
이미 오랜 세월의 풍파를 거치며 많이 변모했었던 시기였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 고조선에서 떠나온 이들이 신라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습니다.
상당 부분 추정이지만,
전 설득력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다 앞선 문명을 갖고 있던 이들이 신라 땅에 가서 세력을 일구는 와중에
흉노 계열의 문명을 갖춘 이들이 또 새로 오게 되면서 기존 세력을 이겨내며,
중심 세력이 되어 갑니다. 김일제를 말합니다.
기마 민족의 흔적은 가야에도 이어집니다.
남아 있는 유물의 흔적을 보면.... 삼 한 중 고조선의 영향을 안 받은 곳은....없지 싶습니다.
부여와 고구려, 백제의 관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거란이나 말갈 이런 곳들 역시 느슨한 형제의 느낌을 그 때도 갖고 있었습니다.
의례적으로 필요할 때 마다 '형제의 나라'라고 하지만,
싸움 붙으면 대판 싸우고, 죽고 죽입니다. 전쟁 나면 사실 같은 동족 내에서 갈라진 파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의례적일지라도 이런 인식 자체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3한은 이 땅의 긴 역사에서 조금 특별한 때 입니다.
수만 년에 걸친 이주가 여러 이유로 정체 되어 가면서 3한 이후로는
대대적인 이주는 둔해지고, 느려지고, 적어졌습니다.
너무 뚜렷한 나머지 이미 오랜 세월 이 땅에 정착한 이들은
이 시점 이후 어느 나라보다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그 명맥을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외부 유입 혈통이 섞이는 양과 빈도도 점차 줄어 듭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이 본격화 된 시기입니다.
현대로 옮겨 오면... 미국과 영국이 싸울 때 서로 봐주는 것 없이 전쟁이 나도,
같은 계열이라는 인식은 있는 것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고조선은 당대의 중요한 문명을 누리는 뿌리와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단일한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말갈이 흑수말갈 등으로 별도로 불리지만 서로 전쟁할 때는 하고,
또 필요에 따라 뛰어난 이가 나오면 통일이 되고 하는 것처럼,
이 고조선은 단일 부족이 나라를 이룬 형태가 아니나
그럼에도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이의 근본 국가였을 것입니다.
(이, 동이의 의미는 아주 오래 전 고대와 이후 사서에 기록 될 때의 의미가 조금 바뀝니다.)
따라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단순한 적국은 아닌
뿌리를 같이 한다는 인식 정도는 있었던....그런 것이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중요한 것은 (고) 조선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고조선 멸망 후 삼한에 고루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고,
(삼한의 각 연맹 부족들 역시 고조선 귀족 또는 유민들에 의해 세워졌을 것입니다)
이들의 흔적은 신라, 가야, 고구려, 부여 모두에 인적 구성으로서나 문명적으로나
깊히 관여 되어 있었을 것이라.. 보는 시각입니다.
상대방을 멸할려면 로마든 페르시아든 끌어들이던 그리스 도시국가들도 있었는데...
겨우 신라의 행위가 동족 멸한다 운운은 너무 나가신 겁니다... -_-a
그렇게 치자면 백제도 비록 자기들 따까리였다고는 해도 왜를 끌여들여서 신라를 괴롭힌 건 마찬가지였는데요???
게다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에는 백제의 요청도 있었다는 건 알고있으신가요?
그건 동족을 넘어 같은 뿌리를 공격해달라고 한 건데요???
그리고 신라가 통일 후에 고구려 백제 유민들은 다 죽이기라도 했나요?
받아들여서 융합시켜 문화적으로도 융성시켰는데요?
너무 통일신라시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안 좋습니다.
-_-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란건 경상도쪽이 그렇다는 건지.... 뭘 말씀하실려는 건가요??
지금 기준의 관념으로 '동족을 멸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거 같아요
민족 .. 혈통적인 동질성이 아주 없다고 단언 하긴 뭣하지만...
제 생각에도 삼한은 후대의 이야기다 보니 그 후대의 기준으로는 혈통적 동질성은 .. 없거나 희미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예를 로마를 들었습니다.
조금 더 크게 얘기 하면 같은 문명 계열... 이런 식으로요.
네. 그렇게 보시는 것도 타당합니다.
최소한 한반도 내에서는 중국/일본과 비교되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언어적으로도 그렇지만, 나당전쟁 때만 해도 뜬금없이 고구려 유민들이 신라 편을 들어 당나라군과 맞서 싸웠죠.
우리도 '전체 인류'에게 같은 사람이라는 정도의 동질 의식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도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더 중요하죠.
당시에 한반도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상대가 같은 사람이다 정도의 동질 의식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 시대에 민족 개념은 넓어도 너무 넓은 개념입니다. (사실 그 시점엔 있지도 않았던 개념이지만요)
종족이 제일 중요했던 시대고, 신라의 백제, 고구려 정복은 어디까지나, 김씨족이 자기가 지배하는 국가를 이용한 타국 정복입니다.
민족 개념을 말하는 것이 아님이... 본문의 주된 내용입니다.
부여는 고조선의 후예이고 삼한 역시 고조선의 후예죠
고구려는 다물이라고 고조선의 옛 영토를 수복하는게 국가의 목표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그 고구려의 후예가 발해입니다
신라는 통일, 그것을 통일이라 해야 하느냐는 차치하고라도 일통삼한,삼한위일가 라고 하면서 마한,진한,변한을 통일했다고 했죠
백제는 마한을 흡수하고 마한 지역에 위치한 국가였고, 이런 것들을 보면, 분명히 동질감 같은 것은 있었다 봅니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의 후예다 라는 동질감은 있었습니다
부여는 한나라가 고조선 공격할 때 병력까지 지원했는데요?? -_-;;
부여는 고조선이랑 별개의 국가입니다... -_-;;;
별개의 국가일 수가 없죠
졸본 부여인 고구려의 국가적 목표가 다물 고조선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통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고구려 기록은 고구려 초기에 송양에게서 비류국을 합병한 후 송양에게 다시 그 지역을 맡기면서 다물도라고 했다는 기록밖에 없습니다.
국가적 목표 어쩌고 하는 기록은 유사역사학계의 주장밖에 없습니다.
환단고기라도 보시나요??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来降, 以其地為多勿都, 封松讓為主. 麗語謂復舊土為多勿, 故以名焉.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권
삼국사기에 나오는데요?
그리고 삼국유사에 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고 나오고
도대체 뭔 환단고기 같은 되도 않은 소리를 하시나요?
https://db.history.go.kr/id/sg_013r_0020_0020
그게 어떻게 국시가 됩니까.. -_-;;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다물은 구한말 이후 등장한 대종교, 증산도 등 민족종교, 민족주의적 단체와 군대에서는 다물의 기록상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한민족의 근본 정신, 일종의 민족 혼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아마 고구려 시절에는 말씀하신 사례로는 사용 안 되었을 겁니다.
주몽이야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고 주몽신화를 보면 단군의 아들이라 칭하니 당연히 고조선의 후예도 자처한 것이고
도대체 뭐가 유사역학이라는 겁니까?
고구려의 건국이념 자체가 고토회복인데요?
평양은 본디 왕검이 있던 곳이고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단군의 아들이며 주몽의 정복 자체를 옛,고토의 회복 즉 다물이라고 했는데요????
시작부터 옛,고토 회복이 목표였는데 무슨 소리세요?
그걸 제대로 다룬 논문이 있긴 한가요?? -_-a
역사서는 제대로 보고 이야기 하시는 건가요?
본인이 모른다고 유사역사학이라니 기가 차네요;;;
역사서 좀 제대로 보고 이야기 하세요
아니 기본중에 기본인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나온 내용인데 유사역사학이라니 별 되도 않은 소리를 다 듣네요 진짜 ㅋ
최태성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부모님 장례에서는 보수적인 전통을 따라가게 되기때문에 문화가 섞이고 동화되는 과정을 겪어도 다른 부분보다 오랫동안 다른 모습이 유지된다고 하신 적 있습니다
신라는 리더에게 마립간 차차웅 같은 명칭을 사용했는데 부여계인 고구려 백제에서는 안쓰구요.
음......... 그 부분은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고대에는 더 앞선 문명을 갖춘 세력과 기존 세력의 융합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본문 내용이 그런 내용이고요.
1. 신라는 고조선의 유민들이 주축이었고, 이후 또 다른 세력이 들어와 혼재하게 됩니다.
2. 명칭이 다른 것 정도는 큰 틀에서 별 의미는 없다고 봅니다. 고조선 자체부터가 이미 한 민족 또는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3.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에 병립해 있던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큰 틀에서 이 고조선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조선이 한 순간에 망한 것이 아니라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여러 경로로 삼한에 자리 잡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러운것이고 지금의 관점에서 고대국가를 평가하니 오류가 생겨나는게 아닐까요?
신라는 그냥 백제도 정복 대상으로만 본거죠
고조선, 고구려, 백제, 발해 다 중화 민족 역사로 편입되었습니다. 이제 신라 하나남았어요. ㅇㅇ
한족이라는 개념은 근세에 양계초가 존재하지도 않던 개념을 만들어 낸 판인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