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를 등에 업고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켜서?
외교질로 협작질을 많이 부려서?
고구려 아닌 신라가 삼한통일해서?
다 아니고요
신라는 통일기간이 200년으로 길었고 중국의 영향을 받아 기록물을 충분히 작성할 여력이 됐음에도
고구려 백제의 역사서를 보존 및 편찬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불행한 일로 인해 후대 고려 중기에서야 삼국사기가 편찬되고 그마저도 많은 기록이 중국사서를 의존하게 만들었죠.
동북아시아는 중국 한나라시대부터 유학이 관학화 되면서
전조가 멸망하면 후조가 전조의 역사서를 편찬하는게 일종의 의무처럼 되버렸습니다.
전한이 사기를
후한이 한서를
서진이 삼국지를
유송이 후한서를
당나라가 수서 북사 남사 주서 북제사 진서 등을
뭐 이런식으로 말이죠...
근데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의 기록물 그 어떤것도 편찬하거나 기록한 유물이 없을 뿐더러
이러한 일을 했다는 기록조차 없습니다.
고구려는 신집과 유기를
백제는 서기를 작성했다는 기록이 있지만요.
그래서 저는 신라를 싫어합니다.
고대사 블랙링크의 상당부분이 신라의 게으름이라 생각들어서요.
그냥 고대국가에서 머물러있습니다...
김유신 이라는 인물이 겉으론 화랑도를 외치며
뒤로는 중국의 오랑캐와 손잡고..
같은 민족을 죽이는데 앞장선~
마치 이준석 같은 인물 이었을듯 합니다.
그렇다면..우리나라 5천년 역사상
최고의 빌런에 등극할듯요~!
「전조가 멸망하면 후조가 전조의 역사서를 편찬하는게 일종의 의무처럼 되버렸습니다.」
신라에게 있어서 고려와 백제는 적국이지 전조가 아니니까요...
(고려는 오타가 아닙니다.)
남겼는데 사라진것일 뿐이니까요...... 신라가 망한뒤 사라진걸 신라탓을 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
한일관계도 달랐으려나요
중국이 특이할 만큼 기록을 잘 남긴 거고 중국조차도 대부분 개인이 한 것이지 국가에서 한 게 아니었고요.
검색해 보니 이건 제가 틀렸네요. 중국이 확실히 앞선 부분이 있습니다. 근데 중국처럼 한 나라들이 당시에 거의 없었다는 건 맞지 않나 싶어요.
그 이전은 다 사찬서입니다. 사기마저 사마천이 혼자 쓴 사찬서입니다.
“나라의 역사는 임금과 신하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은 것 나쁜 것을 먼 후손에게까지 보이는 것입니다. 역사를 편찬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겠습니까?”
임금이 진심으로 그렇다고 여겨 대아찬 거칠부(居柒夫) 등에게 명하여 문사들을 널리 모아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에 참고된 흔적이 보이니까요.
그러니 우리가 신라의 왕들도 알고 신라의 역사가 천년이라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이구요
현대인의 기준으로 과거를 보면 죄다 잘못된 게 많죠
국사
제왕연대력
화랑세기
찾아보니 더 나오네요
개황력
백제고기
***
만들었는데 안 남아있는 건, 당연히 신라 잘못이 아니구요.
백제는 고스란히 신라 영토가 되었으니 적어도 백제 역사라도 정리해놓았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중국의 예시 상으로도 그 정도는 이치에 맞는거 같아요ㅜ
1차. 당이 고구려 백제 정복시 한번 싹태워버렸고.. 이후 역사가 이어지며 많은 책들이 편찬되고 전해졌죠.
2차.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사서를 많이 가지고 왔는데.. 그걸 또.. 사람들보지도 못하게 하고..
전국에서 역사서 싹다 수거해서.. 통제하에 뒀다가.. 이런 짓을 성종때 까지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때.. 전부 소실했죠.
조선 중기 이후에 가면.. 거의 성리학에 교조적으로 몰두하며.. 명나라 멸망이후는 진짜 중화의 계승자가 되어..
뭐 사대부들이 알아서.. 정리해버린 경우도 많습니다.
@ 팔도 관찰사에게 유시(諭示)하여,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안함로원동중삼성기》, 《도증기》 등 약 백여 권의 사서 및 기타 문서를 사처(私處)에서
간직하지 말 것을 명하였다. 는 기록이 있죠. 단군조선보다 조선에서는 기자조선이 더 중요했죠. 이거 성리학적 세계관에 방해가 되는 책들이죠.
-세조실록 7권, 세조 3년 5월 26일 무자 1번째 기사.-
@ 고려실록은 문종 원년(1451) 고려사 편찬 뒤 춘추관에 수장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기도 했습니다.
3차. 일제 강점기에 사서수거 후 일본으로 가져가거나.. 소각했죠. 뭐 진짜로 숫자는 몰라도.. 금서가 많았습니다.
@ 특히 일제 강점 초기인 1910년대에 서적 수색, 압수, 소각 작전이 1918년 말까지 8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자행되었다. 이때 수거되어 불태워진 책이 20만 권이 넘었다.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본 왕궁 내 궁내청 소속의 도서료문고에 어마무시한 양의 고대 우리 역사 관련 고문헌들이 그냥 일반인들
접근도 못하게하고 잠들어 있는게 많다고 하죠. 강점기 시절 남당 박창화가 궁내청 서릉부에서 일할 때 증언에 따르면 말이죠.
4차.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한번 제대로 또 털립니다. 이때 중국에서 수많은 유물 유적 작살나고 태워버리고 했다고
하는데 그게 중국것만 그렇게 한게 아닙니다. 솔직히 고대 고조선 관련 산동반도 부터.. 그 당시 중국에 있던 우리관련
유물 서적.. 싹다 털어버렸어요. 당대 중국 역사에서 동이족 관련 색을 완전히 빼버리려고 한 거라는 말도 많습니다.
5차. 존재하는 사료도 무시하기..
지금 있는 사료로도 제대로 해석하면.. 많은 것을 발견하고 증명할 수 있는데.. 사학계에서 절대로 안합니다. ㅋㅋ
아니 사료에 적혀있는걸 고증하고 증명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기존에 확립해 놓은 역사에 끼워 만들어 버리죠.
있는 사료만 잘 분석하고 따져봐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겁니다.
심지어 청나라 황제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사서도 인정을 안하는 판이니까요. 삼국사기도 제대로 해석하면
정말 많은 걸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뭐 동아시아 사죠.
『欽定滿洲源流考(흠정만주원류고, Qinding Manzhou yuanliu kao)』 만 봐도.. 세계관이 뒤집히죠.
역사의 파편만 모아봐도.. 백제의 위치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환국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흠정만주원류고 벡제편 한번 맛이나 보시죠. 청나라 6대 건륭제의 명으로 출판한 책입니다.
"진대(晉代)에는 고구려가 이미 요동(遼東)을 대략 차지하였고, 백제 또한 요서(遼西)·진평(晉平)을 대략 차지하였다. 진 이후 여러 나라를 흡수하고 마한의 옛 땅을 점유하였으며, 남쪽으로는 신라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번작(藩爵)을 막으며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였다.
...
백제의 경계는 서북으로 지금의 광녕(廣甯)·금의(錦義)에서 시작하고, 남으로는 바다를 넘어 곧 조선(朝鮮)의 황해(黃海)·충청(忠淸)·전라(全羅) 등의 도(道)에 이른다. 동서(東西)는 좁고 남북(南北)은 길다.
...
왕도(王都)는 동서(東西) 두 성을 갖고 있었으며, 일컬어 ‘고마성(固麻城)’이라 했고 또한 ‘거발성(居拔城)’이라 했다. 만주어(滿洲語)로 따져 보면, 고마는 ‘겍먼(格們)’의 전음(轉音)이고, 거발은 만주어 ‘저바(卓巴)’로 ‘두 처(二處)’라는 뜻이다. 두 성 모두 왕도의 성이었으므로 다 같이 고마라는 명칭을 썼다.”
뭐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글에 대해 함부로 판단을 하시는지요. 환국관련 언급은 한적도 없습니다만?
// 삼국사기 기록은 각각의 지명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성암본(열전) 외에는 다 조선시대 판각본입니다. 조선시대 판본이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달리 중국과 관련된 기록등에 누락도 있었을 수 있죠.
// 당장 대방의 위치 하나만 바뀌어도 엄청나게 해석이 많이 바뀌죠.
// 문제는 지명에 대한 위치의 해석이 달라서 그런겁니다. 우리야.. 구한말과 일제시대 때의 인식 그대로 바라보는 거고..
삼국사기 권26
「十年(辛酉, 488) 魏遣兵來伐, 爲我所敗。」
“(동성왕 10년, 신유년 488년)
위(魏)나라가 군사를 보내 침입하였으나, 우리(백제)가 이를 격퇴하였다.”
자치통감 권135
「永明六年(488) 魏遣兵擊百濟,為百濟所敗。」
“영명(永明) 6년(488), 위(魏)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
// 지금 역사관으로 보면..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위나라가 한반도의 백제를 공격해요?
// 이런 기록 있어도.. 그냥 무시합니다. ㅋㅋ
南齊書(『남제서’) 권 58, 〈列傳 第三十九〉 〈東夷 高麗傳〉
「是歲,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入其界,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眾襲擊虜軍,大破之。」
“이 해(是歲) 북위(魏虜)가 기병 수십만을 다시 일으켜 백제(百濟)를 공격해 그 경계(其界)로 들어왔다.”
“백제 왕 모대(牟大)가 장군 사법명(沙法名), 찬수류(贊首流), 해례곤(解禮昆), 목간나(木干那)를 보내 군대를 이끌고 적군을 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 기병으로 북위가 공격을 합니다? ㅋㅋ 뭐 이런 것 말고도 여기저기 있는데..
通典(《통전》)
「其舊地沒於新羅,城傍餘衆後漸寡弱,散投突厥及靺鞨。其主夫餘崇竟不敢還舊國,土地盡沒於新羅靺鞨,夫餘氏郡長遂滅。」
“그 옛 땅은 신라(新羅)에 의해 사라졌고, 성 주변의 남아 있던 무리들은 후에 점점 적어지고 약해져서, 돌궐(突厥) 및 말갈(靺鞨)에게 흩어졌다.
그 주인인 부여숭(夫餘崇)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토지는 모두 신라와 말갈에게 빼앗겼으며, 부여씨(夫餘氏)의 군장(郡長)은 마침내 멸망했다.”
// 백제의 토지를 신라에 빼앗긴 건 이해를 하겠는데.. 말갈에도 빼앗기고.. 돌궐쪽으로도 흩어집니다? ㅋ 말갈이 한반도로 들어오나요?
뭐 이런 건 여기 저기 많이 나오죠. 그런데.. 본격적인 연구를 안하죠. 뭐가 무서운 건지..
그냥 3국 크로스 체크 기록이 나오거나 현지에서 빼박 증거가 나오면 됩니다. 백날 귀에 걸면 귀걸이 코걸이 되는 기록 해석가지고 해봐야 답이 안나와요. 환국같은 소리 듣기 좋습니다.
지금까지 나온건 삼국 세력이 일본에 정치적인 영향을 행사했다거나, 현지 조사로 고구려가 내몽고까지 영향력 행사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정도로는 나오는거잖아요. 어디 백제가 바다건너 중국에 식민지니 이런건 에바고요. 지금 세계에서도 논란거리도 안되니까 잠잠한거 아닙니까..
우리나라 50년전 역사도 긴가민가하는데, 1500년 전에 역사를 책 몇줄로 어떻게 판단하나요.
뭐 본질적으로 공학을 공부했지만.. 석사로 사학도 공부를 한 사람입니다. 음모론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 정도로만 하죠. 1500년 전 역사를 그냥 만들어 냅니다.
전라도 천년사 읽어보시면.. 소설도 이런 소설이 없죠.
우리나라 역사는 그냥..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가 정리한 역사에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 먹으려 하는 중국이 합동 연구를 해요? 유물도 접근도 못하게 하는판에? ㅋㅋ 그냥 웃습니다.
있었던 사실을 잘 이해하고 배우는거지
게다가 고구려 - 백제랑 신라는 계열도 다르구요.
너무 무식한 말씀을 하시네요.
말이 좋아 무슨 화랑정신이니 뭐니 하지.. 뭐 남긴게 없음.
화랑들이 남긴 향가도 많은데...
향가는 그 시대에 공부를 많이 해야 쓸 수 있었습니다.
위에 일부 거론 되듯이
인위적으로 싹 다 모아 처분해 버리는 일만 반복 되지 않았다면....
교차 검증할 사서는 꽤 있었을 겁니다.
셋다 본인들 잘했다는 기록이고 재위기간 중에 없는 자료도 많군요(하긴 수백년 자료를 3-4년에 배우도록 축약한다는게..)
설이 많아서 전 그놈이나 그놈이나 고구려 신라 백제 세놈다 비슷한거 같네요(어차피 전쟁국가)
아하~~ 댓글 보니 ㅋㅋㅋ 신라 백제 싫어하는 비율이 반반이겠네요
그 시절이라고 크게 달랐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역사적인 시야를 넘어서 인간의 권력욕이 그런 점을 용납치 못하는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그 후 고려의 통일
저런 경우는 대게 신라 때문에 광활한 고구려 영토를 잃었다 (광활한지도 의문), 경상도라서 겠죠.
애초에 삼국사기도 그전에 남아있던 역사서들을 참고해서 만든겁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조선총독부 시대 이병도,신석호가
일본출신 역사학자들과 합작하여 일제의 시각에서 조작된
우리 역사를 100년이 지났음에도
그대로 답습하여 배우는 게 가장 큰 병폐입니다.
이 들에게 배운 지금의 역사학자란 자들은
지금도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있죠.
그저 조선왕조 실록만 주구장창 떠들어대죠...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나오는 지명을 제대로 연구하다면
고구려,백제,신라 및 고려의 강역이 어디까지 인지를 잘 알 수 있죠.
일제 식민사학의 결과물인
경상도는 신라, 전라도는 백제, 황해도 이북이 고구려 영역이었다는 주장은 완전 날조입니다.
게다가 어떤 유사 사학자들은 조조 위나라가 한강 이북까지 쳐들어 왔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왜 전라도가 백제 영역이죠:?.
식민사학의 주장을 따르면 부여,공주는 분명 충청도 땅에 있는데
전라도를 백제 땅이라 주장하면 안되죠.
사실 전라도 엔 충청 지역(공주와 부여)과는 분명 다른 유형의 그 지역 고유의 무덤군과 특이한 유물이 많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그냥 다른 나라 아닌가요?
이렇게 보면 이성계도 우리 민족 아니지 않나요? 조선도 우리 민족국가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