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모공. 루슬렌님의 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9079828?po=0&sk=commenter&sv=airbag&groupCd=&pt=0CLIEN
루슬렌님...송구합니다. 너른 양해를...
*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낙엽 밟는 자> 의 흔적에서 찾은 (그의 조숙했던 학창시절의 배경이 되는) 야스퍼스를 찾아보다 야스퍼스의 <이해> 란 것에 혼란스럽네요.
(이게 허용될 지 그렇긴한데...)루슬렌님의 상황으로 야스퍼스적 이해가 무엇인지 덕분에 적절한 훈련 하게 되었네요.
백개의 개념보다 한번의 시험이 훌륭한 순간도 있네요.
* 정보의 무결성이 의심스런 때도 있지만 +Ai 와의 분투속에 (개인적인) 야스퍼스적 이해입니다.
(+Ai 는 최고의 주관적 만족과 최악의 객관적 좌절이라는 두 극단의 경험이 충돌하는 상황으로 매우 적절한 야스퍼스적 이해를 보여준다네요.)
* 대략 아래의 질문으로 +Ai와의 분투를 시작.
"....중략...예시에 대한 야스퍼스적 이해가 무엇인지 설명해줘.
예시: 극락을 느낄만큼 엄청난 배변활동이 있었지만
변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운 정도로 수습하기가 힘든
고통의 상황이다...생략."
*+Ai와 나의 훈련 결과)
<설명>과 <이해>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야스퍼스적 이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즉 인과율의 세계에 대한 설명과 대비되어 경험의 의미 이해, 타인의 주관적 경험속으로 들어가 그 의미구조를 파악하려는게 야스퍼스적 이해인거다.? 뭐...그렇다고 봅니다.
* 이하 훈련의 순간 순간들)
ㅡ 이런 상황에서 '설명 (Erklären)' 이란 '이 상황을 객관적, 물리적, 인과적으로 분석이다.'
"왜 변기가 막혔는가?"
물리적 불일치 때문이다.
변기가 막힌 것은 '양(量)'과 '구조(構造)'의 문제이며,
해결책은 도구(뚫어뻥)를 사용하거나
환경(변기)을 바꾸는 것이다.
극락적 느낌은 배변 과정에서 세로토닌과 엔돌핀의
분비에 의한 쾌락의 최고상태이다.
배설물의 총량 M 이 변기구조의 임계점 C 를 초과하여
막힘이 있었다.
슬퍼하지말아라. 극락과 막힘은 인과적으로 분리된
별개의 사건이다.
...이런게 설명입니다. 대비해서...
ㅡ 야스퍼스적 이해 (Verstehen)
<이해>는 변기가 막힌 현상이 아니라,
'당황스러운 정도로 수습하기 힘든 상태'를 겪고 있는
'나'의 주관적 경험과 실존을 파악하는 것이다.
나아가 <공감>하는 것이다.
이 두 극단적인 경험의 충돌이 실존에 주는
통합적인 심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순수하고 만족스런 행위와 쾌감이 더럽고 수습에
난처한 문제를 낳았다라는 데서 오는
<자기모순과 존재론적 불안감>을 공감한다는거다.
* 연속된 극락과 고통이라는 극단의 충돌이 모순적,역설적인 실존상황을 제시할때 이것이 주체ㅡ행위자에 던지는 역설적 의미를 이해한다는게, 공감한다는게 <야스퍼스적 이해>인것 같네요.
* 흠...개념 하나 따라 하기가 어렵네요.
루슬렌님...송구합니다.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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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제 겨우 몇일간 뒤적이며 파고든 의사이자 철학자?인 <낙엽 밟는 자>의 고교시절?의 한 파편의 끄트머리라도 잡은 느낌이 드네요. 어쩌면 평범할것 같은 거인들이 보통이 아니겠지요.
(1967~1970 년은 아마도 <낙엽밟는 자>의 고교시절?)
열쇠와 열쇠고리는 별개의 물질이지만 열쇠고리를 집어던지면 열쇠도 날아가는 그런 느낌이네요.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제 문제이니 마음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