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조선 건국이 기원 전 2333년이 맞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마치 신석기 시대의 우가우가 하던 시대 조금 벗어난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시대 훨씬 이전에 장화도 신고, 머리에 상투를 틀고,
정교한 구조의 제단도 만들고, 이런 신상도 만들고 할 정도... 였습니다.
5300년 전의 이 신상 이전의 유물 역시 상당한 수준의 문명의 흔적들이 ...
홍산문화만이 아니라 그 앞뒤의 여러 문화에서 무더기로 발굴 되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기원전 2333년은....고대 문명의 시작점... 정도가 아니라
당시에 이미 못 해도 수천 년 간의 누적 된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고요.
고조선 건국 시점에... 초기 국가 형태를 넘어선 본격적인 국가 형태가
지역 마다 편차가 좀 있긴 하지만... 본격화 되고 있었던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생각보다 오래 전에 각 지역에서 이미 상당히 문명화가 이루어져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조선 건국보다 몇백년에서 몇천년 전에도 이미 피라미드 올리고 있던 곳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2. 홍산문화 관련해 논란이 되는 건 동북공정도 그러하지만 옥과 곰 토템 만으로도 한국 고조선과의 연관성은 매우 높았는데, 고인류 DNA 분석에서도 일부 확인된 바 있기는 합니다.
3. 문제는 갑골입니다. 홍산문화 지역에서도 갑골이 나와서 한자 문화에 대한 기원도 논란이 있지만 문자가 발견된 건 단순한 문화 수준을 넘어 문명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홰가 중국 내부에서 나온 상황입니다.
4.. 고조선 패망후 신채호 선생의 주장처럼 열국시대로 본다면 만주권 영역에 대한 시원과 갈래가 논쟁이 남습니다. 특히 선비와 관련해 고조선 북망 민족의 한 분류로 편입될 수 있기 때문에(선비라는 것이 고조선의 제후국이라는 멸칭임) 수당 제국까지 환단고기 떡밥의 장작으로 쓰일수 있습니다.
5. 이게 가장 큰 문제일텐데요. 한국 사학계의 고대사 오류에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중앙집권 시기 이전을 원삼국으로 비정하면서 가야와 부여는 중앙집권화되지 못해 연맹국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첫번째 임나일본부설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한국 사학계의 원삼국시대를 인정한다면 또 다른 모순에 빠지는 게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하나의 소국이었다는 주장인데, 고구려는 삼국사기 및 남당유고와 맞지 않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연맹국가를 지닌 가야국보다 열세였다는 것이 되고 도시국가 수준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가 연맹체제였던 가야를 누르고 한반도를 양분하기까지 설명할 수 있는 유물과 문헌 기록이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나 가야의 무덤은 최소 100기 이상의 고분들이 80곳 이상 발견되는 반면 백제와 신라는 가야보다 역사나 권력이 더 강성했던 것을 감안하면 아무것도 맞지 않습니다. 특히 웅진-사비 시대 백제의 무덤은 고작 50년도 유지되지 않은 양나라 무덤 양식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하는 한국 사학계의 주장은 무녕왕릉에 대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도 오류가 있습니다. 특히나 삼국사기에서 무녕왕의 사마왕이라는 한자는 다르며 위작이라는 일본서기와 한자가 같음은 언급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문 뒷편의 임차해서 장지했다는 기록은 아예 언급조차 안합니다. 그외에도 한국 사학계가 비정한 것과 문헌과의 기록이 상이한 게 너무 많기도 하고요. 고조선 관련해서도 연맹국가로 비정하면서 제후국은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연맹국가인데 연맹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왜 생각을 안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