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술에 세금매길때
조선의 곡주는 비싸고 일본청주는 싸서
저렴한 청주가 유행했다네요
찐 곡식에 누룩과 물을 넣고 발효시킨 뒤 걸러서 떠낸 맑은 술을 청주라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청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만든 술을 의미했다. 청주의 상품명이 정종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청주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청주는 조선사람들이 양조하는 탁주나 약주에 비해 낮은 세금을 받았고 조선총독부가 생산을 장려하여 많은 양이 생산되었다. 조선술보다 낮은 가격으로 대량생산되었으므로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한국인들이 제사지낼 때 올리는 술이 되었다.
청주의 사전적 의미는 곡식을 찐 것에 누룩과 물을 넣고 발효시킨 술을 걸러서 맑은 부분만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 청주는 일본술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만드는 술을 탁주, 약주, 소주라 불렀고 일본인이 만드는 술을 청주라고 하였다. 조선인이 만드는 약주는 처음 만들어진 술의 맑은 부분만을 걸러서 분리한 것이어서 사전적으로는 청주였지만, 청주는 일본술이라는 의미로 쓰였기에 약주라고 지칭한 것이다.
청주는 생산과 판매에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맛이 조선술보다 좋았던지 조선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동아일보』1922년 12월 21일 「조선사람은 엇지하면 살고」라는 기사에서는 외국으로 돈이 나가는 정종을 사먹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청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인의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제사용 술로 청주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사람들이 일본술인 청주를 제사술로 사용하게 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 조선인이 양조하는 약주에 대한 세금이 높아지고 자가용 술제조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제사에 술은 꼭 사용해야 했는데, 집에서 술을 담그지 못하게 하니 약주와 비슷한 청주를 사서 쓰게 된 것이다. 조선인이 만든 약주가 많던 시절부터 조선사람들 중 청주를 제사술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아일보』1925년 5월 11일 「처처편편」에서는 공주에서 42전어치 청주를 제사술로 쓰려고 외상으로 사간 후 이를 갚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조선사람들이 크게 싸운 기사가 났다.
동아일보의 옛모습 ㅋㅋㅋ...
근대 신문으로보는 근대역사 중에서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운영하는 지역N문화라는 사이트인데요
지역문화들 재밌는거 많이 보이네요
청주는 고려시대부터 탁주를 걸러만든 술 이름입니다. 약주는 일제시대 이후 일본청주와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한거고요.
한국식, 일본식 둘다 탁주를 깨끗하게 것은 청주가 맞습니다(방법은 좀 다릅니다). 둘다 제사때 쓰였고요.
일제시대 일본의 공장식 양조장이 들어오고, 한국 술은 세금으로 잡은게 차이가 컸던거죠.
한국전통의 청주는 주세법상 약주고 일본식청주가 청주로 되어있는거고 원래 제사는 청주(현기준 약주)로 지냇습니다. 직접 내던 가양주(청주지만 약주가 된)들이 날아가고 일본청주가 싸게공급되니 대체된거죠
경주교동법주(경주법주아님) 한산소곡주 같은게 전통청주입니다(주세법상으로는 약주)
원래 제사상에는 청주를 올렸고, 일제시대에 일본식 공장제 청주가 전통식 청주(약주)를 대체했다는 내용이지, 일제시대에 청주 올리는 풍습이 생긴게 아닙니다요.
일제의 주세령으로 한국 청주는 약주로 명칭도 변경되어 청주로 부르지도 못했고 한국 전통주에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고 단속하기 시작해
한국에 차린 일본의 공장식 양조장과 일본 청주가 득세하며 가정에서 빚던 한국식 청주를 비롯한 전통주(가양주)는 대부분 말살 된거죠
전통 조선주에 부과하던 주세가 조선총독부 세수의 30%를 차지 했을 정도이니 살아 남을 수 가 없던 겁니다
제목 수정하세요,
경주법주, 국순당 차례주는 조선식 청주(주세법상 약주)
입니다
이제 칵테일 올려도 되는거죠?
전 제 제삿상에
양념반 후라이드반과
즐겨먹는 맥주 올리라고 할겁니다
과일이랑.
자식들 그래도 일년에 한 세번은 모였으면 해서요 ㅎ
음식해야하면 누가옵니까.
같이 모여서 치맥이라도 뜯으면 그게 효지요.
우리자식들 중에 칵테일 말줄 알는 녀석 있으면
칵테일도 좋습니다 ㅋㅋㅋ
정종은 청주와 세이슈로 발음이 같다는걸 이용한 일본 청주의 브랜드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