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절망의 낭하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시절, 훌쩍 라다크를 향해 떠났습니다.
인도의 카시미르 주, 스리나가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라다크의 레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을 때, 어쩌면 이 길이 세상을 버릴 변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 눈길을 창 밖으로 두고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고 또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욕심은 버스가 도시를 벗어나 히말라야 계곡으로 들어서자 마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이미 만원이 버스에는 다리가 묶여 화가 잔뜩 난 수닭이 볏을 세우고 퍼득거리고 있었고 염소며 강아지며 사람들이 어울려 난장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아수라장인 광경을 탓하지 않았고 날아오르는 수닭을 붙잡아 주고 염소에게 자리를 내어주더군요.
더구나 생면부지의 버스 안내원은 로컬버스를 탄 외국인이 마냥 신기했는지 몇 번이나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는 선반 위에서 자신이 아껴입는 조끼를 보여주더군요.
"단결 투쟁, 인천 지하철 노조"가 씌여진 조끼였습니다.
이역만리에서 기억조차도 가물거리는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그랬습니다.
어쩌면 저는 긴 시간을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영화 "어 배틀 에프터 어나더" 처럼 지금은 비록 무너졌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또 싸울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지요.
긴 연후, 두 편의 영화를 봅니다.
그저 사고였을 뿐과 어 배틀 에프터 어나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서로 함께 싸우는 것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 아니라 자신의 몫이라는 생각입니다.
가진것 없어도 모두가 배려하는 듯한 느낌과 외지인과 내지인이 사심없이 친구가되고, 못벌면 못버는대로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라다크인 보면서 많은걸 느끼고 배웠어요.
가게된 계기가 저랑 비슷하시네요. 2012년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무작정 휴가내고 떠났던 여행이었는데, 굉장한 우울감과 인생에 허망함을 느꼈던 시기였어요. 그곳에 다녀오고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그 이후 뭐랄까 전화위복 되었던 추억입니다.
자녀들 좀 더 크면 데리고 가려합니다. 인도인 친구가 거기 거주하고 있어 가면 그냥 놀다 오네요. 오토바이든 차든 친구거 쓰고 숙식도 친구집에서.. ㅎㅎ
아 지금은 아마 잠무 카슈미르 주에서 분리되어 라다크 직할시로 바껴서 조금 더 안전한 느낌이네요.
예수가 다녀갔다는 헤메스 사원에서 동자승들과 함께 웃으며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노승은 가면춤 연습을 게을리하는 동자승들에게도 전혀 화를 내지 않더군요. 개들은 사원의 마당에서 엎드려 자고 예수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문헌 이야기를 물어보니 그냥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비오는 하루인데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ㅎㅎ
찬디가르에서 꼬박 이틀을 차를 타고 올라갔던 고생과 잊혀지지 않는 자연이 아직도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힘겨운 순간이었어요. 고산병은 ㅋㅋ 정말 ㅠㅠ
고산병와서 엄청 매운 마늘 먹었던 기억이 ...
다시갈때가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