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랏말싸미 듕국에 달아..." 는 언제 쓰여진 글일까?

너무나 유명하고,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외워 읊을 수 있는 훈민정음 어제(御製;왕이 지은) 서문.
이 훈민정음 서문을 처음 한글로 기록한 건 ... 의외로 세종대왕이 아닙니다.
세조입니다. 저 책자 자체도 [훈민정음 언해본] 으로, 1459년(세조 5년) 발간된 것이죠.
그렇다고 세종대왕이 한 말이 아니냐? 그건 아니고...
서문 자체는 실록과 해례본에도 나옵니다만, 국지어음 이호중국 여문자 불상유통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으로 이어지는 문장... 즉 한자로만 적혀 있습니다.
그걸 우리말로 풀이하고 훈민정음으로 옮겨 최초로 기록한 것... 즉, 우리가 외우는 '나랏말싸미 듕국에 달아...' 라고 기록된 것이 언해본, 세조 대였던 거죠.
물론 그렇다고 세종대왕이 '국지어음이 이호중국하야...' 라고 하셨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일단 실록은 전부 한자로 기록하니까요. 오히려 세종대왕이 '나랏말싸미...' 로 말씀하신 것을 실록 등에는 한자로 적어놨다가 나중에 언해본에서 다시 원래 말로 정확히 기록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2. 한글이 적힌 17세기 찻잔

한글묵서다완(한글墨書茶盌), 또는 추철회시문다완(萩鐵繪詩文茶碗) 으로 불리는 찻잔.
임진왜란 중 일본으로 끌려간 이름 모를 조선인 도공이 만든 찻잔입니다.
일본 야마구치 현의 하기 지역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이 정착한 곳으로, 이 곳에서 조선인 도공들은 조선의 막사발 모양 찻사발을 만들어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이곳의 도자기를 하기야키(萩燒)로, 훗날 하기야키 중 조선 막사발 같은 모양을 이도다완(井戶茶碗)이라 부르며 귀하게 여겼습니다. 현재는 다수의 이도다완이 일본의 국보죠.
위 사진은 그 중 하나.
원문) 개야 즈치 말라 / 밤살ᄋᆞᆷ / 다 도듯가 / ᄌᆞ 목지 호고려 님 지슘 ᄃᆡᆼ / 겨ᄉᆞ라 그 / 개도 호고려 / 개로다 / 듯고 ᄌᆞᆷ즘 / ᄒᆞ노라
해석) 개야 짖지 마라. 밤(에 다니는) 사람이 다 도둑이냐? / 저 밑에 조선 사람 계신 데 다녀올 것이다. / 그 개도 조선 개로다. 듣고 잠잠하구나.
(호고려=胡高麗,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인들을 가리키는 말)
같이 조선에서 끌려온 동포를 만나러 가는 길. 짖어대는 개를 조선 말로 달랬더니 개가 잠잠해지는 걸 보고는, '저 개도 조선 개인가보다...' 라고 생각하는 도공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일본 고미술 수집가 후지이 다카아키(藤井孝昭)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사후 가족들이 찻잔에 새겨진 한글의 내력을 알고는 2008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무상 기증했다고 합니다.
...
또 하나.
"다니다" 대신 "댕기다 (ᄃᆡᆼ겨ᄉᆞ라)" 라는 동남 방언이 쓰인 것으로, 이 도공은 경상도 출신일 것으로 강하게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 (1443년) 와 반포 (1446년) 이후 150여년 (임진왜란, 1592년)만에 경상도 출신 도공이 한글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훈민정음이 일반 백성들의 삶에 널리 퍼져서 세종대왕께서 바라신 대로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안케 하였다는 증거가 됩니다.
3. "한글" 이라고 쓰면 몇 글자일까요?
대부분 “한글”은 두 글자리고 하실테지만, 창제자인 세종대왕께서는 “스물 여덟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신 만큼, 자음과 모음을 각각 하나의 글자로 인식하셨습니다.
따라서 훈민정음을 기준으로 할 때, “한글”은 “ㅎ,ㅏ,ㄴ,ㄱ,ㅡ,ㄹ” 로 여섯 글자입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서 폰메모장에 사진과함께 저장하고 다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