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세상을 나누는 일은 이제 시대와 맞지 않는 구분 같습니다.
현실은 이미 그 단순한 프레임을 넘어섰는데,
여전히 누군가는 그 낡은 분류를 억지로 유지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유시민 작가가 매불쇼에서 이야기한
‘본업(자기이익 중심)’과 ‘부업(공동체 이익 중심)’의 구분이
오늘날 인간과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성,
즉 ‘나의 이익’과 ‘우리의 생존’ 사이의 긴장으로 보는 시각이
지금의 현실을 훨씬 잘 해석해주는 것 같습니다.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흔히 “기존 질서를 지키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질서란 결국 권력, 자본, 불평등, 위계가 굳어 있는 구조일 뿐입니다.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온라인 매체를 통한 댓글 조작까지 동원하며 감정의 전쟁을 일으킵니다.
‘좌파’, ‘종북’, ‘친중’ 같은 단어 등을 반복하거나,
요즘은 ‘영포티’라는 세대 프레임으로 갈라치기를 시도합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겠죠.
이건 단순한 정치적 주장이라기보다, 사람들을 분열시키기 위한 언어적 장치라는 것을요.
결국 “보수 대 진보”라는 프레임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합니다.
그 안에서 사고하는 순간, 이미 누군가가 짜놓은 언어의 틀 속에 갇히는 겁니다.
이런 프레임 조작은 공략 대상이 명확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공략 대상이 수준이 높으니 MB시절 부터 고도로 훈련받은 심리전단 기술을 쓰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글들을 계속 보다보면 제 수준에도 패턴이 보이는 다른 회원분들도 간파하시는 분 많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는 “합리적 중도”, “상식적 보수” 같은 표현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그건 존재하지 않는 허상임이 알려져서 또 다른 수를 방식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단어를 반복해 각인시키고, 부동산이나 환율 같은 민감한 이슈를 미끼로
심리적 문지방을 넘기 방식 수도 없이 시도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런 시도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때로는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두 번은 당할 수 있지만, 같은 수법에 반복해 속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내란까지 겪은 시대를 살아온 지금이라서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입니다.
생존 욕구는 누구에게나 명확하지만,
그 방법과 방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세상은 어차피 돌아가니 내 이익만 챙기자’는 사람도 있고,
‘내 이익을 우선하되, 남는 에너지는 공동체에 쓰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나보다 공동체를 먼저 지켜야 한다’는 사람도 있죠.
유시민 작가 말처럼, 부업에만 몰두하는 경우는 아주 희소합니다.
선의를 가진 분은 대부분은 본업을 키워서 부업을 지탱하려는 형태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본업만 하는 인간은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권력과 이익만 좇는 정치인들,
자신의 본능을 제어하지 못한 이기적 인간들의 모습이죠.
저는 보수 지지자 중에도 부업을 신경 쓰는 사람을 만나봤고,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본업에만 충실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진영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이익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는가입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이건 도덕이 아니라 생존의 다른 형태입니다.
결국 사회의 건강은
이 두 본능, 본업과 부업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이 사회는 본업 중심의 탐욕이 제도화되고,
부업 중심의 감수성이 공격받는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보수, 진보 다 필요 없습니다.
결국 세상은
이익만 좇는 인간과 공동체의 균형을 고민하는 인간,
이 두 부류로 나뉩니다.
정치는 그 두 본능이 충돌하는 무대이고,
언론과 권력은 그 틈을 이용해 장사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프레임을 믿지 말고, 본질을 의심하는 일.
그게 지금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부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부일매국노들이 있을 뿐이죠.
우리나라던 다른 나라던 적용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거리에 붙어있는 정치 현수막에 본업과 부업이 설명하는 바로 적는다면 좀더 명확해지더군요.
가령, 경제는 보수 - 경제는 자기이익만을 중시하는 집단 이런식으로요.
보수의 자리에 보수와 진보의 본질을 적으면 말이 되는 쪽이 있고 헛소리로 변하는 쪽이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은 이 프레임을 전달할 힘이 부족하지만 우리 사회에 통용되면 매국좀비들은
좀더 신중하고 현수막이더 정치 슬로건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민주정 대부분엔 현실주의가 없어보입니다. 이게 심각한거 같아요.
극우의 준동도 현실주의 결여에서 나온거라고 보는데
우리가 인간이라 본질을 가지고 있고,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관계 정립은 우리가 영역동물이거나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고 존속해온 생명체는 아니기 때문에 본질에 집중하면 구조적 설명장치는 허상을 치워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민은 부업이고요. 독립과 국민주권과 배려를 중시해 사회를 형성하며 문명을 발달시키죠.
그리고 뇌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며, 엘리트 카르텔의 선동의 목표죠. 주로 혐오선동에 넘어갑니다.
극우는 자본가, 엘리트카르텔, 그리고 뇌가 없는 사람의 집합입니다. 목표는 민주정 붕괴 그리고 독재죠.
민주주의가 무엇을 추구하든, 그 이전에 우리는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라는 점이 더 본질적입니다.
이완배 기자의 ‘하모니’에서 들은 이야기처럼,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조차 중남미에서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고 개입해왔습니다.
민주주의의 이상을 말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이 걸리면 언제든 제국주의적 본성을 드러내는 모습이죠.
이런 사례를 보면, 민주주의란 제도 역시 결국 이기적 본질을 가리는 허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로 완벽하지만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현실화되지 못했듯이,
민주주의 또한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체제일 뿐이라고 봅니다.
어떤 정치나 사회 제도도 인간의 이기적 본능 앞에서는 결국 희석됩니다.
결국 세상은 극소수의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로 인해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존재에 감화된 사람들이 본업과 부업의 균형을 찾아가며,
부업의 비중이 늘어나는 순간 사회는 잠시나마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때만이, 본업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억제되는 사회적 균형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반댓말이 뭔가 생각해 보세요.
권위주의 독재 전체주의 반문명 반사회입니다.
사회라는것이 능력을 가진자가 이끌고 가는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결집력으로 유지되는겁니다. 그게 민주주의 입니다.
서구 사회및 현재 우리나란 평범산 사람들의 결집력으로 유지되는 민주주의죠.
독재 전체주의 반문명 반지성 세력을 극복했다면 이미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아울러 끊임없이 민주정을 붕괴시키고, 독재 전체주의를 하려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거창한 이상향을 제시해서 민주정을 붕괴시키죠. 그후 독재를 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한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를 작동시키는 인간의 본성적 한계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민주주의가 반독재, 반권위의 대안으로서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제도조차 결국 이기심을 가진 인간이 운영하는 구조라는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건 민주주의의 폐기가 아니라, 그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전제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중남미 개입 사례를 보면,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자처하는 나라조차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민주정부를 방해해왔습니다.
이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 본능이 국제질서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한 국가 안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밖에서는 제국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 그 모순이 바로 제가 말한 구조적 한계입니다.
결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건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본업(이익)과 부업(공동체)의 균형을 잡으려는 인간의 의지 아닐까요.
그 의지가 사라지면, 민주주의의 외형은 남아도 내용은 이미 독재나 탐욕으로 바뀐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었던 건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그 민주주의조차 인간의 본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논점을 제도의 우열로 옮기는 건 제가 말한 본질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같습니다.
과도한 이상주의는 민주정 부정 및 붕괴로 이어지며 독재로 연결됩니다.
그런 과도한 이상주의를 선민주의라 부릅니다.
당장 코앞에 민주정 붕괴시키고 싶은 독재세력이 바글바글 합니다.
그 자체보다 전달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 지도자의 언어는 철학적으로 고차원적일 수 있지만,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표현해야 합니다.
아마도 국민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전략이었을 겁니다.
민주당은 지금 보수,진보,중도라는 기존 구분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당 안에는 여전히 자기 이익만 좇는 ‘본업형’ 정치인도 있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부업형’ 정치인도 있습니다.
정당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후자의 비중이 커져야 하지만,
‘수박’이라 불리는 기회주의적 세력이 많을 때는 방향을 잃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지금은 리더가 부업 중심의 철학을 가지고 있으니
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따르는 정치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정치란 결국 끝없이 검증받고 증명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누가 본업을 줄이고 부업을 확장하느냐에 따라
정당의 수준과 사회의 방향이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진보, 보수를 말하는 순간, 이미 기성의 프레임에 빠져듭니다.
중도보수, 합리적 진보? 다 헛소리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진보보수의 정의를 영리하게 거부하고..
지금은 그런 단어로 현대정치를 설명할수 없다 라고 딱잘라 말하는 과단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중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기준으로 사회를 정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본업과 부업이라는 구분은 단순하지만,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죠.
지금의 자칭 보수 세력은
과거라면 진보적 역할을 했어야 할 시점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시대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들은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그 점은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2가지로 나누는 본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4가지로 나눠보라고 하더라고요.
본업만 하는 유형, 부업만 하는 유형, 부업>본업 유형, 부업<본업 유형으로 보라는 말씀이신 것이신지
생각합니다.
인류가 육체적으로 약한 존재임에도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이유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협력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본업만 한다면 그 기반은 무너집니다.
지금처럼 인류가 81억을 넘어 103억에 이를 전망이라 해도,
절대 다수가 이기심에만 몰두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다수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완배 기자의 ‘경제의 속살’에서 들은 행동경제학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겨울을 앞둔 쥐 무리에서 협력하는 쥐와 이기적인 쥐를 관찰한 결과,
이기적인 쥐는 결국 협력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지만,
협력쥐는 이기적인 쥐와 함께하면 피해를 입는다는 걸 깨닫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협력쥐끼리 뭉쳐 생존하고,
이기적인 쥐끼리는 결국 서로를 피하다가 자멸하게 됩니다.
결국 이기적인 존재는 협력적 존재에 기생하며 생존하지만,
그 구조가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본업만 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도태시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인류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너무 거대해졌고,
본능적으로 본업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하기에
그 변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 본업이든 부업이든 모두 내가 잘 살고 싶다는 목적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인간은 말씀하신 것과 같이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왔습니다. 왜냐먄 그게 자신의 생존에 유리하니까요.
생명체는 생존의 본능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협력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은거죠.
인간에겐 부업이 본업만큼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
국가가 개인의 생계나 기본적 안정, 즉 본업의 일부를 책임져 준다면
그제야 사람들은 온전히 부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개인과 사회, 국가는 모두 튼튼한 본업의 기반 위에서만 유지되니까요.
다만 본업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부업에 신경을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하루 한 끼와 소박한 여유만 있어도 나머지를 공동체를 위해 쓰겠지만,
또 다른 이는 자신과 가족이 충분히 부유하다고 느낄 때까지
오직 본업에만 몰두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그 ‘충족의 기준’은 각자의 가치관과 욕망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업의 한계를 모르는 이들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타인과 국가마저 희생시키며
끝없는 욕망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죠.
이기심 자체가 악은 아니지만,
그것이 끝없이 팽창해 타인의 삶을 침식하기 시작할 때
공동체는 무너지고, 문명은 퇴행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주의는 구분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깨지니까요. 우리가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대부분은 이런 이해충돌의 상황을 조정/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주의 시대에서는 개인이 무시되었지만, 지금은 개인주의 시대이고 개인을 존중합니다. 개인은 협력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유리하므로 기꺼이 타인의 이익추구를 존중하며 같이 공존합니다.
여기에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개인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기적인 행위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는 본능때문에
이기적인 행위에 대해 본능적으로 매우 민감합니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기득권이 쉽게 이기적인 행동을 하죠. 그래서 우리가 기득권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된다고 봅니다. 공동체의 규칙을 엄하게 적용해야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심, 이기주의는 악입니다. 용납될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와 구분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공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게 많이 줄었죠...
지금 세상은 공익이 필요하다!와 공익보다 내 삶이 더 문제다!가 싸우는거 같아요...
이건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죠...
이제는 개인의 생존을 넘어, 끝없는 경쟁과 과잉 욕망이 본업의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죠.
그 결과, 타인과 국가, 그리고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더라도 괜찮다는 의식이 제도적으로 용인될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