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 KST - Kyodo News Service - 이시바 시게루 일본내각총리대신이 퇴임전 10월 10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평양전쟁 전후 80년 담화에 일본제국 산하 "총력전 연구소" 보고서 내용을 언급할 것이라고 교도통신이 타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제국은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1년 4월 1일에 내각총리대신 산하 싱크탱크인 "총력전 연구소"를 설립 일본 육해군, 정부고위 사무/외교관들 중 최고의 인재들을 선발해 미국과의 전면전을 상정한 모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 이를 보고서로 만드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당시 일본 군/민/관 최고의 인재들을 소집시켜 해당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이들의 평균나이는 33세, 제국육해군 사관생도출신들과 일본 민간 최고의 인재들 - 일본제철,일본은행 소속 - 이 모두 모여 미국과의 총력전을 상정한 보고서의 결론은 단 하나였습니다.
"일미전쟁이 개전하면 일본은 반드시 패전한다."
그러나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일본 수뇌부는 이를 상큼하게 씹었습니다. 그리고 4년뒤 미국의 국력이 총결집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궤멸적 피해로 일본은 패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총력전 연구소의 내용은 현 이노세 나오키 참의원(유신회)이 작가시절 발표한 "쇼와 16년 여름의 패전" 책내용으로 알려졌으며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애독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시바 시게루 내각총리대신은 올해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 질의에서 이노세 나오키 의원의 질의에 다음과 같이 답변해 일본 우익들의 집단 반발을 산 바 있습니다.
"총력전 연구소의 보고서는 일본은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키면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고려대상도 안되었다. 일본은 비참한 길을 걸었다."
- 이시바 시게루 / 일본내각총리대신 -
이시바 시게루 내각총리대신은 8월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와의 회식회동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서로 교감했으며 전후 80년 담화에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주장에 동감했다고 교도통신은 덧붙였습니다.
한국에서는 2011년에 출간됐다가 지금은 절판이군요...아마도 도서관에나 가야 있을 듯 싶네요...
검색해보니, 나무위키에서 "총력전연구소"관련내용이 있네요.
https://namu.wiki/w/%EC%B4%9D%EB%A0%A5%EC%A0%84%20%EC%97%B0%EA%B5%AC%EC%86%8C
https://smartstore.naver.com/book7777/products/12134987356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태평양전쟁’ 을 가리키는 거죠.
즉, 태평양 전쟁 일으키지 않고 조선 식민지를 포함하여 중국 일부 영토를 차지한것에 대해서는 반성의 목소리가 거의 없죠.
그 결과 발생한 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측면에서는 아픔인거죠.
태평양 전쟁이 없었으면.. 일본의 2등 국민으로 살게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긴 합니다. 이게 역사의 아이러니죠.
미일 동맹이라 하지만 언제라도 일본은 뒤통수 때릴 겁니다.
일본이 미국보다 강하다 판단하면
일본은 그들 역사를 보더라도 침략을 통해서 영토를 늘리려는 습성이 있기에
일본은 또 다시 전쟁 일으킬 겁니다.
그런 행동으로 가기에는 전쟁일으키면 패한다는 발표를 하는 것은 안맞지 않나요
공격 날짜 전락 승패 다 알려져 있으면...
나름 투명한 동맹이네요.
전쟁억지 되니까 좋을지도요?
이길 자신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일본은 그 타이밍 계산에 능한 나라죠.
투명한 동맹이라고 부르시는데 잼있는 건 1930년대에도 똑같았구요.
그 결과는 히로시마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 패배 보고서를 공개했다고 해서
일본이 절대 뒤통수칠 염려없는 정직한 나라라면 진주만 공격도 미리 알렸을까요.
역사적으로 일본의 투명함이 신뢰성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ㅋㅋㅋㅋ
페이크라는 말씀을 ㅋㅋ 넣어서 길게 하신거죠?
잘쓰셨어요.
그런일이 있었군요
미국이랑 부딪힐일 안만들고 서구 제국과 비슷한 노선으로 앞마당 정도 선에서 조용히 지냈다면 독일 네덜란드 영국과 친선맺고 잘살고 우린 나락 이었을지도 모르죠.
중국에 대한 점령 확대 없이 현상유지만 했더라면 미국과의 전쟁도 없었고
결국 만주와 화북지역까지 손에 넣은 상태로 동북아 패권국이 될 수 있었다는 자성론(?)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경제적 영향력은 남겨서 패전후 회복에 그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었겠죠. 물론 태평양전쟁 후 한번의 결전에 패한 후 적극적으로 종전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겠지만요.
물론 당시 도조 내각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전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