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추석 연휴인데 날씨는 꾸물꾸물하네요. 해 안뜨고 비오는 건 좋은데 습도가 높아 썩 쾌적하지는 않은 날씨입니다.
집에 있으니 자꾸만 침대와 밀착하게 되고 하여 동네 스벅에 왔는데 평소의 1/3~5의 사람만 있어 좋네요. 연휴의 힘인 듯 합니다.
스벅 나온 김에 놋북으로 이것 저것 글들을 보다가 그라프 하나를 조우하고는 뻘 생각이 들어 갑자기 글을 남기게 되네요.
모두 메리 추석 하시길요.
-----------------------------------
<< 인류 사회는 이대로 지속 가능한가 >>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의 정점에 서게 된 가장 핵심적 능력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인류의 역사를 거쳐 수많은 석학과 천재, 현자님들이 서로의 의견을 다투어온 문제인 바 결론이 쉽게 나지 않겠습니다만, 제게도 의견을 말할 기회를 주신다면 현재의 저는 감히 "거대한 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된 점"이라고 주장하겠습니다.
육체적 측면에서는 그저 평범한 수준이고, 도구를 쓴다지만 인류 역사를 거쳐 인류가 써 온 대부분의 도구는 나무나 뼈 혹은 돌을 이용한, 소위 석기 시대의 물건들이었습니다. 인류의 강점으로 언급되는 다양한 요소들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분명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맞겠습니다만 인류가 인류를 제외한 생물들과 벌려온 격차에 비하면 미묘한 차이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인류가 이렇게 굉장한 문화와 문명을 구축하고 우공이산할 정도의 힘과 기술을 얻게된 배경은 다른 동물들이 이루지 못하는 거대한 협력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된 데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언어의 발명과 발전이라고 생각하구요. 아 참 언어라는 놈은 동시대의 인류를 협력하게 해주는 아교이기도 합니다만 기록이라는 형태로 서로 다른 세대간에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발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런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인간은 부족을, 도시를, 국가를 만들고 과거와 당대의 이야기와 철학 기술과 과학의 정보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달하여 누적해가며 현재와 같은 거대한 힘을 손에 넣게 된거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뭐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 온,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라 이제는 이야기 꺼내기엔 좀 진부해보이기까지 하는 화두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저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걸 생각하게 되네요.
인류는 왜 협력체계를 구성하고 그 규모를 한없이 키워왔을까요?
다른 생물도 마찬가지이겟으나, 모든 생물은 늘 자신에게 유인이 있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추후 실제로는 유인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최소한 선택 시점에 결정 당사자는 그 선택이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라고 판단하고 그 선택을 했겟죠. 어떤 선택들은 판단 없이 시급히 이뤄지기도 합니다만 그 경우에도 우리 뇌 속의 일종의 매우 간단한 배치파일이 무의식적으로 돌아가며 자동 판단해주는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죠.
그래서 인류가 협력체계를 만들고 키워온 것은 그게 늘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되었고, 또한 역사를 거쳐 입증되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그 협력체계 하에서도 가장 하위를 구성하거나 낙오자가 되어버린 구성원이 늘 있게 마련이었겟죠. 그럼에도 인류가 협력체계를 구성하고 살아남아왔던 것은 그게 구성원 전체로 보면 더 이익이거나, 구성원 다수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협력체계가 구성원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할 때,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손해를 야기할 때 결국 협력체계는 유지하지 못하고 와해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 두 가지 그래프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 (좌측) 상위 1% 부자들의 부 총합이 중산층 부의 총합을 초월하였음
* (우측) 코로나를 지나며 - 아마도 코로나 시기 양적 완화의 결과 혹은 급격한 온라인화/디지털화로 인한 'Winner Takes All' 상황으로 인해 - 부자들은 급격히 그 부를 불려왔으나 빈자들은 전혀 회복을 하지 못하고 서서히 바닥으로 침몰하고 있음
저는 이런 현상이 결국 중산층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과연 현재의 협력체계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합니다. 그래프의 방향은 분명 급격한 빈부격차의 심화를 보여주고 있고, 조만간 중산층과 그 하위 계층들에 있어 우리 협력체계는 더이상 솔플(Solo Play)보다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이르게 할 지도 모릅니다. 협력을 통한 이익이 아닌 협력을 빙자한 착취가 이뤄진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우리 사회, 특히 온라인 세상에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이 저는 참 두렵습니다. 우리 사회의 협력체계가 저열화되고 해체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말이죠. 그리고 그러한 각자도생의 길은 대체로 야만이며, 빈곤하며, 특히나 저와 같은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가혹하니 말입니다.
그러하므로 우리 협력체계는 우리 협력체계를 구성하는 '최소한' 더 많은 구성원에게 더 이익이 되어야만 합니다. 좀 더 나아가면 협력체계를 통해 발생한 시너지를 협력체계로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분배해야 합니다. 그를 통해 우리 협력체계를 더 공고히할 뿐 아니라 확대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우리의 힘을 확장시킬 수 있게 됩니다. 더 큰 조직이 - 기술적/메니징 측면의 로스만 관리 가능하다면 - 더 큰 부와 발전을 낳습니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약자와 실패자에 도움과 분배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우리 협력체계에서 탈락하지 않고 일원으로 남게 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쓰다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납니다. 마빈해리스였는지 제레미다이아몬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핵심 내용은 그겁니다. 서양 인류학자들이 폴리네시아 원주민 사회를 체험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폴리네시아 지역의 지배층(왕)들이 주위에 선물을 뿌리는 전통이 폴리네시아 여러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더라는거죠. 생각해보면 이건 폴리네시아만의 특징은 아닌게 우리 북방민족이었던 몽골이나 거란, 여진족에게서도, 나아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건 분명 그러한 부의 분배가 직접적인 대가의 형태로만이 아니라 간접적인 방식 - 자신이 이끄는 협력체계의 규모가 더 커지고 그를 통해 발생되는 시너지가 강화되는 형태 - 을 통해 결국은 더 큰 부와 권력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체득한 지배층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경제개발이 출산율을 낮추는 결과를 낸다는 것이 분명해보이거든요.
인구는 몇세대를 거치면서 쪼그라들 것이고, 그에 따라 현재의 급속한 자원소모 문제도 해소가 될 것 같습니다.
잘못을 수정하지 못하는 체제는 언젠가는 붕괴하지만 무질서 후엔 새로운 질서가 생긴다고 봅니다.
공산주의 멸망 후 자본주의의 무책임함이 2000년대 이후 굳어져간거라고 생각하구요.
그렇게 해서 모든 나라가 파멸적으로 한심한 최후를 맞이할 것인가 꼭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 한심한 최후를 맞이할 나라가 안되도록 노력해야 할 뿐이죠. 물론 한국은 그 한심해져가는, 몰락하는 기존 선진국의 옆자리 틈바구니에 섞여있습니다만.
마지막에 남긴 말씀과 비슷한 내용으로. 패권은 남의 것을 강탈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내걸 나눠줘서 상대를 자기 영향력 휘하에 두는 능력입니다. 미국은 그걸 이제 못하는 겁니다. 존중이고 평화고 자유무역이고 질서고 민주주의고 패권 헤게머니를 포장하던 수식어는 이제 필요 없다는거죠.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역사에서 신석기 시대 이후 빈부의 격차는 존재해왔고, 산업혁명과 같은 시대적 변혁과 혁명적 과정에 걸맞게 순간적 팽창 과정에서 변동은 있어왔지만 그 격차는 더 줄어왔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빈부는 야만의 시대로 그 속에서 잉여 가치에 대한 독점적 지배구조까지 종교와 권력으로 나타나 생존과 죽음의 극단적 격차로 귀결되는 빈부의 격차였습니다.
4차산업에서 자본의 독점적 구조는 노동과 투자의 관점에서 더 공교히 할 뿐이고, 자본의 독점적 구조에 대한 도구로 4차산업은 매우 훌륭한 도구와 노동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줄 수 있다는 희망 회로를 대중에게 선사하는 훌륭한 교육적 도구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의 ai 국가 클라스터 구축과 그 도구로 K-컨텐츠로 시장적 진입과 지배를 이룩하고 이를 다시 기본소득과 복지 예산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세종의 한글 발명에 버금가는 엄청난 발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처럼 이것이 실현된다면 자원 없는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기본 소득이 국가적 시스템 틀에서 구현과 실현되는 현실이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석기시대 불의 혁명에서 나타나는 토기와 발달과 농업의 시작은 잉여 가치에 대한 독점적 권력 구조였습니다. 즉 0.1%의 90%의 소유가 아닌 1인의 샤먼이 잉여가치 뿐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농업 생산물에 대한 독점도 해왔었습니다. 심지어 그 제례에 있어왔던 수분(꽃가루를 암술에 묻히는 것) 제사는 이미 메소포타미아 부조 벽화에서도 나타나는 사먼과 정치 권력의 독점적 구조를 이미 기록하고 있으며, 20세기 초반 점토판 기록에서도 재확인된 바 있습니다.
P.S. 신석시 시대의 종교와 서먼은 지금의 종교적으로 신과 교인간의 관계가 아닙니다. 신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으로, 즉 인간은 신을 위해 사육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메소포티미아에서도 바알과 같은 신적 존재가 있어왔던 것이었고, 이는 고대 원시 종교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절대 권력의 폭압적 존재로써의 신이 존재하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존을 위한 식량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시로 든 0.1%가 90%의 부를 독점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독점적 지배가 존재해 왔었습니다.
그것이 유럽 중심으로 볼 때 몽골의 제국신화 & 페스트로 인한 노동력 감소로 인한 상업과 화폐 교역 과정에서 독점적 구조가 흔들리기도 하고, 산업혁명에서 육체 노동력의 대체로 인한 생산 혁명이 발생하여 종교적 권력에서 자본 중심의 독점구조가 전환된 것이었을 뿐 전반적으로 신석기 시대 이후 축소되어 왔음은 제 주장이 아니라 인류사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즉, 절대 권력과 절대 부의 독점에서 독점 계급의 구조 변화가 있었고, 절대 독점에서 매우 미약하게나마 분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틀을 혁신의 이론으로 가져온 게 막시즘입니다. 즉 독점적 구조 계급에서 집단의 계급으로 그리고 독점에서 파편화된 배분이 아닌 유럽을 지배하던 자본의 계약 구조(루소 계약론)을 흔들었던 대중의 분배를 분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독점적 구조가 정보화에 따라 계량화되고 대중으로 알려져서 그렇지 신석기 이후 부의 독점은 아주 미약하게나마 대중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유럽사에서 대중의 기록을 찾아보세요. 조선시대 양민의 생활사를 보세요. 을병대기근때는 정승 뿐 아니라 왕족도 기아로 죽었습니다. 즉 과거의 권력층과 지금의 보통인이 접하는 의식주 그리고 의료 서비스가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현재 미국 정부 부채는 감당 불가능 지경에 왔기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걸 해결하려면 긴축해서 빚을 갚거나, 인플레이션을 높여 부채를 녹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역사상 긴축으로 빚을 갚은적이 없다고 하네요.
나폴레옹 시대때도 막대한 전쟁 부채를 인플레이션을 높여서 녹여버렸고, 미국도 2차대전 이후에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방법으로 부채의 액면가를 줄여서 갚는 방식을 썼다고 합니다. 앞으로 미국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일단 트럼프의 정책이 관세등으로 혼재된 신호지만 일관된 부분은 재정을 풀고, 인플레를 높이는 방향으로 간다는 겁니다. 부자 감세를 하는것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