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보고 오자 마자 딱 든 생각은...박찬욱 감독 버전 <기생충>이자, 중년 버전 <버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박찬욱 테이스트는 확실히 강렬했습니다.
특유의 클래식 음악 브금, 화려한 색채, 묘하게 흐르는 에로스까지 박찬욱 감독의 상징과도 같은 특징이 잘 녹아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유의 뚝뚝 끊어지는 듯한 대사,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마치 연극처럼 구성된 서사 등은 사실상 이제는 박찬욱 감독의 개성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전했고요.
다만, 대부분이 개인의 내밀한 감정(복수, 사랑)에 집중하던 전작에 비해서, 이번 작품은 조금 더 사회의 모습을 담으려 하는 태도가 보였는데, 이 점이 기생충이나 버닝 같은 기존에 한국 거장들의 작품과 비교될 수 밖에 없어보였습니다.
문제는 그 점에서 살짝 어쩔수가없다가 딸리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기생충은 굉장히 많은 상징(수석, 층계, 냄새)를 이용한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양한 은유와 연출을 통해 계급의식을 표현했고, 서사 구조 역시도 굉장히 촘촘히 짜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수 많은 층위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버닝은 서사 자체는 느슨했지만, 대신 하루키에서 빌려온 대사들의 강렬함과 적절하게 숨겨둔 영화적 장치를 통해 영화적 체험을 더욱 강렬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시각적, 청각적 장치는 훌륭했지만, 저 두 영화에 비해 복합적인 은유를 층층히 쌓았다거나, 가슴을 찌르는 대사가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사적으로도, 너무나 강강강이 지속되다보니 살짝 피로한 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박찬욱 감독의 특징이긴 하지만, <헤어질 결심>이나 <아가씨> 때 처럼 아예 막을 자르는 게 어땠을까 싶긴 했습니다.
물론 장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결말부의 연출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각 주인공들의 성격과 서사 역시 러닝타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각 개성을 잘 살렸다고 느껴졌습니다.(차승원 배우 부분은 좀 부족하긴 한데, 대신 차승원의 죽음이 의미를 많이 지녔기에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역시도 굉장히 다양한 층위로 해석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이 있죠. 이병헌은 술을 끊었고, 이상민은 술에 취해 있다가 술을 끊고 죽었으며, 박휘순은 술을 마시며 죽었습니다.
혹은 가족이라는 포커스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는 범죄의 이야기. 이병헌은 아버지의 월남전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살해 행각을 목격하고 악몽을 꾸죠.
혹은 아내들로 포커스를 맞출 수도 있습니다. 이상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동시에 바람을 피는 엄혜란, 남편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적 매력을 통해 원하는 걸 얻어내려 하는 손예진까지.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함축하는, "어쩔수가없다"라는 모순된 말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도, 바람을 피는 것도, 그리고 사람을 자르는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이 복합적인 서사의 연쇄가 서로 맞물리며 돌아가는 것이 이 영화 전체의 흐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메세지는... 2018년 버닝과 2019년 기생충 때에는 굉장히 서늘한 충고였으나, 2025년에 이른 지금에는 조금은 식상한 느낌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복쟁이들이 술 마시며 파티할 때, 밑에 있는 사람들은 아둥바둥 목숨을 걸며 서로를 죽이고 사는 그 장면은 기생충의 반지하 가족과 지하 가족과의 싸움에선 섬뜩했으나 지금은 조금 진부해진 느낌이네요.
끝나고 평점이나 리뷰를 둘러보니 주인공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개연성에 문제가 있는거 아니냐 라는 내용이 있던데... 전 박찬욱 감독 영화 보면서 주인공에 공감하거나 개연성이 이해된 적 별로 없어서 이번에도 걍 그러려니 했습니다. 당장 올드보이나 박쥐만 보더라도 개연성이나 주인공의 감정에서 보면 공감 안가는 게 수두룩한데요 뭐.
다만 어떻게 만들었든 너무 감독이 짊어진 무게가 무거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작품의 각본 자체가 계속 만든다 만든다 하다가 뒤로 밀렸던걸 생각하면 감독님 개인적으로도 그런거 같기도하고...
아무튼 그래도 간만에 볼 수 있었던 웰메이드라 저는 무척 좋았습니다.
약간 코엔 형제가 메가폰을 잡았으면 좀 더 세련되게 메세지를 연출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신 그 특유의 감성선을 끌어올리진 못했겠지만요
긴장감을 처음부터 계속 유지시켰으면 몰입도가 커졌을텐데 그게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