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싯적에 밤에 좀 놀아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나이트 클럽 근처에 우동이랑 콩국 파는거 많이들 보셨을듯이요.
우동이야 그렇다 치고 유툽 짤방의 대구 콩국은 어디서 온걸까요?

2. 조금만 눈치있는 분들은 콩국이라는게
중국에서 아침에 뚜장에 튀긴 꽈배기 담궈 먹는 음식 아닌가? 하실거에요.
근데 이거랑 명동성당은 또 무슨 상관일까요
3. 개항이후에... 천주교가 국내에 정식으로 포교되면서
우리나라에 서구식 성당들이 지어졌습니다.
주로 설계는 프랑스(우리나라 천주교에 프랑스 카톨릭의 영향이 큽니다) 사람들이 했었죠.
근데 그럼 벽돌은?
4. 우리나라에는 벽돌로 지은 건물이 예전에는 없었지요.
하지만 중국은 달랐습니다. 벽돌 굽는거랑 벽돌 건축양식이 있었죠.
거기다 우리보다 빨리 개항하면서 조차지 같은 곳에 벽돌 건물을 지으면서 나름 노하우가 있었습니다.
5. 서울 명동성당을 비롯해서 대구의 계산성당, 제가 사는 경북 시골 하양의 성당까지
다들 비슷하게 지어졌습니다.
프랑스 스타일의 성당에 중국인 노무자들이 국내에 진출해서 벽돌을 구워서 만들었죠.
비단장수 왕서방 말고 중국의 벽돌 장인들이 국내에서 여기저기 건물을 지었던겁니다.

6. 이제는 대구 만경관 건너의 화교 식당들도 많이 없어지고 벽돌 굽던 그 중국인들도 사라졌지만
어디엔가는 이 시간에도 술한잔 마시고 집에 가는 길에 콩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겁니다.
ㄷㄷㄷㄷ
결론 : 뭐 저는 예전 중국 노동자들이 각 지역에서 벽돌 굽고 쌓으면서 건물 짓던 시절에
그들이 먹던 식사가 현지화 되어서 지금의 콩국이 된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물론 반론이 있으시다면 님의 말이 맞습니다 ㄷㄷㄷㄷ
그냥 잡담입니다.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희생이 많이 따르는… 수녀님을 사촌 동생으로 두셔서 기도 많이 받으시겠습니다^^
주변에 신부님이랑 수녀님들이 좀 많은데 뭐 걍 그렇더라구요 ㄷㄷㄷ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곧 지어진지 100년이 되는 오래된 성당 중 하나죠
친구들과 자리도 없어서 항상 서서 들고 마시다 시피 하면서 먹고 헤어져 집으로 향했던,
술자리의 끝을 알리던 중요한 그런 곳이었는데...
이젠 어디서 다시 맛볼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집근처 채소 도매시장이 있어서 저녁 부터 다음날 도매 장사를 위해 시장이 활발해 지면
저녁 10시 쯤 되면
트럭에 콩국 장사 하시는 분이 시작 했었습니다
트럭에 양철 탱크통 같은 곳에 수도꼭지 달려 있어서
양은냄비에 부꾸미 가위로 쓱쓱 잘라 담고 달린 수도꼭지 에 콩물을 받아서 주던 것을 받아서
가끔 아버지와 함께 야식으로 콩국 먹으러 간 기억이 나네요
대구는 명덕네거리 부근에 몇집 있고 작은 체인도 있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