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주요 흐름을 단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1차 세계대전과 밸푸어 선언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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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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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유대인들의 ‘시온주의 운동’(유대인의 고토 회복 운동)에 큰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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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영국은 같은 시기 아랍인들에게도 전쟁 협력의 대가로 독립국을 약속(후세인-맥마흔 서신)했기 때문에, 훗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모순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2. 영국 위임통치 (1920~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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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을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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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영국은 유대인 이민을 일정 부분 허용했고, 유대인 정착촌(키부츠)과 사회기반 시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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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아랍인과의 갈등(폭동, 학살, 보복)이 격화되자, 영국은 이민을 제한하기도 했습니다(1939년 백서).
3.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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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 국가 건설에 대한 국제적 동정 여론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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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쟁 직후 팔레스타인에서는 영국군과 유대인 무장단체(하가나, 이르군 등) 사이의 충돌이 격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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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더 이상 이 문제를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이관합니다.
4. 유엔 분할안과 영국 철수 (1947~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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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1947년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과 아랍국으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은 국제 관리하에 두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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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유대인 지도부는 곧바로 이스라엘 독립을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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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랍 국가들이 침공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1948~49)이 시작되었습니다.
✅ 정리하면, 영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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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푸어 선언으로 국제적 토대를 마련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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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통치 시기에 유대인 이민과 정착을 가능하게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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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 실패 후 유엔에 문제를 넘기고 철수함으로써 이스라엘 건국을 실질적으로 가능케 한 배경을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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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저러는건 아니러니 하군요...ㅋㅋ
협상에서 카드로 쓸.. (미국이 거부 할수 없는것을 준다면 또.. 슬그머니 버리겠죠)
그걸 이어받은게 미국이구요
에이 쓰레기들
하여튼 역거운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