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치기가 만연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해보면 걱정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왜 갈라치기가 통할까 ?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나와 다른 타인 혹은 내가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 ? 분노 ? 화 ? 뭐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깔려있는 것은 아닐지 ?
기본적으로 지금의 세태는 타인이 나와 다르다면 왜 다를까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40/50에 대한 갈라치기나 남녀 갈라치기가 통한다는 것 자체가 혐오가 통했다는 건데 비난이나 비평전에 타인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하려는 태도가 기본이라면 무조건 적인 혐오가 통하지 않을 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요즘 ‘갈라치기’가 쉽게 먹히는 건,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왜 다를까?”를 묻기보다 “너는 틀렸다”로 바로 가는 습관이 굳어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를 방지하고 완화시키는 데에 저는 제목처럼 “어려서부터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사회체육의 저변 확대”가 꽤 현실적이고 강력한 해법이라고 봅니다.
왜 ‘운동’인가 ?
- 관계가 먼저인 활동: 운동은 규칙과 팀이 만드는 ‘공동의 목표’가 분명합니다. 동료가 나와 다르더라도 함께 점수를 내고, 함께 방어해야 해요. 자연스럽게 타인의 감정·강점·약점을 읽는 훈련이 됩니다.
- 반복적 접촉의 힘: 일시적 캠페인과 달리, 주당 2~3회의 꾸준한 운동은 ‘다름과 함께 성과를 낸 경험’을 누적시킵니다. 익숙함은 낯섦과 혐오를 약화시킵니다.
- 성취와 즐거움의 결합: 땀 흘려 얻는 작은 성취는 분노와 냉소를 중화합니다. 몸을 통해 얻는 긍정감은 온라인의 감정적 과열을 완충합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효과
- 규칙·공정·책임감의 체화: 룰을 지키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웁니다. 이는 사회적 규범 존중으로 이어집니다.
- 다양성과 협력의 상시 경험: 혼성팀, 연령 혼합 리그, 실력 혼합 드릴을 통해 ‘다름이 전력’이 되는 순간을 자주 겪게 됩니다.
- 감정 조절과 회복 탄력성: 패배·부상·슬럼프를 견디고 복귀하는 경험은 타인과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갈라치기는 ‘낯섦과 불신’을 먹고 자랍니다. 반대로 사회체육은 반복되는 함께함으로 낯섦을 익숙함으로, 불신을 신뢰로 바꿉니다. 비난·비평 이전에 이해하려는 태도를 키우는 가장 손쉬운 훈련장이 바로 동네 운동장이에요. 어려서부터 누구나 쉽게, 싸게, 자주 땀 흘릴 수 있는 환경을 깔아두는 것—그게 팀웍을 중시하고 혐오를 통하지 않게 만드는 하나의 현실적인 해결책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초중고등학교 내내 공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교 가는 것을 바꿔서 사회 체육을 꾸준히 한 활동점수도 좋은 대학교 갈 수 있는 요건이 되도록 입시제도를 좀 업그레이드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팀을 이루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한다는 건,
어쩌면 '우리'의 한계선을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를 보다 넓게 설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역효과가 클수도 있을 거 같아요.
대입에 반영되는 순간부터 협업대상이 아니라 경쟁잡니다.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라..대중 스포츠부터....
제가 미국 사는데 위의 글을 쓴 이유가 제 딸이 학교에서 운동을 하면서 변모하는 것을 보고 느껴서 그렇습니다.
미국의 극우는 그 뿌리가 인종주의에 있기 때문에 사회체육과는 별개의 문제고 우리나라에는 해당 사항이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