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개도국들이 극복하지 못한 중진국의 함정을 우리나라가 극복할 수 있었던 핵심요인 중 하나가 저는 인터넷 정보화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국민 여론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으며,
이런 기반 인터넷 환경으로 정부는 효율화 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산업화 기반이 글로벌 리딩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신천지총회장 이만희는 요한일서 4장 1절의 거짓 선지자 신천지총회장 이만희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의 멸망의 아들 신천지총회장 이만희는 베드로후서 2장 14절의 저주 받은 자식 신천지총회장 이만희는 잠언서 25장 14절의 비없는 구름 신천지총회장 이만희는 거짓목자, 영생 못함, 죄인이고 불못에 들어감
그걸 바꾼 게 압도적인 케이컬처였습니다
올림픽? 축구? 피겨? 의미 없었어요
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A%B8%B8%EB%82%A8
1980년대 부터 시작해서 학교와 기업부터 먼저 들어왔죠 그리고 정부의 엄청난 투자로 인해서 광대역통신망이 단기간에 거의 세계최고 수준으로 깔리게 됩니다.
이게 1990년대말 2000대초 이야기 입니다.
(딴지일보가 창간된게 1998년 이였습니다. 그땐 희안한 웹진하나 생겼다며 재밌게 봤었는데 말이죠)
이건 정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빨랐고 강력했던 상황이였습니다.
압도적인 케이컬쳐를 가능하게 했던 것도 우리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감각을 엊을 수 있게 해준 인터넷 덕분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망 구축과 초고속 인터넷을 누구나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건, 그만큼 정보나 문화가 쉽게 들어오고 퍼지게 할 수 있는 힘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전 국민이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영역이었구요.
K컬쳐니 문화니 하는 것이 지금 퍼지고 화제가 되고하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놓은 망 덕에 그 세례를 입은 세대들이 빛을 발했다고 봅니다.
1990년대에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1가구 1PC 정책을 추진했었습니다.
본심은 당시 한국의 여러 PC 부품업체들 먹여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 부작용?으로 엄청난 정보인프라를 가지게 되었고
거기서 부터 초고속 인터넷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한국산이라고 해 봐야 대만에서 칩셋들여와서 조립하는 자영업 수준 정도였습니다.
또한 90년대 세운상가/용산을 기반으로 한 PC소유 열풍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은 정부주도나 정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였었습니다.
대기업이나 브랜드PC(삼보..같은)들은 대부분 자체보드를 90년대는 유지하다가 말씀하신대로 결국 대만에 아웃소싱으로 다 내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래전 기억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바로잡고 싶기 때문에 답글을 드리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또한 IMF극복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김대중 대통령의 인터넷 광대역 통신망 기초투자 정책의 업적을 의도하지 않은 정책의 부작용으로 치부하시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선진국 된 것도 제조업의 힘이었다 생각하고요. 여전히 우린 반도체, 자동차 등을 팔아 압도적으로 많은 돈을 법니다.
극동아시아 3개국으로 대표되는 한국, 중국, 일본의 특징이 사회적 규범이 개인의 자유보다 앞선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은 서구권들은 천재들이 조금 더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또한 미치광이들도 더 많이 나오기도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외국 사람 입장에서 한국 왔을때 불편한 점을 보면 보이는데 해결 안되네요.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해온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요? 인터넷 정보화의 물살을 타고 급발전한거죠.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현인입니다.
이정도의 인물은 위인으로 추앙받아야하는데,
정치병에 세뇌된 멍청한 xx들이 누릴건 다누리고 폄하하는거보면 피꺼솟하네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봐야죠.
전화비로 엄마한테 등짝 오지게 맞으신분 찾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