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장하기를,
한국에 대한 침략에 대하여 자신들이 이미 사과를 여러번 했는데
한국이 계속 사과하라고 요구 한다 라는 것이
일본 극우와 일본 정부의 변명이잖아요.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뻔뻔하다 돈만 밝혀서 그런거다.
이런 망언까지 덤으로 하던데요.
문제는 사과를 했으면 뒤집는다는데 있죠.
진정어린 사과는 피해자 중심으로 피해자 입장에서 받아 들일수 있는 사과를 해야하고
중요한 것은 사과에 담긴 의미를 퇴색하지 않고 반성하고 실천 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사과도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듯 여러 변명을 얹어서 마지못해서 하고는
결국에는 책임없는 사과마져 고위급 관료들이 정면으로 뒤집는 망언과
일본 정부 차원에 역사를 왜곡하고 그들의 침략 범죄를 미화하는 짓거리를 주도 하는데 있습니다.
강제 징용 당하신 분들 그 매질과 학살을 당하면서도 살아 남으신 분들에게 단돈 대략 1달러 정도를 위로금이라고 보낸 기사 보고
이것들이 사람이 맞나 싶더군요.
게다가 위안부 할머님들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말까지.
가끔 가다가 유튜브나 온라인 게시판을 보면
해외 일본 극우나 한국 일뽕으로 보이는 자들이 저러한 변명거리를 하길레 적어 봅니다.
일본의 정한론에 대해 한국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한국은 일본에게 선진 문물을 전해준 것이라 생각하는데 일본 극우 및 고위층들은 그게 아닙니다. 동북아 북방민족의 이동이 있었고, 그 종착역이 일본이고, 한반도는 그 경유지 였을 뿐이었다는 겁니다. 즉 한국의 정통을 신라로 규정하면 북방민족의 이동에 따라 선진문물의 영향을 한반도도 수용한 것이 되고, 그 종착은 일본인 되는 것입니다. 이런 스토리는 일본서기 신화 부분에서도 아마테라스, 스사노오에서 충분히 나옵니다. 고천원과 신라는 배 없이 이동하고 신라에서 왜로의 이동은 배로 이동했다고 분명히 나오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일본의 시원은 백제가 아닙니다. 일본서기에도 나오지만 김건희-건진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아마테라스 그리고 고천원이 어디인가? 분명 일본 열도는 아니고, 신라가 현재 경상도 지역이라 한다면 경상도보다 북쪽으로 기술되어 있죠. 그래서 그 위치를 바로 한국에서는 졸본, 고구려 초기 도읍으로 보는데 고구려를 시원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삼국사기에도 나오지만 졸본은 소서노 세력 즉 졸본 부여세력으로 나옵니다. 신채호 선생의 고조선 이후 열국 시대의 근거 중 하나로 삼조선 시각도 있지만 여기서는 고조선 열국으로 보고, 신채호 선생의 삼조선처럼 소위 부여 열국의 관점으로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즉 위만 조선와 다른 단군조선의 진조선, 번조선은 서로 단군이라 주장하는 많은 세력들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졸본 부여, 비류국 등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게 정한론에도 차용된 것인지...아니면 일본 정한론에서 유입된 것인지 선후 관계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졸본 부여는 한자식 표기이고, 독음은 흘본입니다. 흘은 태양을 가리키고 본은 중심세력을 의미합니다. 부여는 대대로 강림, 강천, 태양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흘본은 일본이라는 해석하며, 북방민족 즉 흘본 부여계, 그게 소서노 집단이며(여기까지는 삼국사기에서 입증되고, 박창화 남당유고(고구려사략)에서도 기록되어 있음), 소서노 집단이 유리 세력의 유입으로 남하하여 백제가 형성되었는데(이 역시도 삼국사기와 남당유고 고구려 사략 등), 비류계의 멸족이 삼국사기에는 바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오나 남당유고 고구려사략에는 4대 이상 존속된 것으로 나옵니다. 이를 삼국사기 왕 계보의 재위기간과 왕위 서열로 온조계와 비류계 통합이 고이왕계와 초고왕계로 구분하는 사학계 해석과 맞물려 있습니다. 어쨌든 이 과정에서 무녕왕, 성왕계에서 백제와 왜 간의 왕위 교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헤이안 시대를 열었던 칸무가 백제계였다는 건 이미 아키히토 천황도 인정했던 바이이도 하고요.
이 흐름이 바로 정한론 즉 흘본(졸본계 부여) - 백제 비류계 - 일본 천황계 구성 - 칸무천황때 통합(헤이안 시대) 이렇게 일본 우익들의 정한론이 정리되는 것으로 읽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