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에 대한 역사서를 보면
여러 나라에서 고려에 조공을 바치고 조공국처럼 굴기도 합니다.
고려의 지도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요.
이 코딱지만한 나라에?
평양 근처에 철령위 라는 것이 있는데 그 위치를
함경남도 안변군과 강원도 회양군으로 잡았습니다. 그 철령위가 고려 경계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근거는요?
없습니다. 식민지 시대 일본인이 만들어낸 이야기지요.
[명나라의 황제 주원장이 1387년(우왕 13) 12월에 철령위 설치를 지시하였다.
이 소식을 접한 고려는 즉각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철령 북쪽부터 공험진(公 鎭)까지가 오랫동안 고려의 영역이었음을 주장하며,
철령위 설치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명나라가 이를 거부하자, 우왕은 직접 평양에 머물면서 전국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최영을 팔도 도통사로,
조민수와 이성계를 각각 좌우군도통사로 삼아 요동 정벌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
간도 땅은 고려의 땅이었다는게 되는 것이죠.
이성계가 위하도 회군을 하는데, 그가 위하도로 가게 된 것은 철령위를 수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일본학자가 함경남도에 있다고 한 철령위를 수복하기 위해 왜 위하도를 건너야 하는지.. 요상한 일입니다.
전 고려의 영토와 함께 통일신라의 영토도 이해가 안됩니다.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와 피터지께 싸웠는데도 영토가 오히려 줄어들어 버리니.
이것도 식민지시대 일본인이 만들어낸 말이지요.
요즘 역사에 대해 느끼는 것이.. 우리도 만약 현재를 잘못 산다면
미래에 후손들은 어떻게 느끼게 될까 염려가 되긴 하네요.
재미로 보셔요.
위 글은 기존의 역사 인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긍정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와 사실 관계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특히 철령위와 위화도 회군에 대한 설명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식민사관의 잔재를 비판하려는 시도는 중요하지만, 올바른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논리를 전개해야 비판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단순히 '국뽕'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현재를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이 학설의 가장 기본적인 물음은 '철령위를 설치한 곳은 강원도인데, 정작 이성계의 고려군은 왜 동쪽이 아니라 서쪽인 요동으로 향했는가?' 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사실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바로 이상하고 느껴질 것이다. 이성계는 철령위를 치러간게 아니라 철령위 설치에 대한 보복조치로 요동을 치러간 것이다. 2차 요동정벌에 대하여 모르지 않고서야 이런 주장이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철령위는 단순히 강원도가 아니라 압록강변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넓은 군사행정구역일 뿐더러 이미 구 쌍성총관부와 그 이북 지역에 대한 명나라의 철령위 설치는 최영이 파병한 군대로 인해 실패한 상태였다. 즉 문제가 되던 지역은 이미 고려의 통제가 확고한 상태였고 철령위를 설치한답시고 투입된 명나라군은 고작 1000여명이여서 4만여명이나 되는 군사를 추가로 파견할 이유도 전혀 없었다.
라고 나오네요
고려사 지리지 서문에서 분명히 언급되기를,
고려는 그 영토가 서쪽은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나 동쪽은 고구려를 넘어섰다.
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만주에 있던 철령을 북한 강원도에 있는 철령으로 보고 고려 영토를 조선 보다 작게 그려놓았죠. 일제 사학자 쓰다 소키치의 악의적인 역사의 왜곡 축소임에도 고의로 방치한 체 지금도 학생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수도가 4개 (개경, 서경, 남경, 동경)나 되고 행정구역인 주,군,현의 갯수는 조선 건국 당시의 3~4배가 넘고 태조 왕건이 동방을 평정하여 삼한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는데 인구 100만도 살지 않았던 한반도 보다 작은 나라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게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는 것이고요.
최소 오늘의 만주를 포함하고 중국의 하북성, 산서성 일부, 산동성, 절강성, 호남, 호북성, 남경(난징)과 상해(상하이) 일대 까지 포함해야 유라시아 제국 몽골을 상대로 30년 넘게 버티고 제국의 부마국으로 살아남았던 국가이자 ”해동천자“가 다스리던 천자국 고려를 복원시킬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장개석이 이시영 임시정부 전부통령께
"자기 고향(양자강남쪽 절강성)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을 하시는가" 물으셨다고 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고려사라는 책이 있기는 한데,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는 거의 못 본 듯 합니다.
우리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지금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밝혀지는 시대가 오리라 믿습니다. ㅎㅎ
송나라가 유목민족들한태 조공했던 시기가 있던걸 생각하면 뭐...
우리 역사는 좀 그러니 고대 이집트 신왕국으로 대체해서 생각해보면, 과연 이 지도가 유효한 지도일까요?
고려 초에 발해 유민만 받아들이고 영토는 포기했기에 조선에 이르러서 영토였다고 주장하기도 아주 애매했을 겁니다.
경제구조도 이미 잡곡에서 멥쌀로 바뀌었도 고려말에는 찹쌀도 대량으로 기르는데, 춥고 척박한 북쪽 땅은 수도작이 거의 안되므로 당대인들에게 매력이 거의 없었을 것 같습니다.
고려사 연구만 제대로 해도.. 현재 한국사의 강역도는 다 바뀝니다.
📌 고려의 실제 영토 정리
철령위 사건 (1387)
명나라가 요령성 철령에 ‘철령위’ 설치 시도 → 고려는 즉시 항의.
고려 주장: 철령 북쪽부터 공험진까지는 오랫동안 고려 영토.
이 문제로 결국 위화도 회군 사태까지 연결됨.
공험진·선춘령
고려 예종 때 설치된 군사 요충지.
현재 위치: 두만강 이북, 만주 지역(오늘날 흑룡강성 방면).
고려와 조선 초기 문헌에 꾸준히 등장 → 실제 경계로 인정됨.
동북 9성 (윤관 설치)
여진 정벌 후 두만강 북쪽 만주에 설치.
고려의 북방 진출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일제 식민사관과 차이
일제는 고려·신라의 영토를 ‘한반도 안쪽’으로만 축소 해석.
그러나 국내 사료와 현대 연구는 만주 일부까지 포함된 넓은 영토로 확인.
✅ 정리:
고려의 영토는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두만강 이북 만주 지역(공험진·선춘령, 동북 9성 일대) 까지 실질적 지배와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즉, “코딱지만 한 나라”라는 인식은 일제 식민사관의 잔재이고, 실제 고려는 훨씬 넓은 국토를 지녔습니다.
17세기 홍타이치가 병자호란때 왜 조선사람들 납치해갔겠어요 인구증식이 안 되는 척박한 땅이어서였죠
지금 만주는 콩도 많이 재배하고 농경지로서 쓸만하지만 1,000~1,500년 전에는??? 그냥 황무지죠.
한반도 북부 이북 지역은 군사적으로 부분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 점 형태로 일부 성곽을 보유했을 가능성은 있겠으나 조선 이후 개념의 영토로 보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