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성심당은 로쏘업체(2001년 법인설립) 라는 회사의 하위 브랜드 빵집이죠.
아니러니 한건 원래 성심당 사업자는 현재 빵사업은 하지 않고 떡을 팝니다.
성심당이 부도난뒤에 경국산업이라고 대전지역에서 목제업을 하던 업체가 인수하고
03년도 뉴성심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04년도 이름을 에스델리로 변경합니다.
그래서 성심당 체인 빵을 만들려다가 이름 바꾸고 빵공장으로 납품하다가..
23년에 공장을 매각합니다.

성심당을 인수하고 이름을 바꾼 에스델라
좌 현대표 송주제 우 경국산업 대표 송흥섭
에스델라 창업일이 1956년인건 성심당 창업일이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법인은 1995년)

23년까지 운영했던 기존 성심당 공장
지금은 김치공장으로 바뀌어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성심당 본점인 현 은행동 153번지를 다른 형재인 임기석씨에게 소유권을 이전했고
해당 건물(본점)을 파탕으로 돈을 빌려 프랜차이즈화 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성심당 법인을 설립 했습니다 그때는 본점 수익률이 줄고 있어서 당연한 선택이긴 했지만
원래 소유권은 임기석씨가 가졌죠
원래 성심당은 대전역근처에서 장사하다가 성당에 가장 가까운 현 케익부띠끄가 있던 자리에 본점을 열었습니다.
현재 성심당 본점이라고 알고 있는곳은 베이커리 겸 레스토랑이 있던 확장 건물입니다.
우동 돈가스 가 맛있었죠..
지금은 반대로 케익부디끄 있는 자리에 우동야 같은 브랜드가 들어가 있죠
결국 확장된 베이커리 레스토랑이 있는 지금 도로 안쪽으로 들어가야 있는
확장점은 현 로쏘 대표인 임영진씨가 분리된 상태로 별도로 떨어져 나갔고
본점은 프랜츠이즈화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부도나서 그뒤는 본문 처럼 인수됩니다
그래서 성심당 이름가지고도 몇년동안 말이 좀 있었죠
현 아들은 망한것중 본점만 인수해서 다시 법인 설립했습니다
결론은 다 망한거 아들이 살려놨죠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임영진 대표의 동생인 임기석이 프랜차이즈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가 시원하게 망하면서 성심당이 망할 뻔한 적이 있었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파리바게뜨, 뚜레쥬르를 포함한 이른바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경쟁적으로 늘어가다 보니까 대전 사람들만 알던 빵집과 전국적인 홍보 CF 속에서 살아남는 빵집은 경쟁이 되질 않았다.[15] 창업주 임길순의 큰아들인 2대 임영진 대표가 프랜차이즈 사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남동생 임기석이 1995년부터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대차게 말아먹고, 부도 처리하면서 대전과 충남 지역에 산재해 있던 공장과 체인점들은 다 문을 닫고 이후에는 본점 중심의 사업을 지속해 왔다.[16] 사업 실패 이후 임기석은 재기를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2006년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임영진 대표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남동생이 죽기 전인 2003년에 미국에서 서로 화해했다는 점이다.
1967년 성심당은 은행동 153번지로 이전을 하였고 제과점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임길순은 제과점 운영보다 나눔과 봉사에 더 관심이 많았고, 한덕순 역시 복잡한 제빵 기술은 익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공장장을 비롯한 제빵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제과점을 운영하였다. 1974년 여름, 임길순의 가족과 한집에 거주하며 일을 하던 공장장과 제빵 기술자 5명이 종적을 감추었다. 제빵 기술이 없는 주인을 상대로 태업을 일삼고 가불을 요구하던 공장장이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기술자들을 데리고 떠나버린 것이었다. 장남 임영진은 어려서부터 제과점 일을 도왔지만 가업을 이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한 순간에 기술자들이 사라져 성심당이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하자 온 가족이 투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영진은 그 때부터 열정적으로 제빵 기술을 익히기 시작하여 1980년 5월 성심당의 대표적 히트 상품인 튀김소보루, 1983년에는 포장빙수를 출시하였다. 1982년 6월, 김미진과 결혼한 임영진은 신혼여행 중 도쿄에서 생크림케익을 맛본 후 1985년 전국에서 두 번째로 생크림 케이크를 출시하는 등 신제품 개발을 이어갔으며, 미술을 전공한 김미진은 참신한 마케팅으로 매출 상승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1983년 대흥동 성당으로 발령을 받은 유흥식 신부를 통해 임영진 부부는 포콜라레 운동을 알게 된다. 이 운동의 정신이 그들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까지는 10여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1985년에는 은행동 153번지의 뒷 건물을 매입하였고, 1992년에는 현재의 성심당 본점인 은행동 145번지로 이사를 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면서 유럽의 빵문화가 소개되고 제빵업계의 트랜드가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공공기업과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대전 외곽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건설되면서 대전의 원도심은 쇠퇴하고 있었다. 성심당 역시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외적 요인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위기가 찾아왔다. 임길순에게는 딸 다섯과 영진, 기석 두 아들이 있었으며 장남인 임영진은 1981년 부터 성심당의 2대 경영주였다. 그런데 성심당에서 형과 함께 근무하던 기석이 독자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임길순은 153번지의 건물을 기석의 소유로 넘겼고, 기석은 건물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한 후, '주식회사 성심당'을 설립하였다. 1996년 대전에는 두 개의 성심당이 있었다. 하나는 개인 사업자인 임영진이 운영하는 은행동 145번지의 성심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임기석의 은행동 153번지의 주식회사 성심당이었다.
은행동 145번지의 성심당 건물 매입을 위한 대출과 153번지의 건물을 기석에게 넘기면서 생긴 손실로 상당한 액수의 부채가 발생하면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임영진은 1997년 여름,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잠적했다. 성심당의 직원 80여명은 일제히 사표를 내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임기석의 성심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영진의 성심당은 한 달 반동안 문을 닫았다. 그 후 다시 각오를 다진 임영진은 17년간 성심당에서 함께 일했던 박병선 과장과 함께 성심당의 영업을 재개했다.
임기석의 성심당(주)는 대전 동구 하소동에 프랜차이즈 공장을 차렸고 24개의 가맹점을 확보하였지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금 압박에 빠졌다. 임길순은 임영진에게 다시 은행동 153번지를 인수할 것을 제안했다. 임영진은 막대한 부채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다시 대출을 받아 153번지의 건물을 인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임기석은 계속하여 사업규모를 키워 나갔다. 2001년 4월에는 미국의 L.A.의 한인타운에 직영점을 열었다. 그러나 2000년 58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은 2001년 46억원, 2002년에는 37억원으로 하락했고, 그 해 말에는 군납을 하는 수원공장을 폐쇄하였다. 2003년에는 국세 체납으로 군납을 할 수 없게 되었고, 3월 24일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올려 주신 글을 보면, 동생이 본점을 물려받아 새로운 법인을 새운 것으로 나옵니다. 장남은 1981년도 부터 2세대 경영주가 되었구요.
그런데 성심당에서 형과 함께 근무하던 기석이 독자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임길순은 153번지의 건물을 기석의 소유로 넘겼고, 기석은 건물을 담보로 자금을 마련한 후, '주식회사 성심당'을 설립하였다. 1996년 대전에는 두 개의 성심당이 있었다. 하나는 개인 사업자인 임영진이 운영하는 은행동 145번지의 성심당이었고, 다른 하나는 임기석의 은행동 153번지의 주식회사 성심당이었다.
이렇게 복잡할 땐 사람들이 성심당이라고 하는게 성심당이죠
왜 한국말인데 이해할 수가 없게 써놓는거죠?
뭘 보고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글을 쓰신 건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