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 OSCE (유럽 안보 협력 기구) 옵저버: 우크라이나와 NATO가 돈바스 전쟁에서 러시아를 도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서방 언론이 무시한 진실
AI로 영상요약 했습니다.
이 유튜브 영상은 전 프랑스 국방부 관리이자 유럽 연합의 전직 관료인 Benoît Paré(브누아 파레 )의 저서 "What I Saw in Ukraine 2015 to 2022, Diary of an International Observer"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과 전개 과정에 대한 서방의 주류 서사에 반대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https://www.amazon.com/What-Saw-Ukraine-2015-2022-International/dp/295986011Xamazon
'내가 우크라이나에서 본 것 2015년 ~2022년까지 OSCE (유럽 안보 협력 기구) 국제 옵저버로서의 일기'
브누아 파레는 OSCE (유럽 안보 협력 기구)의 국제 옵저버로서 돈바스 지역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NATO가 러시아를 도발하여 돈바스 전쟁을 야기했다고 주장하며, 민스크 협정 파기, 우크라이나군의 돈바스 지역 포격, 아조프 대대와 같은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잔혹 행위, 그리고 러시아 문화 말살 정책 등을 비판한다.
그는 서방 언론이 이러한 현실을 은폐하고 러시아를 일방적인 침략자로 묘사하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렸다고 지적한다.
-OSCE 감시관이었던 브누아 파레가 우크라이나에서 목격한 진실은 무엇인가?
브누아 파레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분리주의자 측보다 포격을 더 많이 가했으며, 돈바스 지역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점령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했습니다. 또한, 아조프 대대와 같은 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나치즘 연관성과 잔혹 행위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민스크 협정 실패의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브누아 파레는 민스크 협정 실패의 주된 책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보며, 특히 돈바스 지역의 자치권 부여를 위한 헌법 개정 법안 통과를 거부한 점과 러시아와의 국경 통제 순서 변경 요구를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1. 돈바스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격과 주민들의 분노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는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OSCE 옵저버 베누아 파레의 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분리주의 세력보다 더 많은 포격을 가했다고 해요 .
심지어 정부 통제 지역의 주민들조차 대부분 분리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모습이었죠 .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군대가 유치원을 점령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했고 , 또 다른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우크라이나군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어요
이들은 아이들을 위협하고 집을 약탈하며 심지어 자신들이 사는 마을까지 포격했다고 비난했지만 , 이러한 증언들은 OSCE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어요 .
2. 서방 언론의 침묵: CNN이 보도했던 돈바스의 비극
2014년 CNN 보도를 보면 돈바스 주민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어요.
당시 CNN은 도네츠크 시민들이 포로셴코 대통령이 자국민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
한 여성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인이지만 그들이 우리를 죽인다"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어요 .
병원에는 포격으로 다친 민간인들로 가득했고 , 할머니는 "나는 2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났지만,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죽을 것 같다"며 슬퍼했어요 .
이처럼 충격적인 현실이 CNN을 통해 잠시 보도되었지만 , 지금은 이러한 진실을 말하면 러시아 선전이라고 비난받는 상황이에요 .
2014년 CNN은 돈바스에 대한 생생한 진실을 보도했는데, 지역 주민들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영상은 AI가 아니라 제가 삽입했습니다.)
https://twitter.com/DD_Geopolitics/status/1797300525530308940
2014년 6월 우크라이나 공군의 Su-25 공격기가 월요일 근무 시간 중 가장 바쁜 와중에 도시 중심부를 폭격했습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루간스크 지역 행정 건물이었다. 이 공격으로 8명(여성 5명, 남성 3명)이 사망, 당시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들은 전투기가 없었음. (이 영상은 AI가 아니라 제가 삽입했습니다.)
3. 아조프 대대의 그림자: 네오나치 세력의 잔혹 행위와 서방의 외면
아조프 대대와 같은 극우 세력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어요.
OSCE 감시자는 마리우폴 인근 아조프 대대진지에서 곳곳에 그려진 스와스티카와 아돌프 히틀러의 초상화를 직접 목격했다고 해요 . 심지어 아조프 대원들은 나치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촬영하기도 했죠 .
2018년에는 아조프 대대보안팀원조차 "우리 대열에 아직 나치들이 있다"고 인정하며, 다만 "미친 사람들은 제거했고, 나머지는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요구했다"고 말했어요
우크라이나는 2015년에 나치 상징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 이는 서방의 압력 때문이었고 , 2022년 러시아침공 이후에는 나치 상징들이 다시 등장했다고 해요 .
4. 민스크 협정의 좌절: 평화를 가로막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책임
민스크 협정은 우크라이나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요한 약속이었어요.
특히 2015년 2월에 체결된 민스크 2차 협정은 13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었죠
이 협정의 핵심은 돈바스 지역에 자율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위해 우크라이나의회가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었어요 .
하지만 2015년 8월 31일, 우크라이나의회 주변에서 극렬 민족주의 시위대가 시위를 벌였고 수류탄 폭발로 경찰관 3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어요
결국 의회는 돈바스 자치권 부여를 위한 헌법 개정을 거부했고 , 민스크 협정은 사실상 좌초되고 말았죠 .
OSCE의 자료에 따르면 2016-2018년 동안 루한스크 지역에서 발생한 포격피해의 75%가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의해 발생했으며 , 민간인 사상자의 72%가 분리주의 지역에서 발생했어요 .
5. 젤렌스키의 딜레마: 평화냐, 극우 세력의 압박이냐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대선에서 돈바스 평화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어요 . 그는 취임 직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여 평화를 지지하는 다수당을 만들려 노력했죠 . 하지만 취임 며칠 만에 극우 세력의 강력한 경고에 직면하게 돼요
극우 단체 '우익 섹터'의 창립자인 드미트로 야로쉬는 젤렌스키에게 민스크 협정을 이행할 경우 키이우 한복판에서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협박했어요
게다가 미국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우크라이나NGO들이 발표한 '레드라인 메모'는 젤렌스키가 민스크 협정을 이행하거나 포로셴코 행정부의 법률을 변경하면 "반역자"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어요
마치 미국 딥스테이트가 젤렌스키에게 움직일 수 없는 선을 그어준 셈이었죠 .
6. 전쟁 직전의 긴장: 우크라이나의 도발과 러시아의 침공
2022년 러시아침공 직전, 돈바스 지역의 긴장은 극도로 고조되었어요.
OSCE 감시자들은 2022년 2월 16일부터 휴전 위반 사례가 급증했다고 보고했어요 .
특히 야간 카메라 데이터 분석 결과, 우크라이나 측이 대부분의 포격을 가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해요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측이 파파스나 지역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유도하기 위한 도발을 조직했다는 증언도 나왔어요
마치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정보를 통해 러시아의 공격 시점을 알고 있었고, 러시아가 침공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죠 .
7. 문화적 학살: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의 말살 시도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에서 ‘집단학살’과 ‘인종청소’ 주장을 했으나, 이는 과장된 표현.
러시아 침공 전부터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화에 대한 탄압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포로셴코 정권 때 통과된 언어법은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죠
이는 단순한 언어 문제를 넘어 러시아 문화 전체를 말살하려는 시도로 비춰졌어요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어 책을 찾을 수 없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았고 오데사에서는 러시아어 수업 시간에 푸시킨 시를 러시아어로 읽었다는 이유로 문학 교사가 법을 어겼다고 비난받는 일도 있었어요
이런 극단적인 조치는 독재 국가에서나 볼 법한 일이었고, 러시아 침공 이후에는 푸시킨 동상이 체계적으로 철거되는 등 러시아 문화 말살이 더욱 심해졌어요
8. 평화의 길은 어디에: 협상 거부와 전쟁 장기화의 비극
러시아는 평화 협상을 제안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장기화하는 길을 택했어요.
러시아는 민스크 협정의 실패가 우크라이나와 서방 때문이라고 보았고 , 프랑스와 독일 전직 정상들도 민스크 협정이 우크라이나의 재무장을 위한 시간벌기용이었다고 인정했죠
푸틴은 새로운 휴전 협정인 '민스크 3'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영구적인 평화 협정만이 가능하다고 밝혔어요
하지만 우크라이나민족주의자들은 어떤 타협도 배신으로 간주하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 심지어 평화 협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사람들을 반역죄로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졌죠 .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문가들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가 더 큰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어요 .
결론: 전쟁의 본질과 앞으로의 전망
브누아 파레 는 전쟁이 조직적 왜곡과 정치적 조작으로 인해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
그는 평화 협상과 현실 인식을 촉구하며, 무분별한 전쟁 연장을 우려.
결국, 진실을 알리고,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
2016년작 "혁명의 가면을 쓴 우크라이나" (한글자막 선택 지원됨)
극우가 우크라이나 역사에 개입할 때
FIPA(Festival International des Programmes Audiovisuels)는 이 다큐멘터리를 2016년 선정작에 포함했습니다.
프랑스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Canal +에 영화 상영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해당 프랑스 채널은 상영을 강행했습니다. 많은 요청에 따라 이 영화는 Canal+에서 여러 번 더 상영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이탈리아 와 폴란드 등 다른 국가에서도 상영되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든 프랑스인 다큐 제작자 폴 모레이라는
2018년 "러시아 정보 전쟁 기계 내부", 러시아가 여론을 조작하고, 민주 정부를 붕괴시키고, 세계 사건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방식.
2023년 "푸틴과 과두정치", 유럽 내 러시아 자본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다큐 맨 처음에 나오는 장면,
"우크라 극우민족주의자들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 마이단 혁명은 없었을것입니다"
다른 말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가 없었다면 마이단 쿠테타는 성공하지 못 했을것이다.
마이단이 쿠테타란 주장이 러시아 선동선전이라고 어떤 분 피꺼솟하던데,
2022년 이전 전쟁나기 전에는 서방 정치인들, 학자들, 언론인들도 마이단은 쿠테타 coup 라고 거리낌없이 말해왔던 영상들, 기사들 넘쳐 납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는 마이단은 쿠테타란 발언은 금단, 금기가 되 버리는 골 때리는 일이 벌어졌죠.
'침략받은 불쌍한 우크라이나를 그렇게 폄하,비난하고 싶으신가요? 참 훌륭한 심성을 가지셨네요'
뭐 이런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마이단이 본질적으로 쿠테타, 가짜깃발 작전이었고 시위대를 저격한 건 우익섹터였고 자작극이었단 자료 (bbc 당시 영상,인터뷰), 이후 마이단 관련 우크라 재판기록 나온거 수두룩하고 과학적,탄도학적으로 자작극 저격이었단 논문까지 나왔는데 이미 전쟁까지 터진 마당에 아무도 관심이 없죠.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23311886.2023.2269685#abstract
https://econjwatch.org/File+download/1340/KatchanovskiMar2025.pdf?mimetype=pdf

우크라이나 마이단 학살: 세상을 바꾼 대량 학살 이반 카차노프스키 지음
수천 시간 분량의 영상, 영상 자료, 300명의 목격자 증언, 그리고 탄도학을 분석하여 마이단 학살이 마이단 지도자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증명합니다.
https://multipolar-magazin.de/artikel/katchanovski-maidan-snipers
키이우 법원, 마이단 저격수들이 호텔 우크라이나에서 총격을 가했다고 확인
마이단으로 친미 정권이 들어서자 크림병합이 이뤄졌고 쿠테타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우크라군을 보내면 무기,장갑차 몰고 분리주의 반군진영으로 투항해버리자, 마이단 정부에선 네오나치를 보내서 돈바스 내전이 일어나고, 민스크 휴전협정은 유야무야 안 지켜지다가 2022년 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유럽처럼 잘 살고 싶다는 희망을 미국 네오콘 세력이 이용해서 마이단 쿠테타 색깔혁명을 일으키고, 우크라를 무기화해서 러시아를 피 흘리게 하고 대러 경제재제와 전쟁으로 러시아를 붕괴 시킬수 있단 플랜은 2019년 랜드연구소 보고서로도 나왔었고, 서방 정치인들, 씽크탱크, 네오콘, 네오리버럴들이 공공연히 주장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무려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5년에서 1953년까지 우크라 서부에서 미국,영국의 지원을 받는 반데라 민족주의자들과 소련군이 내전을 했었고,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관심이 동북아로 전환되자 내전은 끝나고 설아남은 반데라 잔당들은 미국,영국에서 유럽과 미국,캐나다로 피신을 시킵니다. 이들은 반공투사로 포장되고, 서방 곳곳에서 활약하고 그 후손들은 2대 3대를 넘게 우크라 민족주의가 애국이라 믿고 살게 되죠.
이런 우크라 민족주의자들을 하버드에서 초빙해 만든게 1973년에 설립된 '하버드 우크라이나 연구소'입니다.
세르히 플로키 하버드 우크라이나 연구소 소장
반데라는 민족주의자, 애국자일뿐이라고 말 돌리는거 보면 참 거시기하죠.
1953년에 우크라 서부, 반데라 민족주의자들을 이용한 소련 내전이 실패로 끝나자,
1957년 미국 CIA 에서 다시 소련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을 이용한 상륙 작전계획을 세웁니다.
우크라이나를 12개 구역으로 구분, 대상 지역 주민들의 충성도를 바탕으로 미군 특수부대 병력 상륙 가능성을 검토.
제2차 세계 대전 중 MI6의 지원을 받는 스테판 반데라 추종자들인 "우크라이나 반군 "의 강력한 통제 하에 있었던 리비우, 리우네, 트란스카르파티아, 볼린 등 과거 폴란드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가장 성공적인 "저항"의 거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곳에서는 "민족주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무장 민병대가 "친소련 게릴라"에 맞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 반데라파가 유대인, 폴란드인, 러시아인을 대량 학살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계 비민족 인구는 사실상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https://www.kitklarenberg.com/p/declassified-cias-covert-ukraine
CIA 홈페이지 링크로 볼수 있는 기밀해제 자료
https://www.cia.gov/readingroom/docs/CIA-RDP81-01043R002300220007-1.pdf
소련이 망하자 서방에서 러시아 에너지회사들 나눠먹기에 성공했으나 쫒겨나게 되고, 2013년에 마이단 색깔혁명으로 우크라 정권을 친미정권으로 교체하고 러시아 다시 붕괴시켜보자 했던게 우크라 전쟁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실패로 결말나고 있고 우크라이나만 무기화되서 이용되어지고 거의 나라 망하고 버려질 신세가 된겁니다.
좋아하는데요.
이렇게 장문이면, 진심 한줄도 읽기 싫어요 힘들게 준비하셨을텐데요. ㅠ
짧게, 요점만요.
그 내용이네요. 그리고 요약은 에이아이 아니겠습니까~^^
1줄 요약 핵심은,
우크라 네오나치 덕분에 마이단이 성공했는데, 그 놈들 때문에 우크라 망하게 생겼다
이겁니다.
인지 간단한 게 좋아진거
같습니다.
여기 계시군요 ^^
잘 읽고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