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1952년에 시작된 애국위생운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운동으로, 유해생물인 모기, 파리, 벼룩, 참새를 제거하자는 운동이다. 원래 애국위생운동은 인민들의 위생관념을 향상시켜 전염병을 예방하고 평균수명을 늘리자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며, 1958년 제사해 운동이 여기에 추가되어 실시되었다.
마오쩌둥의 한마디로부터 비롯된 타마작 운동은 말그대로 중국 정부와 지식층, 농민들 대부분이 동원되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참새가 농작물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농촌은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거리로 나가 참새들을 한시도 쉬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말 그대로 나는 새를 탈진시켜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1958년 2억톤의 곡물생산량을 보여 피크를 찍었으나, 대약진운동이 개시된 1959년에는 1억 7천만톤으로 급감했고, 대약진운동의 부작용이 극심했던 시기인 1950-61년에는 1억 4천만톤으로 더 급감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기근을 불렀는데, 이것은 참새 감소로 인한 병충해 증가의 원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인민공사로 대표되는 집단농장은 기본적으로 중국같은 나라의 농업생산에는 맞지 않는 경영 방법이었다.
이 모든 것이 악재로 작용하여 적게는 2천만, 많게는 5천만이 기아로 사망하는 참극을 냈다. 상하이 출신 학자 차오수지(曹树基)는 공식적 지방정부 자료에 의거해 3250만 명 사망을 주장하였고, 1980년 무렵의 공식 조사팀 일원이였던 천이쯔는 4,300만~4,600만 명 사망을 주장했다. 독자적 조사를 실행한 조사관 위시광은 5,500만 사망설을 주장하였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6,000만 명 이상을 주장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마오쩌둥은 1959년 루산회의에서 이런 참극을 빚은 자신을 비판한 펑더화이를 실각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주도한 대약진운동 실패 및 대기근의 책임은 명백했기 때문에 국가주석직을 사임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류사오치가 마오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에 오르고, 덩샤오핑이 중앙위원회 총서기겸 부총리를 받으면서 인민공사를 사실상 해체하고 텃밭 생산물을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개혁조치를 취했다. 당연히 1958년 씨를 말린 참새수는 복원되지 않았지만, 그런 개혁조치만으로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나서 1961년이 되면 기근은 사라지게 되었다.
나무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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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어뜻 보기엔 약육강식처럼 보여도 작은생명체도
순환써클에서 빠지면 심각한 사태를 불러 온다는 거쥬
모든 생명체의 근간이 되는 저 태양도 사실 자신을 태우며 은하 중심을 공전하고 있고요
약육강식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만을 보고 만들어 낸 무지의 산물이라고 보이네요
현재 이상기온과 자연재해도 인간들의 자연파괴 때문이쥬
그런데 중국은 그런 저돌적인 방식으로 ai,로봇강국이 되어서 달에 탐사선을 쏘고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죠
잘못된 지도자의 잘못이죠.
이승만 박정희 윤석열이 공산주의 체제라 나온게 아니죠
군인, 시인, 철학, 사상가로는 뛰어난 인물이지만 하필 그런 인간이 공산당 지도자였고.. 그놈의 권력욕에 중국의 발전을 크게 후퇴시킨 미친 인간이죠
이번 베이징 홍수 때도.. 그냥 댐의 수문을 새벽3시에 열어버려서.. 하류쪽 사람들 많이 죽었죠. 발표를 안하는 거지..
공산당 자체가.. 인민위에 군림하는 구조라서.. 답이 없는 체제 입니다.
저위에 공산주의 체제도 괜찮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게.. 놀라울 뿐이네요. 광주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들으면 한탄하실 듯..
위 글에도 참새의 수는 복원되지 않았지만 개혁조치로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어 기근이 사라졌다고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