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폭민의 탄생과 (당시)여당이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 썼습니다. 과거 역사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글이었습니다. 반년이 더 지났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게 가장 불행한 예측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기쁘기만 해도 스물네시간이 모자랄 광복 80주년에, 애타는 마음으로 다시 글을 남깁니다.
공화국의 묵시록
우스꽝스러운 별종의 궤변에 폭민의 열정과 동의가 더해졌을 때. 이 열정을 이용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무기력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이 제도권 안으로 그들을 초대했을 때. 그 불쾌한 박수소리가 기어이 현실에서 드라마틱하게 시각화되었을 때. 마침내 파멸의 종이 무대에 섭니다.
종을 치는 건 언론입니다. 특히 가장 나쁜 종류의 불의와 불법조차 "서로 다른 의견"으로 고쳐쓰는 데 능숙한 언론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들이 애호하는 단어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체제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조차 정론직필의 필터를 통과하고 나면 상품에 불과합니다. 점수를 매기고 매대에 진열합니다. 이들이 "우스꽝스러운 궤변"을 제도권에서 다룰 수 있는 의제로 인증해주고 그에 합당한 권위를 제공합니다.
이 모든 걸 막기로 예정되어 있던 시스템은 하나 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회가 있어도 막지 못합니다. 상식과 배려라는 룰을 혼자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지키는 룰은 규칙이 아니라 족쇄이고 그걸 끝까지 고수하며 제 멋에 겨운 자는 기사가 아니라 머저리입니다. 다들 이런 건 처음이라 경험치가 없기도 합니다. 대응한답시고 되레 세만 키워주는 꼴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별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인 장본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애초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 공화국의 적들은 빠르게 굴복하여 충복으로 거듭나는 길을 선택합니다.
결국 파멸의 종소리가 세상을 뒤덮습니다. 극우는 그 자체로 어떤 것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단지 열정의 언어로 혐오와 분노를 거듭할 뿐입니다. 그래서 언뜻 역동적이나 결국 파멸적입니다. 공동체의 가장 약한 주체들부터 하나씩 제거합니다. 혐오할 게 모자라면 외부로 눈을 돌립니다. 이후는 짐작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 파멸은 동조한 자들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다른 모두를 끌고 들어가 마침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무자비하게 타오를 거라는 점에서 공멸입니다.
적시는 이미 지났습니다. 교육 현장부터 교회,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도권에서 극우를 몰아내야 합니다. 지금 수준으로 극우가 자리 잡은 적이 없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한번 제도권에 들어온 극우는 반드시 피를 불렀습니다. 국민의 힘은 오만과 광기로 괴물을 만들어 세상에 풀어놓고는 제일 먼저 죽어 퇴장할 영화 속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국민의 힘 해산은 법치의 결과일 뿐 누구의 목표도 과제도 아닙니다.
보수가 바로 서는 작업과 함께 진영을 초월하는 초당적, 범사회적 결단으로 극우를 빠르게 뽑아내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혐오 발언을 마주했을 때 불편을 감수하고 지적해야 합니다. 나와 유사한 생각들로 가득한 곳에 머물지 말고 모두 고루 돌아봐야 그에 따른 대응 방법도 유연하고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넷상에서 교묘하게 혐오를 조장하는 조직적인 복사-붙여넣기 글들에 대응해야 합니다. 각 커뮤니티의 인기글이 종합되는 메타 스레드를 확인하면 이런 조직적인 움직임을 확인하는데 유용합니다. 우리들의 행동이 이미 지나버린 적시를 돌이킬 수 있습니다. 우리 제도가 그렇게 취약할리가, 라고 낙관하는 순간 이 모든 건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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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나치가 걸어간 길을 또 걸을 수 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