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칼럼 HumanX
언론–정치 복합체의 진화: 조중동에서 김어준까지
2025. 08. 13
한국 현대사의 언론 지형을 돌아보면, 정치와 언론이 유착하며 만들어낸 ‘언론–정치 복합체’라는 권력 구조가 끊임없이 형태를 바꿔가며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 원조 격은 단연 친일 언론으로서의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즉 ‘조중동’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친일 경력과 해방 이후 반공·보수 이념을 결합해, 군사정권과 문민정부 시기까지 권력의 우산 아래 언론 권력을 축적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1920년 창간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 논조를 보였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과의 유착을 통해 생존했다. 중앙일보는 1965년 창간 당시부터 박정희 정권의 후원을 받았으며, 동아일보 역시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정치 권력과의 밀월 관계를 통해 여론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권력에는 공격적인 보도를, 유리한 권력에는 방패막이 역할을 자임했다. 이는 단순한 언론의 정치적 편향을 넘어서, 언론과 정치권이 구조적으로 결합하여 사회 전반의 담론을 통제하려는 시스템적 권력 관계를 유지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언론은 사실상 국가 권력 일부로 편입됐다. 1970년대 ‘언론 통폐합’과 ‘보도지침’은 언론의 자율성을 완전히 말살했고, 조선·동아·중앙 중심의 보수 언론 구조가 공고화됐다. 이 시기 언론–정치 복합체는 정권의 선전·선동 기구였으며, 불리한 사건은 은폐·왜곡하고 유리한 정보는 확대 재생산했다. 1960-80년대 경제 성장 과정에서 조중동은 ‘반공 발전론’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을 통해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했다. 이들은 민주주의보다 경제 성장이 우선이라는 논리를 지속해서 확산시켰고,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불순 세력’으로 규정했다. 특히 1980년대 3저 호황기에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비판적으로 홍보하면서, 부작용인 부동산 투기나 임금 격차 확대 문제는 외면했다.
90년대 이후 민주화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이들의 절대 권력은 일부 약화하였으나, 언론–정치 복합체의 구조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터넷 포털과 SNS라는 새로운 매체 환경은 다른 형태의 복합체가 부상할 토대를 마련했다. 정통 보수 언론의 지배력이 줄어든 자리를, 대안 매체와 파괴적 미디어 인물이 채워나갔다. 이명박 정부 시기 보수 권력은 다시 공영방송 장악을 시도했고, 미디어 환경은 점차 온라인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보도 왜곡과 편파성 논란은 전통 언론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고, 대신 팟캐스트와 SNS, 유튜브가 정치 여론 형성의 핵심 무대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상한 인물이 김어준이다. 김어준은 전통 언론의 프레임과 거리를 두면서도,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그 어떤 전통 언론인 못지않다. 그는 ‘팩트 전달’보다 ‘의제 설정’과 ‘프레임 전쟁’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라디오·팟캐스트·유튜브 등 다매체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산시켰다. 기존 언론이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여론을 형성했다면, 김어준은 팬덤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직접적이고 감정적인 설득 방식을 구사했다. 그의 미디어는 전통 언론과 달리 소속 조직의 제약이나 내부 편집권 통제가 거의 없어, 발언이 곧바로 정치적 파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는다.
김어준으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의 특징을 분석해보면, 첫째는 ‘개인 브랜드의 절대성’이다. 전통 언론에서는 신문사나 방송사의 브랜드가 개별 기자나 앵커보다 중요했지만, 1인 미디어에서는 개인의 캐릭터와 신뢰도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둘째는 ‘직접성과 즉시성’이다. 편집부의 검증 과정 없이 개인의 판단과 해석이 바로 콘텐츠가 된다. 셋째는 ‘양방향 소통의 극대화’다. 댓글, 채팅, 후원 등을 통해 수용자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형성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1인 미디어가 기존 언론보다 훨씬 강력한 정치적 동원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팩트 체크나 균형 보도 같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는 상당히 자유롭다는 문제점도 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언론 지형은 완전히 양극화됐다. 보수 진영은 여전히 조중동을 중심으로, 진보 진영은 김어준을 대표로 하는 1인 미디어와 대안 언론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공론장을 심화시키기보다 분절시키고 있다. 양 진영은 서로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폐쇄적인 여론 생태계를 구축했고, 국민은 같은 사건을 완전히 다른 현실로 인식하는 병렬적 진실 체계 속에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언론–정치 복합체는 보수 대 진보, 구언론 대 신언론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재편됐다. 조중동이 여전히 보수 진영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면, 김어준은 진보 진영에서 거의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언론과 정치의 경계를 허물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민주주의의 ‘건강한 공론장’을 심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양극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첫째, 언론이 정치화되면 사실의 전달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서게 된다. 이는 ‘편향 보도’라는 차원을 넘어, 국민이 같은 사안을 전혀 다른 현실로 인식하게 만드는 병렬적 진실 체계를 만든다. 조중동과 김어준 진영은 서로를 ‘가짜뉴스’로 규정하며 자기 지지층을 결집하고, 그 결과 공론장은 단절되고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둘째, 이러한 복합체의 영향력은 정치인의 의제 설정에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정치인들은 언론의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복합체와의 관계를 관리해야 하며, 심지어는 비판을 피하고자 정책보다 ‘언론 노출’ 전략에 치중하기도 한다. 그 결과 정치 의사결정이 ‘국민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여론 주도 세력의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셋째, 국민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언론–정치 복합체는 단순히 뉴스 소비 패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정체성 자체를 고정화한다. 조중동의 구독자는 보수적 사고 틀에, 김어준의 청취자는 진보적 사고 틀에 갇히는 경향이 강해지며, ‘정치적 이민’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가 형성된다.
결국, 조중동에서 김어준까지 이어진 언론–정치 복합체의 진화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 그것은 언론의 정치 권력화이며, 정치의 언론 종속화다. 민주주의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언론이 특정 정치 세력의 일부로 기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정치로부터 독립하고, 시민이 언론–정치 복합체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자율적 판단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의 복합체가 등장할 때마다 그 영향력에 휘둘리는 민주주의의 악순환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출처 : https://www.p-um.net/p/community/think/cme98eoox01mz01ah0ipbxy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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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어준과 양정철이 맘대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밀어부친것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인사에도 관여하고 선거에도 관여하며 언론의 선넘기 정치가 정청래에 이르렀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패턴에 김어준의 안목없는 비전문가의 인사가 민주당과 시민들에 큰 해악이 되었는데, 김어준에 감정이입하고 문재인에 감정이입하고 정청래에 감정이입하는 멍청한 시민들이 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과 언론인은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데 취재원과 유착하는 주진우, 정청래, 김어준은 정말 자격상실까지 갔다고 생각합니다. 비판적으로 보는 기류가 생겨야 합니다.
선거에서 과거와 현재의 팩트체크도 없이 투표하는 것은 내 권리를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윤석열과 이낙연 홍남기같은 인사를 했던 것이지.
경상도가 경상도에만 있는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부패기득매국세력들과 목숨걸고 대항해서 여기까지 나라를 몇번을 구해온
김어준을 동급으로 놓고 관조하는 기계적 중립 논평을 하는거 자체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