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의 한 카페.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한국 팀 ‘T1’ 유니폼을 입은 베트남 여성들이 최현준(25·활동명 도란) 선수 사진이 빼곡히 붙은 벽을 배경으로 연신 셔터를 누르며 이같이 외쳤다.
일부는 휴대폰으로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e스포츠 월드컵(EWC) LoL 종목 3·4위전 T1과 G2(유럽)의 경기를 시청하며 목청껏 응원했다. 태풍 ‘위파’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카페 안은 100명이 넘는 팬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날 행사는 최 선수의 데뷔 6주년(2019년 7월 20일)과 생일(2000년 7월 22일)을 기념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했다. 한국에서 아이돌 팬들이 ‘연예인 없는 연예인 생일 파티’를 여는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e스포츠 팬 이벤트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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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을 연상케 하는 이 열기는 e스포츠가 베트남에서 게임을 넘어 하나의 ‘한류 콘텐츠’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e스포츠 시장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다. 특히 LoL의 한국 리그인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코리아(LCK)’는 현지 MZ 세대 사이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베트남 팬들은 온라인 생중계로 경기를 시청하고 페이스북 팬 그룹에서 활발히 정보를 공유하며 응원 문화를 이어간다. 이들의 ‘덕질(팬 활동)’은 K팝 팬덤과 다르지 않다. 최애(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선수 생일이 다가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생일 카페(카페를 대관해 연예인 등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벤트)’를 연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선수 얼굴이 담긴 포토 카드(포카)나 굿즈를 사는 데 수천만 동(수백만 원)을 아낌없이 지불하기도 한다.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행운의 부적’을 사 모으는 이들도 있다.
지난 6월 호찌민시에서 열린 HLE 팬미팅 행사에도 수천 명이 몰렸다. 2,500석 규모 체육관은 예매 시작 4분 만에 전석 매진되면서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인기를 입증했다. HLE를 이끄는 최인규 감독은 “예전에는 이 정도 인기가 아니었지만, 좋은 성적이 꾸준히 이어지고 게임 외 분야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함께 높아지면서 LCK 인기도 더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쩐 바오 민(18·활동명 레이지필) 선수가 베트남인 처음으로 LCK에 진출하면서 현지 팬덤은 한층 더 확장됐다. 자국 선수가 ‘빅리그’에서 뛰자, 2000년대 한국 축구 팬들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진출한 박지성 선수를 응원한 것처럼 베트남인들도 폭발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현지의 뜨거운 관심은 경기가 중계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LCK는 현재 온라인을 통해 한국어·영어·베트남어 등 5개 언어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2021년 시작된 베트남어 중계 채널 구독자는 무려 93만 명에 달한다. LCK 스프링 결승전의 베트남어 중계 최고 동시 시청자 수(PCU)는 2022년 28만3,999명에서 지난해 56만1,000여 명으로 91% 급증했다.
인기 팀이 출전하는 날에는 CGV베트남 등 일부 극장에서 경기를 상영하는 일종의 '관람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현지 영화관 관계자는 “티켓 가격(20만 동·약 1만600원)이 일반 영화표 값(7만~12만 동·약 3,700~6,300원)보다 비싸지만 빠르게 매진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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