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두탓
오피니언
당신은 미국을 떠날 수 없다
2025년 7월 29일
이번 주, 유럽연합은 미국과 무역 협정을 체결했는데, 이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굴복한 것과 다름없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의 반발을 부른 관세 전쟁에서의 과격한 초반 제안을 철회함으로써 사전에 일부 양보를 하긴 했다. 그러나 그 철회 이후 그는 일련의 승리를 거두며 미국의 관세 수입 기준선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무역 상대국들의 보복은 최소한에 그쳤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트럼프와 체결한 협정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새로운 현실의 일부다. 결국 고립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다.
이러한 현실은 보다 강경한 유럽 무역 정책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뿐 아니라,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미국이 세계무대에서 고립될 것이라 기대했던 이들에게도 냉정한 교훈이 된다.
이러한 고립의 환상은 반(反)트럼프 진영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일종의 위안과 통쾌함을 제공해왔다. 토론토나 옥스퍼드, 혹은 스칸디나비아 등지에서 자유주의 문화가 재건되고, 트럼프의 미국은 점점 벽을 높이며 외부와 단절된 채 경제적 대가를 치르는 모습은 정치적 탈출구이자 인과응보의 비전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전제—미국이 고립되고 세계는 미국 없이 번영한다는 기대—는 세계 정세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이다. 트럼프의 요구에 굴복한 외국 지도자들은 이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보다 잘 아는 것은, 미국의 경제력은 도무지 회피하거나 고립시키거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의 2024년 재선 이전부터 미국 경제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경쟁국들을 압도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복귀 이후,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비판한 보호무역 조치들조차 미국 주식시장 상승과 경제 성장세를 꺾지 못하고 있다.
설령 트럼프가 더 큰 실책으로 경기침체를 초래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독일·영국·한국·일본보다 유리한 구조적 조건은 다음 정권에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보다 가난하고, 갑자기 미국을 추월할 만큼 역동적이지 않다. 젊고, 활력 있고,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미국을 대체할 만한 경제권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미국 기업과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를 감수하고라도 거래를 이어가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트럼프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만큼 강력하고, 미국 경제력에 맞설 역량을 갖춘 중국이 있다. 그러나 자국이 이미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중국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은 워싱턴의 포퓰리즘을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수반한다. 미국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이 늘 수는 있겠지만,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화의 신뢰할 만한 중심축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현실은 정치적 현실과도 연결된다. 미국 없이도 번영하는 유럽·아시아의 경제망이 비현실적인 것만큼이나, 미국 없이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재편한다는 구상도 허망하다.
이는 단지 ‘하드 파워’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유럽과 캐나다만으로 구성된 자유주의 질서는 질서가 아니라 무력한 구태일 뿐이다.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질서가 쇠퇴하고, 트럼프가 공공연히 자국 이익만을 강조하는 시대에도, 미국은 여전히 인도-파키스탄, 캄보디아-태국, 콩고-르완다 간의 분쟁을 중재하고, 대만을 방어하고,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저지하기 위해 무기를 공급하는 존재다.
미국이 이 역할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면, 그 공백을 메울 자유주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 지출 목표에서 트럼프에게 양보한 것 또한 이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팍스 아메리카나’를 떠받치는 편이, ‘포스트 아메리카’ 체제를 꿈꾸는 것보다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점은, 자유주의의 위기는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이념적 갈등은 전 세계적이며, 미국 밖에 그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명확한 피난처는 없다.
지금은 ‘운명적 인물’로서의 트럼프가 미국 포퓰리즘에 특별한 힘을 부여하고 있지만, 자유주의가 미국에서만 쇠퇴하고 있고 유럽이나 동아시아에선 건재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이탈리아와 헝가리는 이미 포퓰리스트가 집권했고, 프랑스와 영국도 곧 그럴 수 있다. 독일에서도 포퓰리즘은 상승 중이며, 일본과 한국도 저마다의 탈자유주의적 양극화를 겪고 있다.
한편, 서구식 진보주의 자체도 명백한 비자유주의적 측면을 지니고 있으며, 유럽의 소위 자유주의 정권들조차 표현의 자유나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 다문화주의가 유럽 질서를 미국보다 더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급진주의와 반동의 흐름은 모두 미국의 영향을 받았다. 예컨대 미국의 인종정의 담론은 영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보수정치행동회의(CPAC)는 이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도 열린다. 미국 문화의 영향력은 유럽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든 여전히 견고하다.
나는 그동안 좌파든 우파든 미국을 떠나 보다 ‘정치적으로 적합한’ 장소로 이주한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어떤 이는 동유럽에서 ‘깨어있는 문화(wokeness)’를 피해 도망치고, 또 어떤 이는 캐나다나 영국에서 트럼프주의를 피한다.
나는 그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어떤 이상을 품든, 어떤 두려움을 가지든, 어떤 ‘좋은 사회’를 꿈꾸든,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싸움은 결국 미국에서 벌어지고, 여기서 승패가 갈린다.
피난처는 환상이며, 대안은 취약하거나 타협되어 있다. 자유의 미래는 미국에서 결정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그런 미래는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분명한 사실은 세계 그 어느곳에도 미국의 구매력을 대체할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자원부국이 아닌 제1세계는 현재의 부유함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외의 시장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는것이죠. 중국같은 나라는 메이드인차이나로 다 베껴먹지나 않으면 다행이고요
그리고 미국은 현존하는 인구구조가 가장 건실한 국가라서 대마불사급으로 미래에도 잘 나갈수밖에 없습니다. (유럽: 이민자 정책 실패, 중국: 한국보다 빠른 고령화, 러시아: 전쟁으로 노동력 박살)
중국은 그런 시장이 못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