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굽은 팔>을 읽다 대통령님은 제가 태어난 후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궁금해 찾아봤습니다.
16세(1978년) : 4월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여 8월에 합격했다.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었다.
17세(1979년) : '오리엔트' 시계공장에 취업해서 시계공이 되었다. 공부를 하기 위해 혼자 작업하는 락카실을 자원했다.
18세(1980년) : 4월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고졸 자격을 얻으면 관리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나는 여전히 락카실에서 아세톤과 석면과 벤졸을 마셨고 그만큼 후각을 잃어갔다. 55퍼센트 이상의 후각기능이 괴사했다. 그 뒤 나는 가장 좋아하던 복숭아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었다.
저는 서울 한 대학에서 파견직 사무직원으로 일하는데요,
업무량이 많아 늘 무보수로 야근과 주말근무를 합니다(파견회사 사장은 야근수당 못주니 하지말라고 하지만 실제 일의 양은 그렇지 못합니다. 늘 이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저의 일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또한 대충하고 딱딱 집에 가면, 문제가 생길테고, 저는 해고될께 뻔하니까요. 파견회사 사장은 이런식으로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갈아치우면서 근본적 문제 해결을 회피하며 늘 임기응변식으로 운영해온 사람입니다.)
7월부터 제가 근무하는 용역사무실(작은 창고방) 앞 화물엘리베이터 공간을 학생들에게 개방하고자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철문이 하나 있지만 공사 노동자들이 거의 문을 열어놓고 작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석회먼지와 엄청난 소음을 지난 3주간 견뎌야했습니다. 원청에도 파견회사에도 얘기해봤지만 어쩔수없다는 식이었습니다.
현장 노동자분들도 저희처럼 7-8시경 공사를 시작해 5-6시경 끝나는 루트이기 때문에 업무하면서 계속 그 먼지를 다 맡아야 했습니다. 저희 방은 창고형이라 거의 환기가 안되서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고, 원청 사무실에선 이 고통을 알리가 없기에 나몰라라 하는 식이었습니다.
문제는 어제 월요일부터 페인트 칠과 도색작업을 시작하면서 부터였습니다. 공사현장과 저희 창고방을 연결하는 철문부터 해서 그 공간 전체를 페인트칠을 업무시간에 단행하였습니다. 공사업체도 이번주 7월말까지 공사를 완료해야하는 상황인거같아 다급해보였고요.
저희는 3명이서 일하는데 냄새가 너무 고통스럽고 토할것같은 메스꺼움을 견디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 직원들은 모두 퇴근 시키고 쉬라고 했고 저혼작 견디다 못해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고 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원청에 재차 얘기했지만 아무것도 조치가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관할 노동청에 상담을 통해 계도조치를 받았습니다. 저가 신고한걸 알테고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하고 했습니다. 도저히 단 일분도 더 일할수가 없는데 숨을 쉴수가 없는데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동청의 연락을 받은 원청의 팀장이 이번주 공사완료까지 업무를 중단하라고 했고 저는 집에 올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금까지 아무리 토를 해도 미슥거림이 나아지질 않고 있네요
그러면서 국무회의 생중계 영상을 보다가 그 저희 사무실 앞에서 공사하시는 노동자들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분들은 그 페인트칠을 하고 도색작업을 하고 온갖 석회먼지가 날리는 공사를 하고 4-5시면 가시지만 저는 그 냄새와 먼지가 고스란히 남은 공간에서 밤 8-9시까지 혼자 야근을 하는 처지라 그걸 다 맡아내고 있어 그분들의 노고를 다 살필 겨를도 없었습니다. 저희 파견직원 들의 안위와 저를 가장 먼저 걱정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오랜 기간 그 석회먼지와 그 엄청난 염료냄새를 다 맡아가며, 심지어 마스크도 안쓴분도 있고, 그렇게 그 더운 한낱에 36-7도되는 곳에서 그 일을 한다는 것이 저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겨우 업무중단을 받아서 집에 처음으로 일찍 가는데, 페인트 공 한분이 더위에 지쳐 페인트 앞에 철푸덕 앉아 그냥 멍하니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러면서 이재명대통령의 책을 읽다, 제가 메모해둔 부분이 떠올랏습니다.
" 락카실에서 아세톤과 석면과 벤졸을 마셨고 그만큼 후각을 잃어갔다"
그 좋아하던 복숭아의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없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턱 걸렸습니다.
이게 제가 하루종일 몇일을 맡아보니 정말 어떤 냄새도 안맡아지고 모든 냄새에서 화학염료냄새가 나고 집에와 아무리 씻고 씻어도 제 코를 아무리 씻어내도 폐에 이미 들어왔는지 잠자리에서도 그 다음날도 온통 염료를 끼고 숨쉬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커피도 아무리 타마셔봐도 냄새가 잘 안나고, 이를 잊기 위해 찌개같은걸 끓여서 먹어봐도 그때뿐이고 다 토하게 도더라고요
다사다난하게 살았지만 이 화학물질이 폐에 오래 자리잡은 이 느낌... 이렇게 괴로운 경험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걸 다 마시며 수년을 일하는 현장노동자들을 보니 이들의 폐상태는 정말 처참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온갖 위험에 처했다면 시원할때해도 힘들텐데 이 무더위에 가만히 서있어도 숨이 턱턱막히는데 어떻게 현장노동을 하라는건지 이 더위에 현장 노동이란거, 아니 공사라는거, 안하면 안되는건지 하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국무회의때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산업안전규칙 안지키는 업체에게는 무슨일이있어도, 그걸 안지켜서 얻는 이득보다 몇배는 토해낼수있는 조치를 취해야합니다. 대통령님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일하러 갔는데 죽었다"니, 죽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건강을 해치기위해 일하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현장 노동자, 공장 노동자 분들. 현장의 그 엄청난 유해물질, 저가 겨우 3주간 겪고 죽을뻔한 그 걸 다 마시면서도 마스크 끼지도 않고 그냥 무감각해진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 고통을 못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짜 너무 심각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 같습니다.
안타깝구요.
고대합니다
살려고 일하는건데 안타깝고
넘 화가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