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기고문
푸틴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한다
2025년 7월 29일 오전 1시 (ET 기준)
알렉산더 바우노프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 수석 연구원, 러시아 정치 전문가
블라디미르 푸틴은 스스로를 평범한 지도자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는 법학자 출신의 지도자다. 집권 초기부터 법학 배경은 그의 정치적 정체성의 일부였고, 그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다. 지난 5월 기업인들과의 자리에서 그는 "어쨌든 나는 법학 학위를 갖고 있다"며 "합의문을 주면 내가 훑어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보통 독재자를 ‘법을 짓밟는 자’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푸틴 같은 독재자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정보기관 출신으로서, 법을 어기는 것 못지않게 법을 인용하는 데에도 집착한다. 오늘날 러시아의 정치적 탄압은 항상 새로운 법률 제정이나 기존 법률의 개정을 통해 정당화된다. 처벌은 ‘불법’이 아니라 ‘합법’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법적 질서를 독재에 복무시키려는 집착은 더 높은 차원의 정당성을 요구하게 된다. 푸틴의 정치 경력 전체는 결국 법 너머의 권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 집착은 그의 우크라이나 전쟁의 동기이기도 하다. 단지 정복이 목적이 아니다. 군사적 승리를 통해 러시아를 ‘위대한 강대국 클럽’에 복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복귀는 서방의 ‘인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푸틴이 그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독재자에게 정당성은 영원한 문제다. 아무리 강해 보여도 그들의 권력은 ‘인민의 선택’이 아니라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조작된 국민투표나 선거에 집착한다. 푸틴도 2020년 국민투표로 임기를 연장했고, 6년마다 선거를 통해 형식적인 민의의 승인을 받아낸다. 그러나 이런 ‘도장 찍기’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진정한 정당성을 느끼는 곳은 국제무대다. 정상회담, 국빈 방문, 군사적 성공 등이야말로 지도자의 위신을 입증해주는 수단이다.
푸틴 집권 초기에는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 그는 서방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열었고, 체첸 2차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직 복귀 결정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그는 노선을 바꿨다. ‘부패한 서구’에 맞서는 ‘전통적 러시아 가치’ 수호자가 되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그 대결의 무대가 되었고, 크림 반도 병합과 동부 우크라이나 개입, 2022년의 전면 침공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은 국내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과정도 러시아가 서방과의 관계를 파기한 게 아니라 재편하려는 시도였다. 크림 병합 이후에도 러시아는 민스크 협정을 추진하며 외교적 고립을 끝내고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협상이 실패하자 푸틴은 판돈을 키웠고, 지금도 그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 달간 러시아는 이전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올해 3월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유엔 신탁통치 하에 두는 방안이나 선거 개최를 조건으로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그런 얘기도 사라졌다. “서방과 먼저 합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철회했고, 우크라이나 국회가 대러 협상 금지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요구도 슬그머니 없어졌다.
하지만 이런 유연함에는 한계가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핵심 요구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 3년간 러시아는 사실상 ‘전시국가’가 되었다. 푸틴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용어 대신 ‘전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적은 ‘신화적 악’이 되었고, 병사들은 영웅이 되었으며, 수십만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 경제는 전쟁체제로 돌아섰고, 반대 의견은 철저히 억압된다. 이렇게 ‘전 국가’가 희생한 전쟁은 반드시 확실한 결과로 보상받아야 한다.
그래서 협상은 전장의 대안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푸틴이 점령하지도 못한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가 철수하라는 요구가 황당하게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푸틴에게 승리는 단지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제시하고 국경을 다시 그으며, 그 결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 있다. 그래야만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입장을 미국 트럼프 행정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푸틴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인식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짜증을 내는 듯하다. 초기엔 “50일 내 평화”를 말했지만 이제는 “열흘, 아니면 열이틀”로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 역시 피로감이 커지고 일부 양보를 검토할 수는 있지만, 모스크바의 최후통첩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비록 워싱턴의 일부가 그 요구를 지지한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러시아는 오래전부터 ‘신야타 회담’ 같은 대타협을 바라고 있었다. 1945년 야타 회담처럼 강대국 간 세력권을 인정하는 구도를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야타 회담은 협력이 아니라 냉전의 시작이었고, 스탈린은 결국 ‘정당성’이 아닌 ‘무력’을 선택했다. 세상은 둘로 나뉘었다.
푸틴도 같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가능한 한 많이 차지하느냐, 아니면 적게 차지하더라도 정당성을 확보하느냐. 스탈린이 그랬듯이, 그는 결국 ‘서방이 아닌 무력’에 기대려 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도 하나의 승리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승리는 아니다.
—
번역: ChatGPT
원문: Alexander Baunov, New York Times Opinion (2025년 7월 29일)
1945년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FDR에게
얻어 냈습니다.
서부전선에서 미군의 희생을 최소
하려면, 그만큼 적군(Red Army)의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스탈린은
훗날 베를린 공방전에서 자신의
약속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당시 협상국이었던 미국-영국 그리
고 소련은 공동의 적 히틀러를 상대
하는 연합국의 일원이었습니다.
2025년 러시아는 국제 무대에서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
이라는 점이 그 때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