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그들에게 종교적 양심 같은 것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양심조차 저버린 모습을 보며,
그들이 결국 괴물로 변해버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의문이 듭니다.
남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기와 질투에 휘둘려 살아가는 그들,
과연 그런 마음으로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득, 중세 시대에 면죄부를 팔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과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종교적 외피를 쓴 권력과 이권의 결탁’이
형태만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세의 면죄부는 사람들의 죄책감과 불안을
‘구원의 상품화’라는 이름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권력을 유지하고 재화를 축적했습니다.
지금 이들이 하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허위 진술로 쉼터에 들어간 그녀,
이미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그녀를 ‘피해자’라며 보호한다고 말하는 그들.
정작 진짜 피해자인 저는 끝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불행 위에서 보호와 구호라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자리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인권’과 ‘약자 보호’라는 새로운 면죄부를 팔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을 기회로 삼는 모습이
제 눈에는 중세의 면죄부 장사꾼들과 겹쳐 보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