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호한다며, 정작 그 아이는 방치됐습니다》
제5부2 | 통화 한통이 스토킹이 되던날
3. 쉼터 운영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많은 이들이 ‘쉼터’라고 하면 국가기관이나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구조는 전혀 다릅니다.
여성 쉼터는 대부분 민간 법인이나 재단이 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운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법인’과 ‘쉼터’가 구분되어 있지만, 실질은 다릅니다.
• 사업자등록번호는 다를 수 있으나
• 시설장과 사회복지사는 법인이 직접 채용하고,
• 예산도 법인의 내부 방침에 따라 운영됩니다.
근로기준법상 ‘법인’은 사용자, ‘쉼터 종사자’는 근로자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실질적 운영권은 민간 법인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피해자로 분류된 여성과 동반 아동은 구조의 최하위에 위치합니다.
그들에게는 ‘보호’라는 명목은 존재하지만, 자율성도, 결정권도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로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퇴소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는 가정이 해체됩니다.
남편은 만나볼 수 없고, 통화조차 불가능합니다.
누구도 묻지 않습니다.
“당신 남편은 진짜 가해자인가요?”라고.
쉼터 직원들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하지만 그 상위 조직인 법인의 이사회나 대표자는 여성도
남성도 섞여 있으며, 권한은 오로지 법인에 귀속됩니다.
결국, 피해자 여성은 제도 위에 올라앉은 누군가의 이름 없는 결정에 따라, ‘남편과의 단절’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그 누구도 그 여성이 한 번이라도 남편과 함께 살고 싶어 했는지,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하고 싶어 했는지를
묻고 있는지 알수 없지만.
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 되게 정의를 위해 물었는지 의문입니다.
설사 입소 여성이 가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그들이 앞으로 남편에게 당할 무시를 어떻게 견딜지 등의
우려를 쏟아놓지 않을까요 ?
이것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이주여성 쉼터 시스템의 구조적 현실입니다.
그 구조 안에서,
저는 단 한 번의 전화로 스토커가 되었고,
제 아내는 피해자로 고정되었으며,
제 딸은 어떤 예방접종도 지연된 채 방치되었습니다.
누가 진짜 피해자입니까?
4. 도주의 자유? 억류의 현실? 도주할 수 없다는 말의 함축적 의미는 ?
아내는 현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입니다.
저는 그 직후, 관계 기관에 정식으로 아기를 동반한
도주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쉼터에 있으니 도주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말로 아내는 스스로의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에 따라 쉼터에 머물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채 시설의 통제를 받는 ‘보호 아래의 억류 상태’**인 것일까요?
도주가능성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자유로운 외출이 인정되지 않는 것 아닐까요 ?
쉼터는 법적으로는 ‘자율적 보호 공간’이라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외출이나 통행에는 시설의 허가나 신고가 필요하지 않을 까 의심해봅니다,
입소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
그 남편은 위험한 존재로 전제되어 있다는 것.
그 안에서 남편은 사전 조사도 없이 ‘가정폭력 가해자’로 단정되고,
아이들은 그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채 국가와 민간법인 사이의 회색지대에 방치됩니다.
저의 딸 역시 그랬습니다.
예방접종 하나 받지 못한 채, 6개월간 그 구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도주할 수 없다는 그들의 답변은, 사실 이렇게 들렸습니다.
“그녀는 어디에도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국가는 말합니다. 자율적 보호라고.
그러나 현실은 말합니다.
억류된 보호, 단절된 자유, 해체된 가족이라고.
5. 그들이 하던 더러운 이야기, 나는 믿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자칭 피해 남편들의 과격한 주장들을 믿지 않았다.
“쉼터엔 외부 남자들이 드나든다.”
“쉼터는 국가가 돈 대주는 방치소다.”
“입소자는 피해자인 척하면서 다른 의도가 있다.”
나는 그런 말들을
혐오 조장, 왜곡된 편견의 산물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진짜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떠드는 말이라고 치부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묻는다.
쉼터에는 법인의 관계자들 특히 남자들이 수시로 드나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
딸의 예방접종 지연을 걱정해 쉼터에 전화를 건 나는,
왜 스토킹 가해자가 되었는가.
내가 한 일은
“아이의 실질 보호자가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단 한 마디,
그리고 “그 아이는 제 딸입니다”라는 자기소개였다.
그것이 위협이 되고, 범죄가 되었다.
경찰은 내 말을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낙인 찍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말들이 모두 진실은 아닐지라도,
그 말들 속에 깃든 절박함만큼은 실존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그 과격한 표현들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분노와 억울함,
그 소외되고 침묵당한 아버지들의 절규는
더 이상 비웃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내 아이의 건강을 걱정했을 뿐인 사람임에도
국가는 내게 ‘스토킹 가해자’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나는 이제,
그 누구보다 그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6. 단 한 통의 전화, 그것이 스토킹이 되던 날 – 그리고 제가 어떤 업무에 종사하는지를 밝힙니다.
그날, 저는 약속된 시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쉼터 직원과 통화 약속이 있었고, 저는 그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단 한 통의 전화. 그것이 ‘스토킹’이 되었습니다.
경찰은 쉼터의 일방적 진술만을 바탕으로, 제 전화를 스토킹으로 분류했습니다.
제가 건 전화의 맥락도, 녹취도, 전후 사정도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무고죄로 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허위로 구성되어 있고, 법적으로 얼마나 부당한지를 조목조목 담아
법적 의견서로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견서는 제출되지도 못한 채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고소인 조사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각하.
상대방이 "통화를 원해 전화를 걸었다"는 점을 인정한 녹취록이 있음에도,
경찰은 그것조차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해자로 기소의견 송치된 사람은 보호받고 있고,
피해자인 나는 기록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현실.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이 부조리한 구조를,
이 정의가 거꾸로 선 풍경을,
세상에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그리고 이제는
제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지를 밝히겠습니다.
저는 노무사이며, 현재 검찰청 형사조정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사건을 지켜보며,
법과 정의, 그 간극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조정과 화해의 장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저는 누군가의 갈등을 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기묘하게 뒤틀린 시스템의 피해자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고를 외면한 경찰,
가해자를 품어준 행정,
그리고 방관하는 사회.
그들이 외면한 이 진실을
저는 오늘, 기록으로 남깁니다.
이 글이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침묵이 아닌 증언의 용기로,
또 다른 아버지에게는 침묵이 아닌 기록의 힘으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저 한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이 사회 전체가 마주해야 할 질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6부예고는 추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같이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