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한국 최초의 전축인 1965 금성사 골든보이스 전축을 수집했습니다.
여기에는 국산 오디오를 만들고 싶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1957년, 락희화학(현 LG화학) 서울지사를 방문한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이
윤욱현 기획실장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오디오를 만드려면 먼저 라디오부터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국산 라디오 제작과 생산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 구인회 창업 회장.
이윽고 윤욱현 기획실장이 제출한 전자기기 생산공장 건립안에 대해 임원들이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 낮아서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자 구인회 회장은
“우리가 영원히 PX에서 외국 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서 되겄나.
누구라도 먼저 해야 할 거 아닌가. 우리가 한번 해보는 기라.
먼저 하는 사람이 고생도 되겄지만 고생하다 보면 나쇼날이다,
도시바다 하는 거 맹키로 안 되겄나.” 라며 사업을 추진합니다.
그렇게 1958년 금성사(LG전자)가 설립되고 1년 뒤인 1959년 11월,
국산 최초의 진공관 5구식 라디오 금성사 A-501이 탄생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이 흐른 1963년, 구인회 회장이 그렇게도
꿈꾸고 열망하던 국산 최초 하이파이 전축이 세상에 출시됩니다.
1963년에 Golden Stereo, Golden Voice 두 가지 모델이 파생되는데
제가 이번에 수집한 모델은 1965년에 생산된 골든 보이스 모델입니다.
Golden Stereo 모델은 금성 A-601-2S 진공관 라디오 설계를 기반으로
2개의 스피커와 5구 진공관 + 초록색 6ME5 매직아이 진공관(=총 6구)
SW, MW 라디오와 PHONO 입력단자에 턴테이블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Golden Voice 모델의 경우 설계가 동일하나 스피커가 한 개로 줄었습니다.)
또한 SP판과 LP판을 모두 재생할 수 있도록 회전식 듀얼 바늘을 채택하였고,
4개의 학다리와 고풍스러운 호마이카 무늬목으로 외관을 마감하였습니다.
턴테이블의 경우 내부 모터의 스핀들이 아이들러를 회전시키면서
상부의 플래터를 돌려주는 아이들러 턴테이블 방식을 채택하였습니다.
또한 SP, LP, EP판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16, 33, 45, 78 RPM의 속도조절
다이얼을 부착하여 어떤 음반이든 모두 재생할 수 있도록 대응했습니다.
국산 최초 라디오를 넘어 국산 턴테이블 전축까지 한국인들의 여가생활의
질을 한차원 높이고자 했던 금성사 진공관 턴테이블 전축을 시점으로해서
이후 천일사 별표 전축, 인켈, 태광 같은 오디오 회사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수집품들을 다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엘지스마트폰 멋졌다고 생각합니다. 기능이 뭔가 빠져서 문제였죠
사진 보자마자 별표전축이다 그랬는데 금성사 제품이었군요, 제가 2~3학년 시절로 기억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그랬는가 싶게 저도 오디오 제품들을 가지고 놀았네요, 일찍 작고하신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ㅠㅠ
창업자에게 기업가 정신이 충만했네요.
턴테이블 위에 고무판이 있었겠네요.
앰프 부분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복원 또는 더 개선된 것으로 충분 복원 가능하죠.
진공관 앰프 수리, 제작, 복원 등등에 장인은 있기 마련이고, 턴 테이블, 심지어 농기계 등등 맥가이버를 능가하는 능력자도 있더군요. 없는 부품도 직접 깍기도 하고, 도금 등등 필요한 것 해 줄수 있는 여러 회사들도 다 알고 있는....
문제는 스피커 부분인데, 수십년 손대지 않고 가만 두어도 스피커는 노후화 되어 버리죠, 대략 쓸만하게 수리 복원이야 어렵지 않겠는데, 옛 상태, 처음 출시된 그 상태로의 복원.... 아직도 가능한 사람은 있습니다. 소싯적에 일본 음향 회사에서 스피커 설계 제작하다가.... 손가락 2개로 설계, 제작, 튜닝, 수리까지 전부 가능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새것 처럼 복원하는 오버홀 비용.... 많이 비쌉니다. 그래서 소위 옛 명품 스피커 아니면 오버홀 의뢰를 못하는 실정이죠.
황기사란 분이죠?
카페, 진공관 세상.... 관심 가져 보세요, 카페 인원 느는 것을 꺼려하는 분입니다. 정보 제공은 여기까지만....
이후 경영진들이 거기에 부합하지 않아서 문제였지만요.
유튭보면서 라면먹다... 젓가락을 놓으시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 보시네요.
"거 기판에 부품 교체한건 없더냐고 여쭤봐라." 라고 하시네요.
초반은 SP 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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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오케레코드에서 주최한 제1회 향토노래 현상 모집 당선작 <목포의 눈물>은 1935년 9월 유성기 음반으로 발매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이 곡은 향토의 노래를 넘어 일본에 저항한 민족의 노래였다. 음반 앞뒷면에는 이난영의 목소리로 <목포의 눈물>과 <봄아가씨>가 실렸다.
1900년~ 1905년 경의 에디슨 축음기와 드럼 음반
드럼 음반에 녹음은 한번에 하나씩....
가수의 노래 음반 100개를 만들려면 같은 곡을 100번 불러야 합니다.
재생 시간은 노래 1곡이라 보면 되구요,
이후에 SP 음반이 나오면서 노래 한번 부르고 여러장의 SP 음반을 만들수 있었구요,
이것도 한면에 노래 한곡만 수록한다고 보면 되는데, 드럼과 달리 뒷면에도 수록이 가능하죠.
SP판은 78회전, LP판은 33 1/3 회전, 분당....
LP판은 지금의 CD 등등과 겨누어 음질에 차이가 별로 없고, 장점 또한 많아서 지금도 많이들 사용하고 즐기는 매체죠.
저 금성사 전축, 출시 부터 SP, LP 속도를 달리해서 재생 가능토록 했다네요.
저는 전축 바늘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SP, LP 바늘 자체가 다른데?.... 싶습니다.
어릴 때 에디슨 축음기 형태의 SP 축음기.... 바늘은 쇠로도, 대나무 숯으로도 만들었구요,
축음기 옆에 작은 서랍에 바늘 수십개 보관 할수 있었고, 바늘 뭉퉁해지면.... 시멘트 바닥에 슥슥 비벼서 사용하는 걸 봤습니다. 물론, 바늘 한꺼번에 회사에 보내서 재 가공해서 사용했겠죠.
SP판 목포의 눈물을 LP판으로 재발매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구요....
회전식으로 이리 돌리면 SP 바늘, 저리 돌리면 LP 바늘이라굽쇼?
거참 신박하게 잘 만들었네요.
저는 SP, LP, 공용 바늘이 있었나?.... 싶었네요.
한가지 또 알고 갑니다.
목포의 눈물, 재생해서 올릴 때.... 부록으로 최초의 창작 가요인 '낙화유수' 일명 '강남 달'도 같이.... 이건 1927년 발매되었구요, 동명의 영화 주제곡이었구요, 작사 작곡 김영환
1929년에 발매한 '암로' 어둔 길도 함께.... 작사 작곡을 김영환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제 외할아버지인 강 강호가 작사, 작곡했습니다. 영화 암로의 제작 감독인 본명 강윤희인 江湖가 작사 작곡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