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7월 19일, 낮 1시경. 여운형 선생이 승용차타고 가던길(구체적으로 1947년 7월19일 당일 오후에 미군정 민정장관직 제안 수락을 받으러 미군 고위장교와 만나는 일정이었습니다.)에 괴한 트럭(이 트럭이 바로인근 혜화동 파출소 바로앞에서 대기했습니다.)이 들이닥쳐 승용차량 막고, 암살범(한지근-본명 이필형)이 들이닥쳐 승용차 뒷자석쪽에서 여운형 선생 향해 권총 2발 사격.. 여운형 선생은 그 자리에서 심장에 관통해 서거했습니다.(바로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서거상태)
그리고 암살범은 혜화동파출소 방면으로 튀었고, 여운형의 수행 경호원이 뒤따라 암살범을 쫒아다녔을때, 파출소 바로앞에 경비 서던 경찰관이 암살범을 검거하지않고 뒤를쫒던 여운형 선생의 수행경호원을 그자리에 검거합니다..
이게 여운형 선생 암살사건의 경위..
그래서 여운형 암살배후에 박헌영이나 김구등을 제기하기엔 무리가 있는게 이 사건에 최소 경찰이 매우깊히 관여한게 뚜렸하다는 부분입니다. 당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 노덕술로 그가 이 사건 수사를 담당. 최소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은 '나는 몰랐다'라고 발뺌할 수 없는 정도죠
1번째 사진은 암살당시 입었던 여운형 선생의 양복정장.
4번째 사진은 오늘날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여운형 암살 서거 지점 비석(정확한 위치는 혜화동 우체국 자리 부근)입니다. 이 비석은 원래 없었는데,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생겼더군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고 회고하시더군요. ㅠㅠ
친일파의 득세와 군부독재, 검찰독재가 이어저 내려온듯하네요..
장준하 선생님도 그렇고 죽산 조봉암 선생님도 애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