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무위키 내용입니다만,
외모나 말씀하시는 것만 보고 어느 부잣집 귀한 아들 느낌이었는데
거침없이 살아온 인생 여정이 만만치 않으시네요.
21살이 되던 1995년, 전역 후 돌아간 고향집은 아버지의 빚 보증으로 잠겨있었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져 연락조차 닿지 않았다. 가족들과 연락이 끊어진 상황에서 고향 전주시를 떠나 무작정 군 생활을 보낸 서울특별시로 올라왔고, 서초구 방배동의 어느 신문배급소에서 10개월 간 일했다. #
꿈은 가질 수 없었고, 대학 진학도 어려웠기 때문에 국내 모 항공사 고졸 사원에 지원해 계약직으로 입사하였다. 조종사 인사기록 카드를 수기로 작성하는 단순 업무를 하면서, 그들의 대학이나 전공이 예상외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도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그쯤에 호감을 가졌던 여성이 '하찮은 사람도 꿈이 있냐', '대학도 나오지 않은 당신이? (나를 좋아해?)'라는 투로 대꾸를 하자 꿈을 구체화시켜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이후 수능을 친 뒤 1996년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수학과에 입학했고, 생활과학대학 생활디자인학과를 복수전공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기에 주유소, 공사판, 커피숍, 여행사 가이드, cf 단역,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하숙비를 아끼기 위해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유소 한켠에서 살았을 정도로 빠듯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본인에게 과외를 받던 한 학생의 학부모가 시간 허비하지 말고 사업을 해보라며 초기자금을 대주는 형태로 그에게 거액을 건넸다. 이 돈으로 이대 앞에 2평짜리 아이스크림 가게를 차려 사업을 시작했는데, 가게가 나름 잘되었는지 전세 자취방을 구하기도 했다.
졸업 후에 희망직종이 아닌 안정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공기업인 데이콤ST[8] 프로그래머로 입사했다. 컴퓨터 앞에서 매일 코딩 작업을 해야하는 게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항공사 시험 일정이 올라올 때마다 준비를 했다. 그러나 당시 아내가 '조종사는 싫다'고 명확하게 얘기해서 꿈을 접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Vollago
고등학교때 연극부 활동을 했고 연극부 한 애들이 연극한다고 공부를 안 해서 성적 엄청 떨어지고.....
근데 재수 삼수해서라도 다 잘 됐습니다.
동기 연극부 한 애들 변호사 2명 교수1명 됐어요.
수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도 없을것인데
1996년 연세대 입학;;;;;
이건 대체 뭡니까;;;
이런분들은 정말 대단하신듯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누가누가 어렵게 컸나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왜 민주당엔 이런 이력을 가진 분들만....ㅠㅠ
반대로 돈 있고 빽 있는 애들은 내란당에 한가득. 그러니, 공감,인지 장애에 다들 그 모양이겠죠.
아노우 까치발 들어도 안 닿을텐데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