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기님 그건 좀 실제 역사와 다릅니다. 중국이 한국을 치려고 한 게 아니고 당시 중국의 인식으로는 북한쪽을 한국이라 여겼습니다. 중국딴에는 일제 치하에 있던 동지라 지원한거죠. 물론 이면적으로는 자국군 정리를 하려고 했는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요. 미군, UN군이 붙는데 당연히 다른 나라도 붙죠. 어쨌든 전쟁은 비극입니다만..
한국군에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죠. 독립군출신은 영향력이 적었고 언어문제로 미군과 소통이 어려웠죠. 김홍일 장군은 예외입니다만. 그런 나라였는데 그나마 87년 민주화를 통해 달라진 겁니다.
@제트기님 실제 병력숫자는 엇비슷했습니다. 중국내전을 통해서 엄청난 실전경험과 유능한 중공군 장군들이 많았습니다.단지 인해전술식에 당했다고 잘못 알려져 오해한것입니다. 국방티비등 여러채널에서 당시 상황에 대한 전쟁사방송들이 많습니다. 리치웨이가 아니였다면 맥아더도 사실 한국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리치웨이 부임전에는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들은 중공군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싸울 생각을 못할 정도로 패배의식에 빠져있었습니다.추운 한반도 산악지형을 한개 중공군군단이 밤에만 걸어서 70-80킬로 이동해 미군을 포위해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인해전술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Denial5434#
IP 113.♡.76.44
06-25
2025-06-25 13:32:24
·
@제트기님 치밀하게 야간에만 행군하며 미군항공정찰 피해 지원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reak
IP 153.♡.15.123
06-25
2025-06-25 09:59:50
·
중국이 진짜 밉긴 한데.. 맥아더가 어그로를 너무 끌었습니다. 중국하고 전쟁할 생각 없다는 제스쳐를 보이지 못할 망정 ..
@여긴누구나는어디님 잘못 알려진 이야기입니다.초기에는 30-50만명으로 유엔군 병력과 비슷했습니다. 단지 9월말부터 유엔군이 올만한 산악지형에 미리 포위망을 구축하고 병력을 집중배치하고 기다리고 있어서 숫자가 많이 보여서 생긴 말입니다. 저 자료를 오류가 많습니다.유엔군을 넒게 동부서부로 나누어서 공격하고 중공군은 병력을 어느 지역에 집중배치 매복하면서 생긴 이미지때문입니다.
Edric
IP 112.♡.37.90
06-25
2025-06-25 10:02:48
·
부산까지 밀렸을때 풍전등화라는 말이 실감나네요.
tkdfhrtn
IP 218.♡.249.79
06-25
2025-06-25 10:04:51
·
6·25전쟁 75주년. 3년 1개월의 치열했던 전쟁으로 희생된 많은 분들을 넋을 기리며 추모합니다.
@사발농사님 정확한 것은 전후 일본식민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미국 백악관 정책이 없는 상태에서 소련군 진격속도가 빠를지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예상보다 일본 만주군들이 소련군에 쉅게 패배하면서 한반도까지 그렇게 빨리 올지 몰랐습니다. 전후 미소냉전시대가 열리는지 2차대전종전까지 몰랐습니다.당시 미국도 일본본토를 미군과 소련군 남북으로 상륙해 공격해야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이 급히 항복선언한 계기는 원자폭탄이 아니라 유럽으로 간 수백만명 소련군이 일본본토 공격하기 위해서 이동중이라는 첩보때문였다고 합니다.그 당시 일본은 일-소 불가침조약때문에 소련참전은 꿈에 생각 못했다고 합니다. 소련참전은 일본본토 전체파괴와 일본왕가 전체 생존을 장담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하라쇼님 애초 38선 돌파할때부터 당시 트루먼 백악관과 유럽국가들은 반대했습니다. 유엔군 목적은 이전 38선까지 회복이고 38선 돌파하는 것은 유엔 참전의미를 넘어섰다는 이야기였는데 멕아더가 그것을 무시하고 돌파한 것입니다. 즉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은 애초 목적에서 벗어난 보급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넘어간 것입니다. 9월말쯤 이미 중공군은 북한 함경도 일대 산악지형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38선을 넘기전부터 여러경로 걸쳐서 대동강 넘어서 절대로 안된다고 경고메세지를 보냈는데 멕아더가 중공군과 소련군개입여지가 전혀 없다고 무시한 것입니다.애초 유엔군은 38선까지 다시 원복시킨다는 전략적인 목표였습니다. 38선 돌파자체는 미국 백악관 머리속에서 없었습니다.
중국도 중국이지만ᆢ 해방후 소련군이 3.8선까지 밀고 들어온 책임도 큽니다. 김일성은 소련군 탱크 뒤에 숨어서 따라 왔고요. 그러면서 분단이 시작 됐으니까요. 태평양전쟁이 만만치 않게 전개되자 위기감을 느낀 루즈벨트가 얄타에서 스탈린에게 참전을 설득했고 그에 상응하는 전리품을 약속했습니다. 그게 일본 일부지역인가 한반도 일부인가는 둘만 알겠지요ᆢ 6.25 전쟁의 근본적 및 직접적 요인은 북한의 남침 및 적화통일 야욕이었으나, 그 기저요인 중 하나는 미국의 애치슨 라인 선언으로 인한 북한의 오판 촉발인 만큼 미국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고 봅니다
미친통닭
IP 61.♡.112.15
06-25
2025-06-25 14:23:05
·
당시를 지금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콘토토
IP 112.♡.201.247
06-25
2025-06-25 14:24:01
·
결론적으로
IP 165.♡.201.138
06-25
2025-06-25 15:28:12
·
북한보단 중국이 싫은 이유죠.... 중국의 야욕과 전쟁 준비단계들을 우리가 얕보면 안됩니다.
un측 사상자 숫자를보는데... 기분이 이상합니다. 너무도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 이땅에는 정말 셀수도 없는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지켜진 나라입니다.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사는걸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한편으론 보이저 1호가 보내준 푸르고 창백한 한 점에서,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참... 애석하네요 종교, 이념 이 두가지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넘을수 없는 강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이미지 최대 업로드 용량 15 MB / 업로드 가능 확장자 jpg,gif,png,jpeg,webp 지나치게 큰 이미지의 크기는 조정될 수 있습니다.
안타까워요.
한국군에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많은 것만 봐도 그렇죠. 독립군출신은 영향력이 적었고 언어문제로 미군과 소통이 어려웠죠. 김홍일 장군은 예외입니다만. 그런 나라였는데 그나마 87년 민주화를 통해 달라진 겁니다.
리치웨이가 아니였다면 맥아더도 사실 한국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리치웨이 부임전에는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들은 중공군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싸울 생각을 못할 정도로 패배의식에 빠져있었습니다.추운 한반도 산악지형을 한개 중공군군단이 밤에만 걸어서 70-80킬로 이동해 미군을 포위해서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인해전술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중국하고 전쟁할 생각 없다는 제스쳐를 보이지 못할 망정 ..
물건만 좀 잘 사가면 될 듯 합니다
제 입장에선
일본도 1000년의 적입니다 ㅠ
예상보다 일본 만주군들이 소련군에 쉅게 패배하면서 한반도까지 그렇게 빨리 올지 몰랐습니다. 전후 미소냉전시대가 열리는지 2차대전종전까지 몰랐습니다.당시 미국도 일본본토를 미군과 소련군 남북으로 상륙해 공격해야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이 급히 항복선언한 계기는 원자폭탄이 아니라 유럽으로 간 수백만명 소련군이 일본본토 공격하기 위해서 이동중이라는 첩보때문였다고 합니다.그 당시 일본은 일-소 불가침조약때문에 소련참전은 꿈에 생각 못했다고 합니다. 소련참전은 일본본토 전체파괴와 일본왕가 전체 생존을 장담 못한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영토였던 한반도를 위에서 소련이 내려오던 중에 미국의 원폭 투하로 전쟁이 끝난 직후 38선으로 경계가 나누어졌는데 소련이 종전 직전 점령하고 있던 경계의 위도와 비슷합니다.
인천상륙작전 없었으면 지금의 베트남 처럼 적화통일 되는게 기정사실이었죠
아마 런승만과 그 똘마니 및 일부 국민은 중국국민당 국부천대처럼 제주도로 도망가고 미군 도움으로 해상방어전 으로 상륙 방어하다 지금의 대만처럼 되었을 수도 있었겠고요. 대부분의 반도에 살던 국민들은 지금의 북한 주민들처럼 살고 있겠죠
런승만 치하 제주 4.3사건이 있던 한국과 40년동안 계엄령 내리던 장제스의 대만이 왜이리 겹쳐 보이는지...
그리고 UN군이 압록강 직전까지 밀고 올라갔을때 처칠 개XX가 중국이 자신들 홍콩 칠까봐 더이상 올라가지 말자는 제안을 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맥아더도 베이징에 핵 날리자는 소리나 쳐하고 있었고;;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안좋게들 겹쳐서 우리 국민이 정신적 물질적 시간적으로 80년 넘게 많은 고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은 군대;;
미국 일본 다음가는 경제대국인 서독과 공산권 제1의 경제대국인 동독이 평화통일했음에도 아직도 지역갈등과 빈부격차(?)가 있습니다. 독일 통일이 된지 무려 35년이 지났는데도요.
근데 독일통일이 이젠 꽤 오래전 이야기 같지만 사실 독일이 분단된 상태로 있었던 기간이 45년입니다. 아직 10년 차이가 나는거죠. 적어도 최소한, 분단된 기간 그 이상으로 시간이 흐르고 나야 보다 나은 국민통합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는데
우리나라는 당장 오늘 통일한다 쳐도 분단기간이 80년인데 앞으로도 가능성은 없어보이는게 문제입니다;
9월말쯤 이미 중공군은 북한 함경도 일대 산악지형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38선을 넘기전부터 여러경로 걸쳐서 대동강 넘어서 절대로 안된다고 경고메세지를 보냈는데 멕아더가 중공군과 소련군개입여지가 전혀 없다고 무시한 것입니다.애초 유엔군은 38선까지 다시 원복시킨다는 전략적인 목표였습니다. 38선 돌파자체는 미국 백악관 머리속에서 없었습니다.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당시 ‘일본 망명’ 계획서 확인
https://www.khan.co.kr/article/201506251529551
결과론적이지만 먹은 영토 크기는 그때랑 별 다를 것도 없이 무의미한 소모전만 2년넘게 반복하며 우리만 힘빠지고 일본이 꿀빠는 상황을 지속했군요;
영상을 보는데 눈물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중국의 야욕과 전쟁 준비단계들을 우리가 얕보면 안됩니다.
너무도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 이땅에는 정말 셀수도 없는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지켜진 나라입니다. 민주주의란 피를 먹고사는걸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한편으론 보이저 1호가 보내준 푸르고 창백한 한 점에서,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참... 애석하네요
종교, 이념 이 두가지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넘을수 없는 강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