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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의 글은 천관율 기자의 이준석식 정치의 작동원리라는 글입니다.
딱히 좋아하는 분은 아닌데요...
어쩌다 보니 읽게 되었는데, 이준석식 정치를 잘 해설해 놓았고 그의 '납작한 공정'을 잘 이야기해 놓은 글 같습니다.
다만 공정의 역설... 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나 싶긴 합니다. 사실 공정/평등/법치/민주주의 등 우리 사회의 많은 개념들은 형식적 의미와 실질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평등이 과거에는 법앞에 누구나 평등하다에서 시작되고, 죄형법정주의의 개념이 법에 정해진 대로만 처벌된다는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납작'한 개념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런 형식적 개념들은 결국 그 취지에 맞게 '실질적 개념'으로 진화합니다. 최근에는 무식한 주장이라 잘 안 오는데 몇 년 전만해도 “미국은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경찰이 시위자를 두들겨 패도 괜찮다”는 식의 주장과 함께 “한국 경찰은 시위대에게 맞고 있다, 법을 어기면 철저히 진압하고 응징해야 한다”는 선동이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 미국에서 시위 진압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는 확인해봐야 할 부분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명백히 ‘비례의 원칙’이라는 실질적 법치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비례의 원칙이란, 공권력 행사—특히 경찰권이나 행정권처럼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이 상황에 비추어 적절하고 필요한 정도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당초는 행정권/경찰권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핵심 구성 요소의 하나로 우리가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 '과잉금지원칙'의 위배 여부를 따진다면서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적합성, 침해의 최소성...어쩌구 하는 내용이 결국 이 부분을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과거의 죄형법정주의가 단순히 ‘법에 정해진 대로만 처벌해야 한다’는 납작한 개념이었다면, 오늘날의 실질적 법치주의는 행위와 처벌 사이의 비례성, 즉 ‘정의’와 ‘형평’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국 전 장관 사건에서의 수사 및 처벌이 과연 법치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 또 조희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이 과연 법치에 부합했는지를 질문한다면, 이는 단지 법 조항에 위배되었는가를 넘어서 그 처분이 합리성과 형평성에 부합했는가, 즉 실질적 법치에 대한 물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검찰은 형식적 법치를 법치인 것처럼 주장해왔습니다. 예컨대 "법에 규정되어 있으니 괜찮다", ‘등’과 ‘중’이라는 표현에서 ‘등’으로 규정되어 있으니 시행령으로 어떤 범죄든 수사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전형적으로 형식적 법치주의에 머무르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장에 순진한 사람들은 “어... 맞는 말이네”, “그러게 왜 애초에 정확히 규정하지 않았어”라며 민주당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식의 태도는 법의 취지를 무시한 자의적인 해석이며, 법체계의 구조에도 맞지 않는 월권일 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민주당이 잘한 점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과거의 민주당은 검찰이나 저쪽 세력처럼 자의적인 형식주의에 기대지 않고, 상식적인 해석과 판단에 따라 정치적으로 풀어보려 했으나 저들의 결사적인 자의적 해석에 말려 버렸습니다. 그 반사적 결과가 입으로만 법치를 달고 사는 윤석열 세상의 출범이었구요.
최근 민주당은 바뀌었습니다. 협치 중용 같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요소를 지키는 대신 위법하지 않으면 우리도 할 수 있는데까지 한다!!로 갑니다. 탄핵? 해야 할 일이면 하고, 입법? 해야 할 것이면 하고, 특검? 해야 할 것이면 될 때까지 한다. 이런 강력한 민주당의 행동은 결국 이 내란 정국을 헤쳐낸 힘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런 모습은 '실질적'으로 민주적이라기 보다는 '전쟁'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의 최근 행보에 대해 지지자들은 ‘사이다’라고 평가하고 더 사이다를 기대하는 한편, 섬세한 어떤 이들은 일정한 우려를 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윤석열이 만들어 놓은 전쟁 상황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을 매우 칭찬합니다. 다만 어느 정도 전쟁을 마무리한 후(내란 척결이 마쳐진 후)에도 우리 사회가 형식적 법치, 형식적 평등, 형식적 민주주의, 형식적 공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이 극악한 윤석열시대/검찰시대를 견뎌오면서 다들 형식주의적 방법론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것 같아 살짝 걱정은 됩니다.
이런 형식주의적 권리 주장이 확대되면 결국 우리사회는 극단적 모습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의 권리를 최대한 챙기는 게 뭐가 위법이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반대로 계약의 자유라며 “너희 같은 손님은 받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 납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노키즈존' 문제는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기본적인 사회의 미풍양속은 사라지고, 형식적 권리를 극한으로 사용하는 것이 똑똑한 것으로 비춰지는 사회풍토도 일정부분 원인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개념의 실질화'가 필요합니다. 사회적 개념의 실질적 의미에 대한 재인식과 교육 환경에서의 적용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과거 ‘악법도 법이다’라는 형식 논리를 암기식으로 주입받은 탓인지, 기성세대들도 실질 개념에 대한 감수성과 사고력이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들 산후조리원에 가다보니 이제는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으면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암묵지를 제공해줄 윗세대가 사라진 것처럼, 다들 성적이 최고, 좋은 대학 최고, 대기업 최고를 외치는 자유지상주의/자본주의적 똑똑이 교육을 받고 자라,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니, 아이들 또한 성적과 줄세우기로 평가받는 것만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가 응당 지향해야할 실질적인 공정/실질적 평등의 추구는 '위선'이라고 공격받습니다.
결국 이준석식 정치는 실질적 공정이라는 상대적으로 고차원적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실질적 공정의 과정에서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대변하는 형식적인 또는 의도적으로 그릇된 공정선언입니다. 기자의 말대로 그나마 공론장에서 발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속어와 혐오는 제거되었으나, 그 정치이념인 '공정' 또한 아무런 해결능력이 없는 납작한 수준의 것입니다. 그 개념 자체가 저어기 19세기 정도의 사고이니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정치적 관점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가 10년간 다양한 타이틀을 따내었으나 어떤 문제도 해결해내지 못했던 것은 그가 바탕한 유아적 사고에 기인한 당연한 결과물일 것입니다. 그러니 대선토론이라는 무대에서도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자신’이라는 결과물에 대한 자랑, 그리고 자기처럼 되어 보라는 수준의 메시지에 불과했던 것이겠지요.
이준석이 2019년에 '공정한 경쟁' 이라는 책을 쓰는데,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하냐면요
미국 이야기를 하는데,
- 미국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한 8% 정도의 고학력 고수익 백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집중공격받았던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진보매체가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해서 소수의견을 지나치게 많이 인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대중의 인식과 어떤 괴리가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
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근데 여기. 확실히 찍어주는건 뭐냐면,
트럼프가 성차별주의자고 인종차별주의자인데 선거에서 이겼다는 거에요.
이기는게 중요하다는거죠.
이런놈은 이기기 위해선 뭐든 한다는거고, 이게 파쇼.
헬마의 진단과 같은 결론. '극우 포퓰리스트' 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