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북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 남부 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약삭빠른 검사가 갓 취임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기소해 법정에 세울 수 있었다면 미국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다룬 논문에서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 아킬 리드 아마르(예일대 로스쿨 교수)는 이런 가정적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미합중국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을 게 틀림없다.” 어떤 명목으로 기소했든 북부를 향한 증오가 퍼지던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배심원과 판사는 링컨 대통령을 감옥에 가둘 수 있었을 테니 이후 미국 역사의 전개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마르 교수는 이 가상 상황을 통해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지니는 민주적 가치를 설명한다. “대통령은 전체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국민 중 어느 일부가 전체 국민의 결정을 무효로 만들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불소추 특권은 대통령이 된 ‘어느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를 대통령으로 뽑고 그의 원활한 대통령직 수행에 이해관계를 갖는 ‘국민 전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아마르 교수는 이 점을 더 선명한 비유로 강조한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보다) 국민 대표성이 떨어지는 이들(판검사)이 나라 전체를 인질로 잡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법 해석과 실무 관행을 통해 이 특권은 미국 역사에 공고히 자리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당선되자 잭 스미스 특별검사가 앞서 제기했던 기소를 철회한 게 최근의 예다.
하물며 헌법에 명문 규정을 둔 우리나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이재명 대통령이 받아온 재판의 중단 여부를 논란거리로 삼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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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교과서에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통령의 형사상 특권은 사법권(재판권)이 미치지 아니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사법부는 대통령에 대하여 그 신분보유기간 중에는 원칙적으로 형사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권영성 ‘헌법학 원론’) 프랑스 헌법에 담긴 더 구체적인 표현도 참고할 만하다.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프랑스의 모든 법원 또는 행정기관에서 증언하도록 요구받지 아니하고, 민사 절차, 수사, 기소 및 조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우리 헌법의 취지를 재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법 앞의 평등’을 해치는 양 호들갑을 떤다. 다시 말하지만, 불소추 특권은 대통령의 형사책임을 면제시키지 않는다. 재판은 중지될 뿐 임기 뒤 재개된다.
이렇게 임기 중으로 한정해 불소추 특권을 부여한 것은 국가 안보와 외교, 국민의 생명·안전 보호, 민생·경제 등 막중한 임무를 선출된 대통령이 원활히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민주적 요청과 누구도 법 앞에 예외가 돼서는 안 된다는 법치의 요청을 모두 충족시키고자 하는 헌법적 지혜다. 대통령이 이 신성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면 물론 임기 중에도 소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경우 헌법은 일개 검사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로 하여금 탄핵이라는 방식으로 소추하게 해뒀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인용하면 이후 형사 소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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