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 1–3절 (개역개정)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기독교 제일의 율법은 '이웃사랑'입니다.
그가 행정가로서 이를 실현하며 즐거워한것을 우리는 압니다.
차별과 갈라치기를 막는 법과 행정을 꼭 실현해주기 바랍니다.
40년넘는 교회관계자로서
얼마나 한국교회가 극우에, 파시즘에, 권위주의, 물질주의에 물들어있는지 잘알고있습니다.
한국 교회관련 건물숫자는 한국 편의점 숫자 못지않습니다. (4-5만)
이 교회 곳곳에서 혐오를 뿌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전광훈과 이준석의 발언수위가 예배시간에도 나옵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노년층은 여기에 물들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말도안되는 김문수 지지율은 다수가 교회에서 양산했습니다.
목사들의 개과천선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으로 막아야합니다.
서양에서는 차별을 금지하는 법 때문에라도 입을 조심합니다.
남을 차별하고 근거없는 혐오와 공포를 양산하는 행위를 막을 장치를 꼭 설치해주십시오.
이재명대통령과 그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형통하길 기도합니다.
차별금지법이 소수자 보호라는 명목 아래 다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역차별'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법안이 '차별'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 없이 '차별받았다'는 주관적인 감정만으로도 소송을 남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로 인해 다수의 국민이 잠재적인 가해자로 전락하고, 끊임없는 법적 분쟁으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차별금지법이나 집단 혐오사상 막는 법안 못하면 차기 정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노인들이야 원래 그랬다고 쳐도 20, 30대 우경화된거 보면 심각하다고 봅니다.
꼭 차별금지법이란 이름이 아니어도
(급진적으로 말고 소화할수있는 수준으로)
선동가들의 불법적인 행태를 막을수 있는 장치는 있었으면 합니다.
언론개혁과도 결이 같다고 생각합니다.
민식이법 이후 한국에 다녀오니 한국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긴장하기 시작하더군요. 어떤 복지도 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악용될소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민식이법은 우리의 의식에 필요한 장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의 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특정 사상이나 가치관에 대한 학문적 비판이나 반대 의견의 표현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성별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다'는 생물학적 사실에 기반한 학문적 주장이 '성별 정체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해 발전하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습니다.
법을 만들때는 항상 그게 최악으로 악용될 경우를 염두해 두고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차별금지법이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을 판단하는 모호성때문에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 속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될겁니다.
그렇기에 어떤 올바르게 보이는 행위를 이끌어내기 위해 법의 폭력으로 제한하는건 필요한 것에 최소화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에 의한 강제 말고 아까 든 예처럼 스스로 공부를 재밌게 느끼게 하는 방법을 찾듯이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방법을 찾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동과 유혹은 맞서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
나의 인간적 약함을 인정하고 피하는 길을 만드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교통법규가 엄한건 자유를 주면 남의 자유에 크게 타격을 입히기 때문이며
차별적 언어나 행태가 남에게 끼치는 피해가 작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례는 어떨까요.
이전에 주민번호를 보고 전라도 사람들을 걸러내던 사업주들이 있었는데
언론에 나타나서 지탄을 받은 사업주 사례보다 실제사례가 훨씬 많았을 겁니다.
이것을 법으로 막아 얻는 것이
사업주가 지역으로 차별해서 얻는 선택의 자유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처벌을 통해 제한 해야할 영역이 있습니다. 살인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처벌하려고 하는 건 절대 그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선한 일이라는 탈을 쓰고 그것을 강제함(악)으로써 악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강제의 결과는 제가 예시 들었듯이 강제적 공부를 통해 자란 아이가 공부를 미워하고 강제적 상황이 아니면 평생공부를 증오하며 하지 않는 불행한 아이만을 만들뿐입니다. 고통만 낳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약자라고 항상 선은 아니라는 겁니다. 악한 약자도 있고 선한 강자도 있습니다. 저는 약자의 정체성으로 어떤걸 강제하는 건 갈등을 키운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모두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습니다. 미국은 연방정부 외에도 각 주마다 자체 차별금지법이있고요.
흑인차별은 법으로 막았을까요 양심으로 막았을까요.
또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빼고 교육받은 운전자의 양심대로 운전하는 것보다 신호등을 두는게 더 교통사고건이 적습니다. 운전자의 계몽을 기다리는 동안 입을 피해자와 혼란이 더 큽니다.
뭐랄까..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도 다른것같네요..
이야기 나눠주어서 감사합니다.
페미 갈라치기로 갈라질 때 어쩔 수 없이 민주세력도 여성을 선택했잖습니까?
그 결과가 2030 남성이 탄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PC주의가 발생하면 또 원치않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또 버림받는 구간이 생깁니다
그 사람들이 늙으면 사회와 동화되지 못한 선택을 하는거구요..
법의 영역이 있구요 마음의 영역이 있는것입니다 외국의 안좋은 사례를 굳이 가져올 필요는 없습니다
역으로 2030전체가 극우화될수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한건 역차별한다고 선동한 이준석같은 갈라치기 세력이겠죠.
마치 현재 미국 트럼피가 백인들이 역차별당한다고 지금 난리치는것처럼 기존에 흑인차별이 ,
또 우리나라의 여성차별이 얼마나 컸는지 인정을 안하는건 사실을 가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급진적 여성운동가들의 행태를 절대 찬성하진 않습니다. ;;
기독교 정치의 방향성은 사회 통제적 방식으로 접근하는게 아니고 교육의 방법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왔습니다. 그 러니까 지금의 좌우 논리와는 완전히 별개로, 각 세계관의 주체들이 자신이 낸 세금으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관의 교육을 하는 방식을 원한다는 식이죠. 이 부분은 개신교의 정치 참여 방식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이퍼가 이런 정책을 사용했고, 그 줄기가 지금 한국교회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정치는 이런 갈라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요소라면 가리지 않고 주워먹을 겁니다. 이 더러운 말장난에 최소한 기독교는 속지 않았으면 합니다.
차별금지법도 저는 이런 말장난으로 사람을 가르며 정치적 요소로 교인들 속이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회 통합의 키를 기독교가 주었으면 합니다.
사회통합의 키를 기독교가 가진다니 누가 공감할까요.
지금 내란척결이 최우선인것처럼
교회도 정화가 우선입니다.
저랑 전제가 다른것같습니다.
기독교인이 낸 세금만큼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을 기독교 학교를 보낸다면 불만이 없을겁니다
불교인이면 불교학교를 세우겠죠
기독교 교육이라는 것은 단순 창조론 같은 것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인문 전반에 새롭게 해석하는 교육의 시도가 이미 100년전에 있었습니다 이 길이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교육의 방향이고 이 교육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기독교인의 '구별되는 삶'은 다른이들의 문화를 배척하는 삶이 아니라 인정하고 동화되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한국의 여성차별과 같은 선상에 두는 건 너무 비약적인 거 아닌가요?
흑인우대때문에 백인이 차별받는다 - 트럼피의 역차별논리,
여성우대때문에 남자가 차별받는다 - 펨코의 역차별논리.
이런게 정치세력화가 된일은 같은 결이 있다고 봅니다.
차별은 내면에 고착화되면 인지하지 못합니다.
사회문화적 구조와 심리적 방어기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고
사실 이건 시간이 걸릴거라고 생각합니다.
민식이법 이전시절에 어린이보호구역을 인지하지 못했던 운전자처럼요.
일베 펨코의 여혐문제를 만든건 문재인대통령이 아니라
이준석같은 세력인들인걸 사람들이 기억하면 좋을듯합니다.
지금 2030 남성의 보수화의 가장 큰 동력원을 혐오의 밈화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지역, 성, 국적, 성정체성, 장애 등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조롱하며 갈라치기하던게 이른바 일베문화고, 이준석 같은 정치인들이 그 양분을 무럭무럭 먹으며 자라온 것이 아닌가요?
저는 이런 혐오에서 가장 큰 이익을 누리고 그렇기에, 더욱 이런 분위기을 조장하려고 힘쓰는 것이 극우 개신교회 (+국민의힘, 개혁신당이라는 보수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정당들)이라 생각합니다. 남태령과 광화문에서 우리는 그 혐오와 갈라치기에 맞서 다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내란을 끝내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