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젊은 남성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는데 집착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력했는데 이 노력을 왜 능력으로 안쳐주냐,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내'가 무엇을 더 양보해야 하는가, 이준석의 세대 지지율이 30~40% 내외로 나오고 있지만 그들의 사회 안에 섞여 사는 제가 볼 때 정작 이들간의 연대의식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파편화된 개인이 모여 저 지지율을 형성한거라 '지지층'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크게 맞는건 아니에요. 애초에 '우리'로 움직이는게 아닌 사람들을 하나의 군체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규정하려고 하니깐 삐꾸가 나죠.
하여간 이 열등감과 패배감이 왜 세대 단위로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냐를 생각해볼 때 저는 큰 틀에서 (1) 여아선호사상과 그에 따른 사이드이펙트, (2) 그에 반해 남아에게 여전히 요구되는 권위적 성역할에 따른 괴리와 불안정한 자아형성의 두 가지에서 원인을 찾아보고 싶네요. 제 개인적인 주변 경험에 의한 사견이고 따로 과학적으로 입증된건 아니니 그냥 의견으로 받아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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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아선호사상과 사이드이펙트
제가 96년생 딱 이대남 삼대남 사이 그 중간인데, 제가 아들만 둘인 집 장남이라 어릴 때 '딸 둘은 금메달~ 아들 하나 딸 하나면 은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 호호호호' 따위 개소리를 면전에서 꽤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못해도 90년대 초중반부터 우리 사회에서 여아선호사상이 대두되며 아들 가진 엄마를 고생길 훤히 열렸다며 불쌍히 여기는 풍조, 아들도 소위 '딸같은 아들'을 바라는 풍조가 지금까지도 꽤 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 통계적으로 여전히 우리나라 출생성비는 남자가 여자보다 근소하게 많긴하지만, 성별을 골라서 낳을 수 있는게 아니니까요.
다른 지역은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사는 강릉이 타 지역에 비교해 꽤나 보수적, 권위주의적인 사회임에도 어머니 손 잡고 나간 모임, 심지어 학교나 학원에서도 선생이라는 양반들에게 저런 류의 소리를 많이 들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마음 고생이 심했겠죠.
이게 남아 입장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 고생시키는 잠재적 불효자, 자식인데 딸보다는 못한 애들로 필터링 없이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저게 14살 15살 때부터 꾸준히 들어도 꽤 자아형성에 큰 방해요소가 될탠데 뭣도 모르는 7살 8살 때부터 듣고 자라는 애들이 많았으니까요. 언젠가 한 번 지역적 출신성분이 다양한 동성친구 그룹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적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이런 류의 얘기를 어려서부터 들어본 경험이 있더군요.
당사자들은 '하나 낳을거면 딸이 좋지!'로 큰 의미없이 스몰토크처럼 떠드는 화제가 듣는 아들들에게는 내가 열등한 존재인가? 라는 자아를 기저에 형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 기성 성역할 강요에서 오는 빈곤한 개인철학 형성
10년대 이후 출생한 남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2011년생이 벌써 다음 대선 때는 투표권이 있네요.
90년대 초중반~후반까지 나이대 남아들은 여아선호사상의 사회분위기를 겪으면서도 기성적인 남자의 성 역할, 소위 말하는 '남자답게' '사나이답게' 처신하기를 요구받았습니다.
물론 기성 세대보다야 훨씬 많이 엹어졌다지만 어쨌건 집은 남자가 해오는거다, 남자가 여자보다 경제적으로는 우위에 있어야 한다(흔히 말하는 여성의 경제적 상향혼이 여전히 꽤 보편적으로 인지되는 사회환경) 등등, 능력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냐~ 하는 류의 성역할 자체는 여전히 강제받고 있었죠. 정작 이 세대가 결혼하면서는 남녀 동등하게 결혼비용 대고 집 비용 대고 하는거 보면 이 세대가 성역할에 대한 과도기에 위치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거기에 생물학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더 성징이 빨리 오다보니 신체적으로/정신적으로 같은 나이여도 16~17세까지는 남아가 여아보다 발달이 미숙한 경우가 많은데, 사회는 여아를 남아보다 더 챙기고 남아가 남자라는 성역할로 인해 여아에게 양보해줘야 하는 환경이 된겁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이 끊임없이 스스로 경쟁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청소년기 남아의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여아에 비해 클 수 있습니다.
안그래도 서열화가 심한 사회분위기에서 내가 열등한 종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뭐라도 들고 와야 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사회적 연대나 다음에는 더 잘 할거야 식의 자존감 챙기는건 언감생심이고, 나의 개인적 승리만이 내 자존감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굉장히 빈약한 개인철학을 형성하게 되는거죠.
*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름 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들어갈 정도로 서열화된 공부에 자신이 있었던지라 저도 선생(=권위)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 집단 내 서열 우위를 통한 만족감을 제 자존감의 근거로 삼았던 청소년기를 보냈고, 정작 제일 중요한 대입에 실패하며 2~3년을 짙은 무력감과 술에 의존해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동나이대 여성층에 비해 민주주의, 연대 등 집단을 대상으로 한 키워드에 젊은 남성층의 반응이 발작적으로 냉담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들에게 집단이란 내가 순위표를 받을 모집단에 불과하고, '집단이 함께 잘 사는 것'이란 이미 승리 가능성이 없어진 열등 그룹의 자기위안 또는 1등을 노리는 잠재적 경쟁자의 선동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거죠.
이것은 결국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이 어떻게 상위권만 합니까. 요즘 웹소설에 나오는 SSSS+++급 먼치킨 회귀헌터가 아니면 사람이 어딘가에서는 열등그룹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 개인철학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 자기의 열등한 부분을 극복하거나, 숨기거나, 우등그룹에 맹종하여 최소한 열등그룹 중에서는 가장 우등그룹이 되거나 등의 방식으로 본인의 자존감을 깎아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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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꽤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1)지금 젊은 남성층은 세대 단위로 짙은 열등감과 패배감이 기저에 형성되어있고,
(2)이러한 심리가 방어적으로 타자에 대한 혐오, 비생산적 냉담으로 표출되는 대표적 성토의 장이 펨코며,
(3) 그 펨코의 심리를 본인의 아이콘화하여
(4)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는 것 없이 그들이 배설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우등 그룹 앞에서 대신 읊어주는 전략으로
(5) 이준석이 그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충족시켜 그 지지율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들은 이준석 지지층으로 계속 남을 수 있어요. 애초에 저 계층이 정치권에서 가장 위에까지 올라간 수범사례가 이준석이니까요.
제가 1-30대 남자라면 반감이 팍 생기는 글일듯 합니다.
그냥 그 나이대 남자를 제외하고는 공감이 갈만한 내용이라, 긍정적 화합의 글이라기 보다는 다르거나 갈라지는걸 기정사실화 하고 쓰신 느낌이듭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님의 글에 매우 공감합니다.
저라면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 대신 '상대적 박탈감'을 사용하겠습니다
남성이 부담하고 있는 여러 불평등을 풀지 않는다면
출산율 반등은 거의 어렵다고 봐야지요.
그나마.. 정치적으로 양극화 되어 가고 있네요.
사실 요즘 "여성인권의 신장" 속에 스스로 피해의식을 느끼는 20대남이 있는거 같습니다.
다 그런건 아니고, 경쟁 속에 도태되는 일부죠.
이준석은 바로 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목소리를, 나쁜 방향으로 낸다는 것인데
다만, 이준석이란 인간이 진정성이 있어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인지,
아무래도 후자겠죠.
큰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갈등구조가 생길 수 있는 한세력의 반대세력을 콕 집어
"이들이 피해자다 내가 대변하겠다" 이딴 말은 하지 않겠죠.
엄밀히.. 사회가 이들을 위해 획기적으로 "특권"을 주거나, 여성의 인권을 해치며 까지
보장을 해줄 필요도, 의무도 없습니다.
정말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무기체계가 고도화 되면, 징병제는 완화할 수 있을거 같은데
그런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이 다만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정치인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겠죠.
괜히.. 호텔경제학이니 이딴거나 퍼뜨려서
자칭 똑똑이 펨코에게
정치경력 10년 변호사출신 의원이 그런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게 맞는건지...
96년 남녀 성비는 111:100 이네요.
자연 발생으로 나오는 성비는 105:100 이라고 합니다
여아선호사상이라고요?
남녀 성비가 가장 불균형했던게 80말~ 90년대로 알고 있어요
우리나라 의학 발전과 적게 낳아 잘 기르자는 풍조가 합쳐진 괴물이라고 봅니다
전체 성비도 저 수준이지만 실제 셋째 아이 기준으로 남녀 성비를 보면 더 심해지니까요
글쓴이가 말하는 여아선호사상은 그냥 딸이 이쁘다, 딸이 최고다 정도의 인식을 가리키는 말이지, 문제적인 사회 현상이라고 보기엔 어렵죠. 뱃속의 아이가 남아라고 낙태하진 않았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성비가 말씀하신대로 남아가 좀 더 많습니다. 정말 여아선호'사상'이란게 사회 현상으로 대두되었다면, 통계적으로 뭔가 드러나야할 정도가 됩니다.
남아선호'사상'의 문제가 뭔가요? 90년대 이전의 남아선호는 단순히 아들이 최고다! 이런게 아니라
태아의 성별을 확인후 여아면 낙태하고 아들을 낳을때까지 임신했잖아요. 그래서 전국적으로 남아의 성비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고 심지어 경북인가 어디는 116 :100까지 성비가 벌어졌죠.
이걸 두고 남아선호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여아선호사상이라고 하신건 넌센스가 아니지 않나싶습니다.
2. 개인의 경험을 여아선호사상으로 확대해석을 하는 것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다소 엉뚱한 원인을 찾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모 대기업에서, 성별까지 블라인드로 채용을 했는데, 뽑고 보니 여자들이 훨씬 많더라. 일을 시켜보면 여자들이 훨씬 잘하더라....뭐, 이런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예전엔 반대였던거 같은데.
안그래도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그나마 양질의 일자리는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직 사회에서 부딪혀보지 않고, 자기손으로 번돈보다 부모덕에 생활하는 비율이 압도적일겁니다.
딱한가지 불평등한건 군대문제인데 당장 갈 상황 아니면 미리 걱정한다? 글쎄요.
10-20대때 한달뒤일 걱정하고 살았습니까?
"xx때문에 너희들이 손해보고 있다, 너한테 가야하는게 xx에게 양보되고 있다"
이런 손해의식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갈라치기는,
전세계 극우정치세력, 정치적 종교집단이 아주 좋아하고 즐겨쓰는 전략이죠.
돈도 많이 안들고 인간의 욕망과 분노를 자극합니다.
트럼프가 그랬고 영국이 브렉시트때 그랬죠.
외국인노동자가 너희들 직업을 뺏는다, 여자가 남자를 밀어낸다 등등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전략을 쓰는 집단은 무능하고 극단적이죠. 분노자극이 끝에 달하면 다음은 "폭력"입니다.
향후 민주주의는 이들을 막을수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봅니다
다만.. 경쟁사회는 남녀가 동등하게 노출되었는데, 경쟁 과정에서 실패했을 경우 심리적으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좀 더 전문적인 분석이 동반되어야겠지만 남성보다는 여성 쪽이 실패를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는 점.. 쓰고도 민망한게 뭘 근거로 들고 올 수 없으니...
그 결과, 현재의 20대는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사회적 배경을 가진 가정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전 세대까지는 계급 분포가 정규분포에 가까운 구조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특정 계급(중상층 이상)에 치우친 왜곡된 인구 구조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들은 유년기를 경제 양극화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교육, 주거, 문화 자본의 축적이 계급적으로 고착되면서, 이들은 일종의 ‘선택받은 계층’이라는 자의식과 동시에, 그 지위를 유지하거나 상위계급으로 올라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을 동시에 겪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배고프지 않고, 각종 사교육과 콘텐츠를 누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사회 전반에 깔린 극심한 경쟁과 불확실성 속에서 성장하며, 상대적 박탈감과 실패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하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안정화되고 구조화됨에 따라, 계급 상승의 사다리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축소되었습니다. 성장의 과실이 특정 소수 계층에 집중되면서, 다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계층으로의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결과, 비교적 풍요롭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자’로 규정되는 청년 세대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객관적 빈곤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훨씬 민감하며,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 소외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런 세대적 특성을 가진 집단이, 일종의 ‘정체성 제공 기제’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강한 유대감과 해소되지 않은 분노를 바탕으로 집단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제는 종교적 세뇌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피해의식과 엘리트 의식을 동시에 자극함으로써 강한 결속력을 형성합니다.
2010년 무렵 나타난 ‘일베’ 는 이러한 심리적·사회적 구조를 간파한 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추측합니다. 이는 일종의 대국민 민사작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공작이었음이 밝혀졌지요. 기존 정치나 언론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한 청년 하위문화의 분출을 유머로 포장하는 그 사악한 수법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베‘는 오늘날의 ‘펨코’가 되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혐오 담론은 곧 거울상처럼, ‘메갈리아(메갈)’라는 급진적 반작용을 불러오게 됩니다. 이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남성 일반을 공격하고, 성별 대립을 조장하는 형태로 발전하며, 일베와 유사한, 어찌 보면 더 극단적인 폭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레디컬 페미니즘의 급진적 행태가 오히려 다수의 여성 청년들에게 거리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일베와 메갈 양측의 극단성을 동시에 인식하며, 이를 함께 비판하는 비교적 건전하고 균형 잡힌 여론 집단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여성 자녀에게 상대적으로 덜 가해지는 사회적 성공 압박, 그리고 관계 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 높은 여성의 심리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쟁보다는 조화를 중시하고, 극단보다는 균형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극단주의로 기우는 남성 청년 집단과는 서서히 정서적·문화적 괴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극우 남성 커뮤니티와 레디컬 페미니즘은 서로를 자극하며 성장한 적대적 공진화(co-evolution)의 산물이지만, 그 상호 파괴적 경쟁의 측면에서 자기 정화적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청년층은 그 중심에서, 새로운 세대 정체성과 균형 감각을 형성해 가는 주체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갑자기 세계관 밖의 저소득층을 챙기라는건 지구의 자원을 외계인한테 배풀라는 소리로 들릴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