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이 우아할 수도 있다는군요. 어떤 학생이 전장연 시위에서 그들의 폭력성을 비판하는 글을 글쓰기 기술로 보면 100점에 가까운 필체로 썼는데, 이게 과연 혐오표현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 내용이 아래 출처에 있더군요. 그 글 쓰신 분은 이런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까를 고민하는 국어교사분이시네요. 글이 상당히 괜찮은 듯하여 아래 링크로 남김니다.
약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들이 스스로를 약자라고 여기는 까닭은 아마도 그들이 원하는 만큼 가지지 못해서 그 불만을 자기보다 더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덜 가져야만 채울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욕심이 끝이 없는 거지요.
어쨌든 그렇게 우아하게 약자를 혐오하는 사람들 보면 어찌보면 참 스스로를 갉아먹은면서 살고 있구나하는 하는 측은지심이 들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자신감이 없으면, 혐오발언이나 하면서 잘난 체나 하고 살까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출처는 아래 링크 글 참고하세요.
출처 : https://brunch.co.kr/@gudtjd1004/47
네, 그런 내용에 관한 글입니다. 출처 글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듯 하네요.
애초에 글쓴이 본인이 좀 답정너 성향이 강해보입니다.
이미 답을 정해두고 자기가 원하는 답이 안 나왔다고 실망하는 걸 장황하게 쓴 느낌이 우선 들었어요.
도리어 제가 불편하게 느꼈던 건 이거 결국 그 학생에 대한 저격글 아닌가 싶은 건데요.
부디 각색이 강하게 됐거나 가상의 사례이길 바랍니다.
아니라면 그 학생이 저 글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을 것 같아서요.
사실 우아한 혐오 표현이라는 게 별 것도 아닙니다.
성공적인 선동 연설이 대부분 그렇죠 뭐. 🙄
학생의 글이 딱 그런 느낌이구요.
네, 그런 학생들이 대다수인게 요즘 교실 풍경이라네요. 그걸 감점할 수 없는 게 바로 추하이하이볼님 처럼 학생의 마음의 상처를 걱정하는 분들이 학부모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는 하네요.
차라리 뒷담화가 낫죠
글쎄요. 제가 저 교사분 입장이 아니라서, 그 부분은 저 링크 글 주인분께 문의해 보시는 게 맞으실 거 같기는 합니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중략)
'성매매'는 윤락-매춘-매매춘-성매매로 변화해 왔다. 이 용어들은 지금도 말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혼용되고 있는데, 그만큼 언어의 생 산과 사용은 정치적이며 말의 변화 자체가 인권의 역사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폐경보다는 완경, 처녀막이 아니 라 질주름, 삽입 성교보다는 성기 결합, 미혼보다 는 비혼이 듣기에도 좋고 상호적이지 않은가.
이 책은 무려(?) 2005년도에 발간되었다. 17년이라는 시 간이 흘렀지만, 언어에 덧씌워진 의미를 벗겨내고 그 안에 입혀진 편견을 지우려는 문제의식이 탁월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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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이 와닿아 링크에 들어가 읽어보았습니다.
관점의 다양성 차원에서는 동의하지만, 내용 중 비유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한 단어가 눈에 띄는군요.
요즘에는 갈라치기가 워낙 정교(?)해져서 판단 보류하려 했는데 2022년에 작성 된 글이군요.
무슨 갈라치기 말씀하시는지요?
예시로 든 단어들 중에서 그 쪽 진영에서 많이 쓰는 것들이 보여서요.
완경, 유아차, 비혼, 모부님 등등 그렇잖아요.
그쪽 진영 언어는 제가 잘 몰라서요. 그런 게 있군요.
페미쪽 교사분인가 보네요. 제가 그런 쪽은 관심이 없어서 잘 몰라서요.
남자입장에서는 여자가 폭력적이고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겐 전장연이 폭력이지요.
우리 사회는 규범, 구조가 뒤집힐때 느끼는 ‘불편함’을 ‘강요’, ‘폭력’으로 지칭하고,
반면 억압받는 이들이 표출하는 분노는 ‘예민’으로 치환합니다.
네, 뭔가 집단적 쏠림이 강한 사회긴 하죠.
1.
전장연에 대한 글을 며칠 전에 제가 클리앙에도 올렸는데
어떤 분이 전장연도 이익집단일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전장연은 이익을 추구하면 안되나요.
그 이익이 '불편 개선'의 수준이 아닌 그들에게는 '생존'에 직결된 것이라면요.
그 분이 이준석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시는 걸 알게됐습니다.
원문인 브런치 글을 보고, 또 그 계기로 인해 찾아보게 된 '할머니 임종 전에 가야 한다는 시민에게 버스타고 가라고 했던 전장연 시위자'의 현장 상황 앞뒤 맥락을 보니까요.
이 또한 이준석이 악의적으로 맥락을 제거해서 혐오를 부추긴 거고요.
어떤 분은 또 그러시겠죠. 해당 장애인이 '죄송하다고 말로만 하면 다냐. 시위를 당장 중단했어야지. 본인이 어머니 임종을 못 지켜봤다고 다른 시민에게도 그걸 강요하는 건가'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최소한 저 장애인도 어머니 임종을 시간맞춰서 못 갔던 정황은 제공했어야 했습니다. 이준석은.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1840.html
이런 생각도 듭니다.
'전장연이 약자를 괴롭히는 이익집단이고, 내가 피해를 당하는 약자'라는 생각이 든다면
비장애인이 글읽기/쓰기/토론만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보행불가의 세계를 체험하는 기회를 국가에서 공교육으로 꼭 마련하면 어떨까 하고요.
2.
그러나 전장연 측에서도
출근길 시민들의 장기화된 불편을 우리도 이해한다. 그러니 같은 노선/같은 장소 점거보다는 다른 방식을 택해보겠다라고 타협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요.
3.
결국 원글 '우아한 혐오' 주제로 이어지는 댓글이 없어서 아쉬운데, 바로 위에 그 아쉬움을 지적해 주는 댓글이 하나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됩니다.
언어 속에 권력이 담겨있고 편견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본인이 이해 당사라고 느낄 때는 남초커뮤에서도 많은 공감을 해 주시는 경우를 봤습니다. 예를 들어 "근로자의 날 보다는 노동절(노동자의 날)로 바꾸는 것이 맞다"는 사례가 그렇습니다.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221_0003074534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59
그러나 해당 브런치 글에 대해서는 '페미'들이 쓰는 용어라고 하면서 주제 자체를 부정하고 외면하거나, 여교사가 학생을 공개저격한다고 하는 의견이 있어서 씁쓸합니다. '우아한 혐오'에 대해 논하는게 아니라 아예 '여교사가 글을 잘못 썼다'라고 화살을 '여교사'에게 향하는 거니까요.
이렇게 되면, '우아한 혐오'에 대한게 아니라 '여교사'에 대한 성토장이 되버리는거죠.
페미용어?나 학생저격이라고 느끼져서 불편하다는 의견이 이해 되면서도(공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마도 학생을 특정할 수 없게 각색하거나, 그 학생의 글을 인용했지만 사실 다수 학생들에게서 보이는 공통 의견이라고 희석하면 더 좋았을 지도요. 어쩌면 이미 다수 학생의 의견을 하나의 글쓴이 사례로 각색한 걸수도 있고요)
'우아한 혐오' 주제에 대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의견을 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혐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을 혐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혐오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https://damoang.net/free/5321663
다만 혐오가 권리는 아니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겠죠.
저 '우아한 혐오' 글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주제일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