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 축제가 된 5.18 45주년 전야제
- 어제 전야제는 현재를 구한 과거의 광주를 향해 '덕분에 이번에는 승리했다.'는 감사를 올리는 축제처럼 느껴지더군요.
- 거기에 5.18 진실에 눈을 뜬 뒤 인생을 바꾼 청년 이재명이, 대선후보로 금의환향한 것이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졌습니다.
- 전두환 일당을 단죄 못한 부끄러운 과거를 이번에는 반드시 청산할 수 있다는 희망도 보았습니다.
◎ 재현된 5.18, '1991년의 광주', 그리고 남태령의 프리퀄 '운암대첩'
-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강경대 열사의 운구차를 광주시내로 들이는 과정에서, 경찰과 30시간이나 싸웠던 시위 (80년 이후 최대규모)
- 최루탄을 연막삼아, 고속도로 배수로를 메워가며 운구차를 빼낸 시위대는 경찰 포위망을 뚫고 광주시내로 진입
- 10만의 애도 속, 금남로에서 노제진행 (거리에 솥을 걸고 김밥을 만들었고, 곳곳에 의대생들이 간이치료소 설치)
1학기는 최루탄 연기와 함께 지나가 버린 듯 합니다.
그나저나 파이프 든 사수조 영상은 오래간만에 보네요. 전남대가 오월대. 조선대가 녹두대였던가요?
1. 연세대를 출발한 운구행렬 (1991.05.18)
- 서울 시청을 제외한 어느곳에서 든 노제를 허용하겠다던 당국이, 신촌로타리에서 10중 바리케이트를 치고 막아섬.
- 경찰은 추모행렬에까지 돌을 던지고 최루탄을 쏘아대는 가운데, 노동자 이정순과 전남 보성고등학교 고3 김철수가 분신했다는 소식이 전해짐.
- 해질녘이 되어서야 공덕동 로터리로 물러나 수만 명 추모인파 속에서 첫 노제를 지냈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고속도로에 들어섬
2. 운구를 받아내기 위한, 광주의 밤샘시위 (1991.05.19)
-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은 밤을 새워가며 도청 주변과 운구행렬이 진입할 운암 톨게이트, 양쪽에서 시위를 전개
- 새벽 4시, 서울에서 출발한 운구가 광주 IC에 도착, 경찰이 막아섰다는 소식을 들은 5천여명의 광주 시민들이 운암동으로 운집
- 16시간에 걸친 공방 끝인 저녁 8시경,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걷어내고, 보도블록과 공사장 쓰레기 자루를 날라 배수로를 메워 우회길을 내고 빠져나옴. (이때 학생들은 최루탄을 연막으로 만들며 배수로 작업을 가림)
3. 도청으로 향한 운구, 망월동까지 (1991.05.20)
- 영정차와 운구차가 시내로 진입하자,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렸고, 시민들은 거리에 솥을 놓고 먹거리를 마련함.
- 밤 10시, 도청에서의 충돌을 우려, 금남로 3가에서 10만의 시민이 노제 진행.
- 자정을 넘긴 20일 새벽 3시, 망월동 묘역에 도착하여 문익환 목사의 기도가 끝난 뒤 시신 안장.
감사합니다
느닷없는 백골단 소환에 한동안 잊고 있던, '1991의 봄'을 떠올리게 되었고,
패배한 역사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오늘, 뜻깊은 5.18을 기념하는 의미로 소개 드려봤습니다.
고2때였는데 집이 근처라 학교 가야 하는데 버스가 운행을 안해서 운암동까지 걸어가다가 중간에 학교 가는거 포기하고 친구들 만나서 모르는 형들 따라 뛰어다닌 기억이 생생하네요.
김밥이며 간식거리들을 모르는 어른들이 다치지 말고 꼭 챙겨먹어라고 손에 쥐어 주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