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선거’(universal suffrage)라는 이름은 매혹적이지만, 실제 제도에는 연령 제한이 들어 있습니다. 만약 ‘보통’을 문자 그대로 ‘제한 없음’으로 해석한다면 투표권은 법인이나 언어 모델 같은 비인격적 주체에게까지 열려야 합니다. 그러나 선거권이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확장되면, 한 사람이 다수의 법인을 운영하거나 여러 언어 모델 계정을 통해 표를 분산·중복 행사함으로써 결과를 왜곡할 위험도 커집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보통선거’란 표현은 현실과 간극이 큰 만큼, ‘연령에 따른 제한선거’(이하 최저연령제)처럼 제도적 한계를 드러내는 명칭을 쓰고, 어떤 제한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낳는지 논의해야 합니다.
최저연령제에는 몇 가지 논리적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사람의 지적 능력은 특정 연령에 도달한다고 해서 2차 성징처럼 급격히 달라지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연령만으로는 이러한 적합성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만 17세와 만 18세의 지적 능력의 차이를 명확하게 밝히기도 힘들고, 간격을 줄여 만 18세 하루 전의 지적 능력이 만 18세 당일보다 부족하다고 단정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또한, 지적 능력은 학습을 계속하더라도 꾸준히 향상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노화·질병·사고 등으로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퇴행성 신경 질환이나 물리적 손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집니다.
선거의 목적이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면, 합리적 판단 능력의 유무가 투표권 부여‧제한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능력 유무로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를 통상 ‘허가’라고 부르며, 운전면허도 그 한 형태입니다. 선거 결과가 개인 운전보다 사회 전반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① 투표권 취득을 위한 기본 시험이나 ② 일정 주기(예: 3년) 갱신 시험을 두는 방안도—시험 내용이 타당하고, 시험 항목을 결정할 때 유권자의 ½보다 큰 초다수(예: (e-1)/e, ⅔, ¾, ⅘, ⅚, ⅞ 등)의 동의로 결정된다면—전혀 불합리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투표권에 최저연령제를 두는 대부분의 국가는 그 기준을 성년 연령과 동일하거나 비슷하게 설정합니다. 이는 최저연령제가 곧 법적 능력(legal capacity), 즉 의사(intent) 능력이나 행위(act) 능력과 연결돼 있음을 시사합니다. 젖먹이·심실상실자처럼 의사 능력이 없거나 미성년자·피한정후견인‧피성년후견인처럼 행위 능력이 부족한 경우, 법적 책임은 면책되거나 제한됩니다.
성인이 후견 대상으로 지정되려면 가정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므로, 이 과정에서 제도 인식이 부족하거나 '낙인' 우려로 신청을 기피하면 필요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처럼 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해 행위 능력이나 의사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법적인 보호 바깥에 놓인 사람들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범죄나 사기 피해에 특히 취약합니다.
따라서, 앞서 논의한 시험은 투표권의 유무만을 판정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수험자의 의사·행위 능력을 평가하여 책임 능력 범위를 가늠하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현재 지급하는 보조 비용을 시험 운영비로 전환하여 잠재적인 피해를 예방한다면, 시험 제도 비용은 충분히 정당화될 것입니다.
요컨대, 투표 절차는 문항 수가 적은 OMR 마킹 정도로 단순합니다. 따라서 행위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기표 행위 자체는 수행할 수 있고, 의사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결과적으로 기권이나 무효표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책임 능력이 결여된 표가 대규모로 집결하면, 선거 결과가 왜곡되더라도 이를 시정하거나 실질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참정권은 적어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체에게 부여되어야만, 공공선을 추구하려는 선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확장된 투표권은 판단 능력이 결여된 이들을 선동하거나 선전에 휘말려 권력을 악용할 여지를 만듭니다.
1838년 차티스트 운동은 당시 재산·세금 요건 때문에 배제되던 대다수 성인 남성에게 선거권을 확대하자는 요구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선거권은 여전히 연령·국적·형 집행 여부 등으로 제한됩니다. 본문은 이미 '절대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현실에서 “어떤 제한이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가”를 검토한 것입니다.
기권·무효표가 선거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지표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본문에서 문제 삼은 것은 전략적 기권·무효가 아니라, 판단·책임 능력이 결여된 표가 그대로 합산될 때 결과에 대한 자정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위험입니다.
형법이 책임 무능력자에게 범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처럼, 선거에서도 최소한의 판단 능력 검증은 공동 책임 원칙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에서의 제안은 ‘반민주’가 아니라 ‘책임적 민주정(responsible democracy)’ 모델에 가깝습니다.
민주정의 구조적 취약성은 후안 호세 린츠의 『민주정 체제의 붕괴(The Breakdown of Democratic Regimes)』 연작이나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렛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Tyranny of the Minority: Why American Democracy Reached the Breaking Point)』 등에서도 심층적으로 논의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