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과 주체사상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이론 모두 조선과 한국을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보았으며,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 자주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두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와 종속 이론에 기반을 두고 제국주의의 경제적 지배와 봉건적 잔재를 비판하며 민족 자주성을 추구하는 이론입니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1930년대 연설에서 '식민지 반봉건 사회'를 언급했고, 안병직의 이론도 1970~80년대 한국 학문적 맥락에서 비슷한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그 후 주체사상은 북한의 국가 이념으로 발전하며 자주성과 독립을 강조했고, 안병직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은 남아메리카의 종속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교조적 해석을 한국 상황에 적용한 이론으로, 한국의 학생운동(NL)에게 이론적 기반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안병직은 일본에서 접한 '추격 이론'을 공부하며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과 외부 기술 이전이 한국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발전시켰는지 분석하고자 했고 식민지 시기를 재평가하여 일본의 식민 통치가 근대적 경제 구조와 기술을 도입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안병직은 이영훈의 스승으로, 이영훈은 안병직의 학문적 지도 아래 조선 경제사 연구를 시작하며 그의 사상적 변화를 따랐습니다. 이영훈은 안병직과의 37년 인연을 통해 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수용했습니다.
김문수는 대학 시절 안병직의 강의를 듣고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안병직의 설득으로 노동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보수로 전향했습니다. 안병직은 김문수의 이념적 변화를 7~8년간 설득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안병직의 사상적 변화는 김문수와 이영훈 모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 그들은 뉴라이트 사상의 학문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 재 생산하는 뿌리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가였고, pd에 가까웠습니다.
안병직의 영향으로 변절을 했을 수는 있는데,
김문수를 주사파로 엮는건 좀 아닙니다.
PD라 생각하시는 것은 그의 사상의 본류를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상, 즉 세계관은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처음 안병직의 영향으로 그의 사고체계가 형성되었고 그 뒤로 안병직의 뉴라이트 이론 정립에 따른 김문수의 사상적 전향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고, 그렇다면 안병직이 NL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음을 알고 계신다면 주사파와 김문수의 연결고리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 자가 민자당에 입당한 이후를 살펴보면 본인의 젊은 시절을 부정하는 태도였기 때문에 이를 논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습니다만, 알려져 있는 사실이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