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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전세계 주요 도시에서 해당국 승인 없이 ‘비밀경찰서’, 즉 불법 영사관을 운영하며 각국에 체류 중인 반체제 인사 또는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있다는 정황은 지금까지 여러차례 드러났다. 서울 한강변에 위치한 중식당 동방명주도 중국이 운영한 비밀경찰서로 의심받았다. 지난 2022년 12월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비밀경찰서가 위치한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는데, 한국 정보당국은 자체 조사를 통해 ‘동방명주가 비밀경찰서로 운영돼 왔다’고 잠정 결론내렸다.
한국과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가까워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에 산다. 이들 중엔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거나 중국 체제를 비판해 온 인사도 포함돼 있다. 차이나타깃팀의 취재 결과, 한국에 이주한 중국 국적자 중 일부는 계속되는 중국 정부의 위협에 난민을 신청했고, 법원 판결을 통해 난민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족 박모 씨는 20대 시절 우연히 외국 라디오를 듣다가 천안문 사태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됐다. 박 씨는 1993년부터 진상규명에 힘을 보탰고, 망명한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과 연계해 중국 안에서 민주화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그 대가로 공안의 감시와 불법 구금, 고문을 반복해 받았으며, 고향에선 ‘반동분자’로 낙인 찍혔다. 중국에서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준 곳은 없었다.
생활고를 겪던 박 씨는 밥벌이를 위해 2012년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에서도 그는 중국 정부에 대한 반체제 활동을 이어갔다. 매년 6월 4일이 다가오면, 중국 관광객이 많은 명동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천안문 사태 규탄 전단지를 배포했고, 중국을 비판하는 라디오 방송도 했다. 2014년 무렵에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인 ‘우산혁명’을 지지하는 대외 활동을 벌였다.
이로부터 얼마 뒤, 박 씨는 중국에 남은 가족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중국 공안이 그의 근황을 탐문했다는 내용이었다. 박 씨는 곧 한국 정부에 난민 인정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고, 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의 초국적 탄압이 시작됐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거나 한국 경찰이 그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는 박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무서우니까 절대 다른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변호사나 가족 정도만 (내 전화번호를) 알았다”며, “받으면 아무 소리도 없다가 (전화가) 끊어졌다.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2016년에는 느닷없이 경찰관이 찾아와 그가 배포한 천안문 사태 규탄 전단지를 내밀었다고 한다. 박 씨는 “그거 (전단지) 복사한 것을 보여주면서 ‘이거 네가 한 거냐’고 물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때 경찰관이 전단지와 함께 건넨 명함에는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이 박 씨의 설명이다.
이 외사과 직원은 주기적으로 박 씨를 만나며, 그의 동향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박 씨가 난민 신청을 위해 응한 면접조사에 따르면, 이 직원은 2016년 여름경 박 씨와의 식사 자리에서 “중국 대사관이 외사과에 파룬궁 모임, 반정부 모임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는 협조 내용을 전달했다.
행정소송이 계속되던 2018년 9월, 박 씨는 모르는 한국인에게서 불쑥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한국 경찰’이라고 소개한 뒤 박 씨가 거주하는 집 주소, 난민 신청 사실, 정치활동 이력 등을 언급했다. 이어 “반정부 활동을 하지 말라. 죽는 수가 있다. 큰일 날 수 있다”며 압력을 넣었다.
박 씨는 “한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데 언론의 자유도 있고 활동도 할 수 있는 곳인데 (협박을 받으니) 너무 무서워서 (자신과 연락하던 외사) 경찰관님에게 신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의 신고를 받은 외사과 직원은 ‘경찰을 사칭한 한국인’과 직접 통화한 내용을 박 씨에게 전했다. 이 한국인은 사업을 위해 중국을 오가는 민간인으로 중국 공안으로부터 부탁을 받아 일을 돕는 ‘협력자’로 파악됐다. 외사과 직원은 “박 씨 고향의 공안이 (협력자에게) 협박을 시킨 것”이라는 정보도 박 씨와 공유했다.
박 씨의 난민 신청 행정소송을 맡은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박 씨가 한국에 거주할 수 있도록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경찰관이 원고(박 씨)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고, 중국 공안의 부탁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경찰을 사칭하며 연락하기도 한 점, (원고가 소속된) 정당 활동에 대하여 중국 정부가 체포 등 탄압을 계속해 오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원고가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중국 정부가 원고를 박해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듬해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우리 난민법은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와 이로 인해 ‘공포’를 느끼는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박 씨의 경우는 법원이 공포를 느낄 근거가 있다고 보면서 중국 정부가 반정부 활동가 등을 상대로 ‘탄압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승소할 수 있었다.
조선족 이규호 씨는 지난 2012년 중국 공안의 ‘탈북자 고문’ 사실을 최초 폭로한 ‘내부 고발자’다. 이 씨는 요녕성 심양에서 공안으로 근무하다 2002년 해고됐다. 그 뒤 복직을 요구하던 중 2010년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2012년 2월, 뉴스를 통해 중국 공안의 탈북자 고문 및 강제송환 사실을 접했다. 이를 계기로 탈북자 지원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과거 자신이 탈북자들을 상대로 폭행 등 가혹행위를 한 경험 때문이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몇달 뒤, 북한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김영환 씨가 중국에 구금돼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정부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자 이 씨는 과거 공안 재직 시절 입었던 제복을 입고 나와 탈북자 지원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중국 입장을 반박했는데, 이때 많은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8월 초순경, 중국 교민사회의 ‘실세’로 알려진 한성호 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씨는 재한중국인 언론인단체 회원들을 불러모아 “중국 공안에서 이규호라는 이름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한 씨는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 회장으로 한·중 수교 이전부터 양국 간 교류에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중국 교민사회에선 동포단체 수장을 맡아 실세로 통했다.
이 이야기를 건너 들은 이 씨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2013년 2월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 그러나 난민 인정을 거절당하자 이듬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씨는 2016년 최종 승소해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의 양심선언은 그 경위, 방식 및 결과에 비추어 중국 정부에 미치게 될 파급력이 상당”하고, “중국 당국은 인터넷 조회수 5,000회 또는 전달 500회가 넘는 정부 비방 게시물을 처벌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중국 당국이 원고의 양심선언 등의 활동을 주목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시했다.
앞서 이 씨를 도운 한 종교인은 이 씨의 난민 신청 행정소송에서 “대부분의 조선족이 이 씨의 사건을 알고 있다”며 “이 씨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씨 역시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소송 당시 중국 정부로부터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대사관이 한성호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동포단체 회장님한테 연락했다”며 “내가 ‘반중공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쫓아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 때문에 단체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이 씨가 탄압의 배후로 지목한 이는 앞서 밝힌 한 씨다. 한 씨는 중국 공산당 산하 ‘통일전선공작부’의 해외조직 중 하나인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의 창립 회장을 맡았다. 이 단체는 각국에 지부를 두고 화교로 하여금 중국의 영향력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설립됐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외의 반체제인사들을 관리하는 ‘비밀경찰서’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 씨는 201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를 이어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의 회장을 맡은 이가 동방명주 사장 왕해군 씨다. 동방명주는 한국 정보당국에 의해 한국 내 비밀경찰서로 지목된 중식당이다. 또 왕 씨는 한 씨와 함께 유럽 7개국 안보 전문가가 검증한 통일전선공작부 ‘민간 네트워크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왕 씨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이 사건에 대해선 왕 씨에게 간첩죄를 묻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은 정치적 망명자들에게 안전한 국가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중국 국적의 반체제 인사들은 한국을 경유해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서구권 국가로 망명한다.
중국 안휘성 출신의 진모 씨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실태를 비판하고 네티즌들에게 VPN 사용법을 공유했다가 2020년 국가전복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구금에서 풀려난 그는 그 해 연말, 국내 한 대학에 단기연수를 신청해 한국에 입국했다.
진 씨가 한국에 머문 동안 벌어진 감시와 협박의 흔적은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남아 있다. 2021년 6월부터 진 씨는 중국 대사관 앞에서 각각 천안문 사태 규탄 및 대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같은해 9월 10일 진 씨는 “모르는 사람들이 자취방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한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경찰을 불러야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와 관련, 진 씨는 2023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중국인들이 자신의 이름과 외출 시간 등 일거수일투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중국인들의 정체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최근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경찰이 도착한 이후 그들도 사라졌다”고 답했다.
현재 진 씨는 중국 본토에 귀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망명 신청을 했던 그는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중국 정부의 보복이 있었음을 주장했다. 2022년 업로드한 영상에서 진 씨는 “본토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정부의 괴롭힘이 심해져 이제 언론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미국까지 가서 망명 신청을 했던 그가 돌연 중국으로 ‘유턴’한 배경에 가족들에 대한 회유나 협박이 있었는지는 현재로서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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