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철학을 공부하는 것에 재미를 들려,
주자학, 그리고 조선에서 흥한 이기론을 서양 철학과 비교하며,
더불어 역사 공부도 더불어 하는 중입니다.
유교는 철저히 지배층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출발하였고,
공자 역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세월을 건너 뛰어 주자는 공자 이후에 발전해 온 유학을
총집대성하여 신유학이라 불리에게 되는 주자학을 정립합니다.
유교에서 신분질서를 중요시 하는 이유는,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도, 천, 리, 가 모두 절대의 이치, 법칙이어서입니다.
유교는 중국 역사에서 '기'중심의 사상과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
나타난... 필연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중국의 사상에는 그러한 토대가 있었다는 것이고,
황제라 칭하기 전에 이미 '천자'라 하였습니다.
만물이 흥하고,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순리를 따라야 하는데, 이 순리는 저마다 처한 위치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질서라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의 질서는 지극히 지배층의 관점에서의 질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상과 문화도 완전히 하나의 다른 문명을 집어 삼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해당 지역에서 생겨난 문화 속에 흡수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인도에 이슬람을 믿는 왕국이 생겼어도,
이렇게 강력한 믿음조차 그 지역의 피지배층 전체를
완전히 이슬람화 할 수 없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외래 종교인 불교가 한 때 중국에서 크게 받아들여져 융성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기'중심의 사상, 도가의 문화가 형성 되어 있던 기반이 있었고,
거기에 몇몇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서유기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그려진 소설입니다)
즉, 탄탄한 문명의 기반은 하루아침에 형성 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사는 이들이 역사 내내 만들어 온 것이어서,
그 무엇도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고,
조금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변화의 과정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즉, 전래와 융합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성리학은 조선 이전과 문화 양식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조상을 모시는 의미와 방법 모두 바뀌었습니다.
나중에는 지배층의 논리가 피지배층의 문화 깊숙히 침투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도 없던 일이 조선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충효와 같은 가치는 뿌리 깊이 한국 문화에 자리 잡게 됩니다.
어떤 사상과 가치도 이렇게 깊이 자리 잡는 경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지배층은 평안과 안녕을 위한 질서 자체를 의미 하고,
그 질서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아는 문구에 포함 되어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죠.
성리학의 국가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변화 한 부분은
이렇게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의 삶의 방식 자체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요즘도 인도에 가면 힌두교라는 것은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삶 자체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케이스 마다 이 동화율이 다른...즉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앞서 말했듯 조선의 성리학은 본토에서도 없던 동화율을 보입니다.
즉, 성리학의 가르침은 삶의 방식 자체에 녹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 중 하나가 집성촌과 서원입니다.
단순히 교육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정치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위로부터 아래까지 이렇게 지배층의 논리를 깊이 체화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같은 성리학을 받아 들였다 하더라도, 다른 양상이 나타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분기점이 있다면, '조식' 도는 '이이' 정도가 생각납니다.
성리학을 더 깊이 들어가느냐 아니냐는 그 시대의 판단입니다.
조선 초기만 해도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기론을 공부 하다 보면, 이름 난 학자들의 논쟁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비판입니다.
단순히 불교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성리학 외의 것들을 거부하는 인식이 점차 득세하게 됩니다.
이것은 유교를 얼마나 내재화 하는 가 여부를 말하는 것으로,
내재화를 가속화 시키는 사람, 사건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중국은 지리적 위치, 먹고 먹히는 전쟁으로 인한 왕조 교체 등으로,
애초에 유학이 태동하기도 하였으나 중국의 사상이 나타난 토양 자체가
성리학에 머물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조선은 중국과도 다르므로,
오히려 더욱 깊이 체화 되는 것이 아니라
치세의 수단 정도로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더욱 강화 시키게 만드는 걸출한 인물들이 나타나네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배우는 이름난 인물들의 사상은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학파가 형성 되고, 나중에는 정치 세력으로 점점 굳어져 갑니다.
조선 후기의 교조적인 가르침이 되어 버리면서 나타나게 되는 양태는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심각합니다.
흥선대원군과 신미양요를 말하기 위해 이렇게 길게 왔습니다.
성리학에 기초한 질서... 그것이 바른 '정'입니다.
조선 성리학은 너무도 탄탄한 이론적 체계를 갖춥니다.
서약 철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조선의 성리학은 육각형이 아니라
치우쳐진 학문이어서, 아무리 뛰어난 체계를 갖추었다해도 한 쪽이 비어있거나
부족한 것이지만,
조선은 해당하는 층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국에서도 하지 못한...
깊이를 만들어 내니... 그것은 현실과의 괴리를 만들어 내고,
백성들이 잘 사는 것과는 거리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신미양요 당시
압도적인 화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조선과 미국 사이에 오간 서신을 보겠습니다.
우리 나라가 바닷가의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나라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백성들은 가난하고 물산은 변변치 못하며 금은(金銀)·주옥(珠玉)은 원래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것이고 미속(米粟)과 포백(布帛)은 넉넉했던 적이 없으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국내의 소비도 감당할 수 없는데 만약 다시 다른 나라와 유통하여 나라 안을 고갈시킨다면 이 조그만한 강토는 틀림없이 위기에 빠져 보존되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의 풍속이 검박하고 기술이 조잡하여 한 가지 물건도 다른 나라와 교역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절대로 교역할 수 없음이 이와 같고 외국 장사치들이 이득 볼 것이 없음이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매번 통상할 의사를 가지는 것은 대체로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똑똑히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 사신의 편지에서 아직 문제를 끄집어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관리들과 의논하여 판명하고 교섭하자고 요청한 것도 혹시 이러한 일들을 하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난당한 객선은 전례에 따라 구호할 것이니 다시 번거롭게 의논할 필요가 없으며, 기타 문제도 따로 토의하여 판명할 것이 없으니 오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략)
우리 나라가 외국과 서로 교통(交通)하지 않는 것은 바로 500년 동안 조종(祖宗)이 지켜온 확고한 법으로서 천하가 다 아는 바이며, 청나라 황제도 옛 법을 파괴할 수는 없다는 데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귀국 사신이 협상하려고 하는 문제로 말하면 어떤 일이나 어떤 문제이거나를 막론하고 애초에 협상할 것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높은 관리와 서로 만날 것을 기다리겠습니까?
넓은 천지에서 만방의 생명들이 그 안에서 살면서 다 제대로 자기의 생활을 이루어가니 동방이나 서양은 각기 자기의 정치를 잘하고 자기의 백성들을 안정시켜 화목하게 살아가며 서로 침략하고 약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니, 이것은 바로 천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혹시 그렇지 못해서 위로 하늘을 노하게 한다면 더없이 상서롭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그저 통상을 하기 위함이었기에 유화적으로 나오기도 하고,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기에 때로 무자비하게 짓밟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그들이 놀라워 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인명이 운명을 달리한 큰 전투에서 패배해 놓고도,
뻣뻣한 나라는 미국이 보기에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로 쎄게 때렸는데도, 태도가 바뀌지 않는 곳은 ... 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앞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 것은 미국이 졌다는 것이 아니라
이겼음에도...조선이 뻣뻣하게 나오고,
나아가 위정척사를 외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위의 서신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성리학이 지배하는 질서 하의 국가는 순리인데,
이것을 바꿀 생각은...추호도 하지 않고,
모든 사고와 관점을 이 질서하에서만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사'이죠.
성리학의 질서 외의 것들은 모두 '사' 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름 있는 유학자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불교'의 사상을
그렇게 까대며 논쟁의 주제로 삼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른 것을 추종하여 살고 있으니, 바른 것을 구하고, 사를 내치게 되는데,
위정척사란 이런 의미이고,
차후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할 때에도 이러한 기조는 이어지게 됩니다.
즉, 사상과 체계는 그대로...
사실상 아무 것도 바뀐 것 없이, 기술만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말해왔듯이
토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토대에 변화가 없는데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인다해서 내재화가 될까요.
네. 일부는 되지만 융성하기란 어렵습니다.
성리학의 세계는 너무나 굳건하여,
몸과 머리는 그대로 두고, 기술 일부만 받아들이는...
99%는 그대로고, 기술만 배우는 것은 마치
총은 들고 있지만 전략은 창칼 베이스인 것과 같습니다.
정리하면, 성리학이어서 문제였다기 보다는,
성리학은 문명과 사상의 발전 과정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개 나타나는 흐름 중 일부로 볼 수 있으나,
그것이 지배 논리의 일환에 머물지 아니하고,
완전히 문화 자체로 융합해 버리면서,
대개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할...
육각형이 아닌 치우쳐진 학문을 오랜 기간 숭상하게 되면서
결국 거대한 문명의 발달사에 뒤쳐지게 한 이유가 되었고,
신미양요를 통한 변화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게 하였습니다.
수명을 일찍 다했어야 할 사상이 다음 층으로 가지 못하고
머물며 계속 심화 되어가니...후기로 갈수록 점점 더 폐해가 커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