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시다시피, 중국의 유튜버 시인이 한푸(중국의 역대 왕조들의 복식을 의미합니다.)가 한복(고조선~조선 곧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들의 복식을 의미합니다.)의 근원복이 된다는 언급을 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큰 비판을 받았고, 이에 대해 중국의 유튜버 시인이 반론 동영상을 게시했다는 기사입니다. 사실, 이 중국의 유튜버 시인의 언급은 사실과 크게 다르진 않은데요. 동아시아(동북아시아)문명권의 모든 풍속, 체계, 체제는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창조(창안)해낸 것들입니다. 복식(갑주[갑옷] 등의 군복도 포함됩니다.), 유교(유학, 성리학), 한자(한문), 예악, 과거제(문과, 무과로 나뉘어지는데요. 개인의 신분, 출신에 상관하지 않고, 오직 개인의 능력[실력]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관리, 군인, 경찰, 학자에 대한 공개 채용 제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중국의 수나라 조정이 창조해낸 공개 채용 제도입니다.), 구품관인법(구품중정제), 봉작제, 봉건제, 중앙집권제, 군현제 그리고 병법 등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고조선~조선)들의 복식인 한복도 중국의 역대 왕조의 복식인 한푸에게 영향을 받아서 응용(재가공, 최적화)을 거친 끝에 확립된 복식 체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현대사가 시작되는 시점인 기원후 1800년대 중반 시점 이전까진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들 중에서 동아시아문명권이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이여왔고, 이 동아시아문명권은 중국, 한국이 양대 최선진국이여왔는데, 이것은 당연히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들이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창조해내온 풍속, 체계, 체제들을 극한의 응용(재가공, 최적화)을 해내서 얻어내고 나아가 유지해온 국제적 위상(총체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에서의 사람의 이름(한자[한문]를 기반으로 해서, 2자 내지 3자로 작명하는 방식이지요.), 건축물의 이름,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와 소속 기관들의 이름을 짓는 방식도 우리나라가 남북국(남북조) 시대 곧 신라국, 발해국 시대때에 당풍(당나라풍)을 따라 중국화한 것이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에 관련된 기록들은 아래에 정리해놨으니, 아래에 첨부되있는 기록들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좌의정 최윤덕(崔閏德)과 참찬(參贊) 조계생(趙啓生)과 도승지 신인손(辛引孫)이 사신(중국의 명나라 사신단 정사를 의미합니다.)을 벽제역(碧蹄驛)에서 위로하여 보내니, 사신이 인손에게 말하기를,
"전하께서 날마다 예연(禮宴)을 베풀어 주시고, 또 근신을 명하여 멀리 위로하여 주시니 감사한 것은 입으로 다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조선은 본래 예의의 나라인데 지금 예악 문물(禮樂文物)을 보건대 중화(中華)와 다름이 없으니, 오로지 기자(箕子)의 유풍(遺風)입니다."
하고,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년) 4월 3일 갑진 2번째기사
조선국에 파견된 중국의 명나라 사신단 정사가 조선의 조정의 대신들에게 조선국은 본래 예의의 나라(예의지국, 예의지방.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들 중에서 동아시아[동북아시아]문명권이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이여왔는데, 동아시아문명권에선 고급문화, 고급철학을 두고서 예의, 인의 이렇게 언급해왔습니다.)인데, 지금 예악문물을 보건대 중화(중국)과 다름이 없다며 우리나라 곧 조선국을 또다른 중화의 나라로 극찬한 기록입니다.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들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인 동아시아문명권의 양대 최선진국이 중국, 한국이여온 걸 나타내는 기록들 중 하나인 거죠.
부사(副使, 유구국 사신단 부사)가 후원(後苑)에서 인견(引見)하던 날에 말하기를, ‘내가 중국(中國)과 외국(外國)에 두루 가보지 않는 데가 없는데, 지금 귀국(貴國, 조선국)에 이르니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이 중화(中華)와 같습니다. 모든 조신(朝臣)들의 거동(擧動)이 복건(福建)의 장락현(長樂縣)의 풍속과 비슷한데 다른 외국(外國)이 미칠 바가 못되며, 임금의 활쏘는 능력도 또한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못된다.’고 하였습니다.
-세조실록 27권, 세조 8년(1462년) 2월 28일 계사 4번째기사
이는 조선국의 조정에 입조해 조공품과 서계(국서)를 조선국의 조정에 진상한 유구국(류큐국, 현 오키나와) 사신단의 부사가 조선국에 대해 극찬한 기록입니다. 본인이 중국(중국의 명나라)과 외국에 두루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데, 조선국에 이르니, 조선국의 의관과 문물의 질적 수준이 중화와 동급이며, 조선국의 모든 조신들의 거동이 중국의 명나라의 복건의 장락현의 풍속과 비슷한데, 다른 외국이 미칠 바가 되지 못한다고 언급하였지요. 이것을 보면, 조선국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고조선~조선)들이 전세계의 압도적인 일등국이였다는 것을 보다 세세하게 아실 수 있죠.
또 야인(野人)이나 일본(日本)이나, 삼도(三島)나 유구국(琉球國) 같은 사이(四夷)가 모두 내정(來庭)하였으며, 아름다운 징조와 이상한 상서가 모두 모이어 만물(萬物)이 흔쾌하게 보니, 운수가 형통하고 아름다운 데에 붙어서 오직 소국(小國)만이 왕을 사모할 뿐이 아니고, 중국이 우리 전하를 대접하는 데 이르러서도 그 예(禮)와 그 의(義)는 옛보다 융숭하고, 열국(列國)보다 성대하니, 우리 전하의 공덕(功德)이 성하지 않고서는 그럴수가 있겠습니까? 삼황(三皇)도 마땅히 도(道)를 양보하고, 이제(二帝)도 마땅히 덕(德)을 양보하며, 삼후(三后)도 마땅히 공(功)을 양보할 것입니다.
-세조실록 45권, 세조 14년(1468년) 3월 25일 乙酉 4번째기사
참조:전세계 문명사에서 중국, 한국의 앞에선 그 어떤 국가라도 근본을 내세울 수 없음을 보다 분명하게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근현대사가 시작되기 이전인 기원후 180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들 중에서 종합적으로 보았을 땐 중국, 한국을 양대 최선진국으로 하는 동아시아(동북아시아)문명권이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이여왔던 것이 괜한 것이 아니죠(동아시아문명권은 유교[유학, 성리학]문명권, 한자[한문]문명권으로도 볼 수 있지요. 즉, 국가 운영 사상은 유교, 국가 공용 문자는 한자인 문명권, 문화권인 것이죠. 여기에 기인해서 보면, 예로부터 대대로 안남국, 월남국, 교지국 이렇게 불려온 베트남도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남태평양권이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문명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요. 베트남인의 외모도 베트남의 본류인 북베트남의 사람들은 동아시아인 형태의 외모인 것과 동시에 문화적으로도 명백한 동아시아문명권이지요. 동아시아문명권은 지리적으로 보았을 때, 서방으로는 티베트고원과 위구르고원 그리고 서북방~북방으로는 몽골초원, 만주대륙 그리고 남시베리아권까지라고 할 수 있죠.).
참조 2:전세계 문명사의 양대 근본국인 중국, 한국을 잘 살펴서 보면, '창조(창의)' 의 대가는 중국, '최적화(응용, 재가공. 항상 중국이 창조해낸 것을 한국이 그 어떤 국가들도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최적화해내왔습니다.)' 의 대가는 한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의 기록을 잘 보시다시피, 이는 조선국의 국제적 위상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는 기록인 것이지만, 조선 뿐만이 아니라 조선을 포함한 우리나라 역대 왕조(고조선~조선)들은 동방(해동. 만주대륙-한반도-일본[왜]열도-유구[류큐, 현 오키나와]열도)의 최강대국인 것과 동시에 전세계의 최강대국이여온 중국의 역대 조정들로부터 전세계의 압도적인 일등국에 해당되는 극진한 대접을 받아왔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역대 왕조들의 국제적 위상은 또다른 중화, 동방(해동)최강, 일국지하 만국지상 이렇게 세 용어로 요약하여 표현할 수 있죠. 흥미로우니만큼, 유익한 참조가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ㅎ
뭔가.. ㅋㅋ 그냥 웃습니다. 또 이런식으로 선전 선동도 하는 군요. 클리앙에도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다니.. 요즘 급하긴 급한가 봅니다.
뭐 그러다가 나중에는 다시 돌아오겠죠
그게 선비족이 이 옷을 받아들였고 선비족 왕조인 수당 시대에 유행해서 퍼져나갔죠.
뭐 그러니 중국의 옷이라구요? ㅋㅋ 근원이?
착각도 자유입니다. 모든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거지. 모든 문화가 한 군데서 창조가 된다구요?
독창적으로 된게 우리 임금님옷들 아닌가여... 어디를 베꼈다는건지요;;;;
옷재질 자체도 달라요..
중국은 비단이지만.. 우리는 모시/삼배라.. 임금님옷들도 이거 베이스입니다;;;
디자인달라. 재질달라.. 공통점이 아예 없는디요;;;;
단군왕검의 조선이 5천년전이에여...
중국 고대 상나라가 4천년전이구요.. 우리가 더 오래됬어여;;;;
안히.. 단군왕검시대에 우리는 옷벗고 살았다는 건가여 ㄷㄷㄷ
중국 황하문명 지대랑은 기후자체가 달라여.. 조선은 북한 평양 만주 베이스여서 엄청 추운나라였어여.. 날씨가 다른데 복식자체도 다르져;;;
디자인달라.. 날씨달라. 재질달라.. 어디가 같아여 ㅠㅠ
일반적으로 중국 하나라는 길게 쳐서도 기원전 17세기입니다.. 뻥카로 반영해줘도 기원전21세기 전이구요. 단군 조선보다 200년~500년뒤의 일이에요;; ㄷㄷㄷ
단군 조선은 그냥 기원전 23세기 전으로 박혀있어요.
단군 조선멸망후 기자조선이 기원전 12세기 이구요... 타임라인 잘 맞추셔여 ㅎㄷㄷㄷㄷㄷ
뜬금 단군왕검 조선이랑.. 기자 조선이랑... 퉁치면서... 남에 나라 역사 천년을 깔라고 그래여 ㄷㄷㄷ
최초 설립된 왕조로 카운트 하는거에여... 시대 이런건 카운트 안되구요.. 나라부터 카운트에여...
단군왕검 조선 기원전23세기...
하나라 기원전17세기... 오케??? 인전하시져?
xx시대.. ㅌㅌ문명시대.. 이런건 카운트 안된다니깐여.. 왕조국가는 xx나라 부터 카운트 되여...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책다태우고.. 마오쩌뚱이 문화대혁명으로 자료 다 없앴는데...
어디에 자료가 있다는 거에여. 벽화도 다 없앴자나여 이때 ㄷㄷㄷㄷ
xx시대.. xx문명은 그냥 촌동네 부락으로 보시면 되어여... 이런거랑 어케 조선같은 국가 사이즈랑 비교를 하나유 ㅠㅠ
고조선시대도 마찬가지라고요...
고조선이 중국왕조보다 몇백년~천년 먼저인데.. 누가 누구를 따라했을까여... ㄷㄷㄷ
신라 태종무열왕이 관제 복식을 수입해 당나라와 같이 따르게 한게 처음이며 일반 복식은 그대로였죠.
즉 그 이후로 관복이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 일반 한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관복인 단령 마저도 서역과 몽골 쪽에서 입던 옷입니다. 그걸 4세기에 선비족들이 받아들인 거죠.
단령 입었다고 .. 중국의 옷을 훔쳤다고 .. 중국 사이트에서 헛소리 하는데..
그 단령 자체가 한족의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선비족은 동이족이었습니다. 한푸하고는 상관도 없어요.
지금 중국 공산당이 통치하는 저 국가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만든 국가가 기반을 만든건데..
청나라 황실에서 직접 황제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를 읽어보거나..
만주족에 의한 전 국토의 변발화 등을 보면.. 자신들이 얼마나 헛된 역사를 쓰고
있는 지 알게 될 겁니다. 청나라 황실은 자신들의 손으로 쓴 역사책에서 스스로를 신라의 후예라고 말하고 있어요.
게다가 원나라는 한족을 심지어는 최하계층으로 분류하고 통치했습니다. 엄연히 몽골이라는 현대 국가가
그 역사를 계승하고 있는데도.. 심지어 중화영웅 징기스칸을 부르짓고 있죠. ㅋㅋ
제가 아는 바로는 중국 복식과는 관련없고 이민족들과는 영향이 있습니다만?
바지도 중국에선 애초에 입지 않았던 겁니다만.
문화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근거도 없이 떠들면 안됩니다.
증류주만 하더라도 몽골이 지배할때 페르시아에서 전해진건데 이것도 애초 중국 것이라고 하시죠. ㅋㅋㅋㅋㅋ
몽골제국의 역사인 원나라와 고려와의 관계.. 기황후의 역사부터..
명사에서 말하지 않는 실제 주원장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찾아보시고.. (주원장이 한족같아 보여요?)
다시 오세요. 명분때문에 포장해 놓은 중국쪽 정사나 공산당이 가르치는 역사말고.. 실제 중국 사학자들의 글을 보시고.. 몽골 사학자들의 글도 있고..
다양한 사서를 보세요.
왜 그 당시의 그림을 보면 궁중에 고려 조선 스타일의 옷이 그려져 있는지.... 과연 그 옷이.. 현재 그들이 주장하는
한푸와 상관이 있는 옷인지..
명나라 궁중에서 8대까지 고려스타일로 그냥 도배가 되어버리니.. 그래도 9대 홍치제때.. 황제 체면에..
너무 한 것 같으니.. 고려양(고려스타일)을 금지시킨 이유도 생각 좀 해보시고..
왜 그 시절 궁중에 그리 고려 조선 출신 여인들로 꽉 채웠는지..
3대 영락제의 진짜 친모가 누구인지.. 고려(高麗) 공비(碽妃)가 누구인지도 좀 알아보시고..
영락제가 조선공녀(朝鮮貢女)로 후궁(掖庭)을 채운 이유도 좀 알아보시고..
수 천 리 떨어진 조선에서 12명의 시녀와 12명의 요리사(廚師)를 데리고 온 5명의 여인, 곧 조선(朝鮮) 인우부 좌사윤(仁宇府 左司尹) 임천년(任添年)의 딸 임씨(任氏), 공안부 판관(恭安府判官) 이문명(李文命)의 딸 이씨(李氏), 호군(護軍) 여귀진(呂貴真)의 딸 여씨(呂氏), 중군 부사정(中軍 副司正) 최득비(崔得霏) 딸 최씨(崔氏)와 명에서 광록경(光祿卿)이라는 재상급 벼슬을 제수받은 공조전서(工曹典書) 권영균(權永均)의 딸로 공헌현비(恭獻賢妃)가 된 권씨(權氏)..
에 대해서도 알아보시는게 좋을 겁니다.
영락제의 손자 선종(宣宗)은 조선인(朝鮮人) 공녀 출신인 오황후(吳皇后)로부터 명 7대 황제 경제(景帝)를 낳았고
그 후 명나라 황제 11명은 모두 조선의 피를 받은 경제(景帝)의 후손이었고, 그들 중 여러 황제 또한 ‘조선공녀’를 후비로
들였죠. 그러니.. 임진왜란때 고려천자라 불리던 만력제가.. 조선이 침략당했다니.. 30년 파업을 하다 갑자기 나와
그 엄청난 돈을 퍼부었던 거죠. 최소한으로 봐도 외가의 나라니까.. 게다가 주원장의 집안 내력을 알면 그 이상이고..
이런 내력을 뭐 당대 조선 지식인들도 대개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그렇게 명나라에 집착한 것도 있고..
이런 상황속에서 의복의 역사로 보면.. 누가 주고 누가 종이 되겠습니까?
2. 동아시아(동북아시아)문명권의 기본 바탕은 중국의 역대 조정들에서 창안해낸 게 분명하니까요. 또, 중국풍이 선진스러움의 기준점으로 변함없이 여겨져온 것도 맞으니 이걸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들은 중국풍을 극한의 응용을 해낸 결과 전세계의 모든 문명권들 중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명권이여온 동아시아문명권에서 중국과 함께 양대 최선진국으로 존숭되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명나라서 고려양이 성행했었던 것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3. 조선 태조~세종 12년(1430년) 동안 공녀가 중국의 명나라 조정에 진상되었던 것은, 고려, 조선같은 최선진국의 미인상이 폭넓게 퍼져있었고, 이게 중국측의 요구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뤄졌던 것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례이지요.
4. 2번과 연계된 것인데, 그만큼, 중국의 명 조정측에선 조선 조정을 굉장히 존귀하게 여긴 게 큽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그런 기계 같은 분위기를 클리앙에서 보네요 ^^....
중국의 역사는 중국공산당의 역사와 같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