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은 알죠. 저 때 저 시절 얼마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많았는지. 동네마다 한국전쟁 상이용사이거나 베트남전 다녀와서 팔이나 다리 없는 사람은 한 두명씩은 꼭 있었고 골목이나 큰길에도 개똥도 종종 있었고
국민학교 6학년 때 한 번은 공부도 잘 못하고 항상 좀 꾀죄죄하고 껄렁껄렁한 친구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투견이나 서커스 같은 것도 보러 갔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친구 엄마가 무당이었더라구요. 어린 마음에 무당집에 친구를 데려가기 쉽지 않았을텐데 아마 그 친구는 저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집에도 데려가고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보다 삶이 힘들었을 친구들에게 좀 더 배려하고 친근하게 대해주지 못한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나이 드니까 가끔씩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장편(掌篇) 2 —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 전(錢)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 전(錢)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이런 시도 생각나구요. 저 어린 소녀는 가난했지만 불행을 잘 헤쳐나갔을 것 같기도 하구요.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 이소라가 진행하던 라디오에 한 소녀가 보낸 사연이 기억납니다. 소위 말하는 달동네에 살던 친구였어요. 가난을 힘들어하던 그 친구의 사연을 읽고, 이소라가 자신도 안다며, ‘하꼬방’에서 자란 자신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로 말하던, 주파수 사이로 나오던 그 날 밤이 생각나는군요. 이런 정서가 저같은 70년대생들에게는 한웅큼씩은 있는 거 같아요.
ceer
IP 223.♡.78.179
08-26
2024-08-26 20:00:49
·
글솜씨 너무 좋네요. 이분이 쓰는 장편소설도 읽어보고싶군요
푸른비수
IP 14.♡.151.120
08-26
2024-08-26 20:09:30
·
제가 "그 애"였다면, 함께 내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저만큼의 거리에서 가끔의 작은 위안으로 남아주어 다행이라 여겼을 거 같네요.
1980년대 경기도 화성군 어느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에 또래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우리가 놀던 친구네 집에서 멀지 않은 거리 집에서 누군가 정말 서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 울음소리가 궁금하여 몰래 들여다 보았는데, 그 집에 사는 고등학생 누나가 술취해 주정하던 아버지를 향해 우는 소리였다. 그 누나는 우리와 다르게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았다. 이제 그 누나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삭제 되었습니다.
오라질
IP 58.♡.112.223
08-26
2024-08-26 22: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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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중3 정도 돼서 포도 처음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일기 썼던거 같습니다. 옛날엔 다 가난했어서 슬프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빈부격차가 커서 안쓰럽죠.
화자의 연배가 70년대생인줄 알았는데.. 몇가지로 짐작해 보니 80년대 초중반생의 90년대~2천년대 이야기 이군요. 난쏘공 보다 20년 후의 세계인데도 왜이렇게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눈웃음
IP 180.♡.205.80
08-26
2024-08-26 23:14:54
·
그 애는 엄마가 외박하는 날이면 아버지의 허리띠를 피해서 포도를 다다다닥 달렸다...
하..먹먹하네요...ㅜㅜ
neopage
IP 218.♡.176.202
08-27
2024-08-27 00:04:33
·
흡입력 좋은 글이네요. 아련함도 느껴지고요.
nuss
IP 210.♡.53.25
08-27
2024-08-27 00:27:06
·
이 밤에 눈물이.. ㅠㅠ
트레쉬
IP 218.♡.187.178
08-27
2024-08-27 00:45:55
·
그 애가 가진 패 중에 좋은 패였고, 글 쓴이에게 의지하며 고되고 어려운 삶을 버텨으리라 생각됩니다.
passbybe
IP 117.♡.17.34
08-27
2024-08-27 01: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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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가끔 띄어쓰기를 하기 싫을때가 있는데, 오늘 ‘좋은 글’이 그렇네요...그냥 글이 참 좋습니다. 저도 어린시절 참 가난했었던거 같은데...그땐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가난한지도 모르고 자랐던거 같습니다. 다시 돌아갈수도 없고 가기도 싫은 그때지만, 가끔 이런 글을 볼때마다 문득문득 잊고 지내던 그 때가 떠오르네요..
그리고 오늘 하루에,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빠져드는 글을 읽었습니다
/Vollago
동네마다 한국전쟁 상이용사이거나 베트남전 다녀와서 팔이나 다리 없는 사람은 한 두명씩은 꼭 있었고
골목이나 큰길에도 개똥도 종종 있었고
국민학교 6학년 때 한 번은 공부도 잘 못하고 항상 좀 꾀죄죄하고 껄렁껄렁한 친구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투견이나 서커스 같은 것도 보러 갔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친구 엄마가 무당이었더라구요.
어린 마음에 무당집에 친구를 데려가기 쉽지 않았을텐데
아마 그 친구는 저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집에도 데려가고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보다 삶이 힘들었을 친구들에게 좀 더 배려하고 친근하게 대해주지 못한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나이 드니까 가끔씩 별 생각이 다 들어요.
장편(掌篇) 2
—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십 전(錢)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십 전(錢)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이런 시도 생각나구요.
저 어린 소녀는 가난했지만 불행을 잘 헤쳐나갔을 것 같기도 하구요.
출발선이 다른걸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이 꼭 오기를 바랍니다.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 이소라가 진행하던 라디오에 한 소녀가 보낸 사연이 기억납니다. 소위 말하는 달동네에 살던 친구였어요. 가난을 힘들어하던 그 친구의 사연을 읽고, 이소라가 자신도 안다며, ‘하꼬방’에서 자란 자신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로 말하던, 주파수 사이로 나오던 그 날 밤이 생각나는군요. 이런 정서가 저같은 70년대생들에게는 한웅큼씩은 있는 거 같아요.
함께 내 불행에 휩쓸리지 않고.
저만큼의 거리에서 가끔의 작은 위안으로 남아주어 다행이라 여겼을 거 같네요.
가난하던 시절,
집에서 쫓겨나 부산으로 간 그 때,
소꼽친구처럼 지내던 내 친구들은...
스무살이 되어 만났을때도 가난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더군요.
지독한 가난의 무게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글이 참 쓰라리네요.
옛 세상은 참 서러운게 많은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불만과 불안에 시달리는 피로사회가 되어버렸네요.
예전엔 정말 세상이 서러움으로 가득했었는데…
어쩜 그리도 슬픈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고
불쌍한 일들도 많았는지.
이 글을 읽고나니 그 서러움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저는 어린 시절 일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안 좋은 일들을 많이 겪어서, 잊어버려야 살아갈 수 있어서 일까요..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옛날엔 다 가난했어서 슬프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빈부격차가 커서 안쓰럽죠.
먹먹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하..먹먹하네요...ㅜㅜ
가끔 띄어쓰기를 하기 싫을때가 있는데, 오늘 ‘좋은 글’이 그렇네요...그냥 글이 참 좋습니다.
저도 어린시절 참 가난했었던거 같은데...그땐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가난한지도 모르고 자랐던거 같습니다.
다시 돌아갈수도 없고 가기도 싫은 그때지만, 가끔 이런 글을 볼때마다 문득문득 잊고 지내던 그 때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