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륵은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 후 나타날 미래불입니다.
미륵은 용화수 아래에 하생한 후 설법을 하여 중생을 깨닫게 하는데 정확히는 처음에 96억, 그 다음 94억, 마지막으로 92억의 중생들이 깨달음을 얻어서 윤회의 사슬을 끊고 부처가 되게 이끕니다.
그런 점에서 유독 동아시아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불교의 미륵신앙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미륵보살이 현재 머물고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보살이 세상에 나타나 중생들을 구제할 때 같이 태어나 해탈하자는 미륵상생신앙, 다른 하나는 미륵이 세상에 하루속히 내려와 중생들을 깨달음에 이루게 해 주길 바라는 미륵하생신앙 입니다.

이 두 신앙 중 민중에 가장 강하게 와닿아 민간신앙과 결합한 것은 미륵이 나타나 현세에 고통받는 자신들을 구제해 주길 바라는 미륵하생 신앙이었습니다.
김유신이 이끌던 화랑도의 이름이 용화향도인 것도,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향나무를 묻어 그 공덕으로 미륵과 이어지기를 바라는 매향 활동, 조선의 후쳔개벽 사상이 유행한 것도 미륵이 하생하여 사람들을 구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미륵하생신앙은 인도에서 하층민들이 새로운 창조를 상징하는 시바를 많이 신앙하듯, 전근대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핍박받고 소외된 하층민들에게 강하게 와닿았고, 하층민들이 주로 믿던 민간신앙과도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를 보여주는 것이 돌미륵입니다.
본래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바위에 조각되는 마애불이나 돌로 만드는 석불은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 등 다양한 불보살이 조각되었으나 민간의 미륵신앙이 대두되면서부터는 투박한 형태의 석조상을 만들고 이를 미륵이라 부르는 한편, 돌부처나 돌벅수(돌장승)종류를 모두 관용적 표현으로 미륵불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 있는데, 불상의 수인이 아미타구품인 중 중품하생인을 취한 점이나, 손에 든 연화가지 등에서 보이듯이 본래는 관세음보살상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한편으로는 미르(용)신앙과도 결합하였는데 삼국유사에 미륵사 창건 설화에서 호수 한 가운데 미륵불상이 나타나 호수를 메우고 절을 짓는 이야기나 미륵사 창건 설화와 비슷한 흐름의 미륵신앙 관련 사찰 창건설화들, 한반도에서 논농사가 발달한 전라도 지역에 민간의 돌미륵 신앙이 타 지역보다 크게 발달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민간 기복신앙과 결합하여 포대화상이 등장합니다.
포대화상은 실존인물로, 본명은 계차, 호는 정응대사, 혹은 장정자라고 합니다.
그는 후량(907~923) 시대 돌연히 나타난 신승으로, 풍만한 배를 드러내고 등에 온갖 물건이 가득한 포대자루를 매고 껄껄 웃으며 다니다 앞날이 팍팍한 사람에게는 백발백중의 점을 쳐주고, 아이들을 만나면 같이 놀아주고, 먹거리나 기타 물건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등의 포대자루에서 무엇이든지 꺼내어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입적할 때 "미륵이여 진짜 미륵이여, 여러 분신을 드러내 때때로 속세 사람들에게 보이건만 속세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구나(彌勒眞彌勒 分身百千億 時時示時人 時人自不識)" 라는 내용의 게송을 남기고 좌탈입망하자 사람들이 미륵의 화신이라 여기게 되었고, 이후로 현대까지 중국의 미륵불상은 뚱뚱하고 배가 나온 채로 웃는 스님의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포대화상은 한국에는 전통적으로는 볼 수 없었으나, 한중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내의 절에도 포대화상 조각상을 설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중국의 포대화상이 전해져 칠복신 중 하나로서(호테이) 자리잡았고, 오키나와 지역에서 민간신앙과 결합하면서 풍요의 신으로 인식되어 전통 풍년제 등에서 특정한 때마다 찾아오는 내방신으로 민간신앙과 결합된 미륵, 이른바 미루쿠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 전통 축제에서는 노인이 미루크신 탈을 쓰고 복식을 갖춘 뒤 춤을 추는데, 3대에 걸쳐 자손이 번창하고 그 해에 집안에 죽는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 없는 집안의 노인이 미루크신 역을 맡습니다.

이렇게 미륵은 구세주의 역할을 맡지만, 그 이상으로 신격화되거나 기존의 신격과 습합되는 일도 일어납니다.
대표적인 것은 미륵이 창조주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본래 시바가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려 했다가 브라흐마가 먼저 세상을 만들어 불완전한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처럼 미륵도 비슷한 이야기가 퍼져 있습니다.
한국의 창세가나 오키나와의 창세신화(단 여기선 석가와 같이 만듦), 중국 동해지방, 몽골 등지에서는 미륵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차지하려는 석가모니와 미륵이 대립하던 중 석가모니의 속임수로 미륵이 패배하여 세상에 악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하죠.
이렇게 비슷한 내용의 설화들이 동북아에 널리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현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강렬했음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회와 반성, 이타심과 자비의 실천을 통해 실질적으로 현세를 바꾸고 내세에 미륵을 만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 정통 미륵신앙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일으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