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노동부산하기관에서 했던 장애인 고용 업무에 대한 논픽션 창작물 연재입니다. 창작 내용상 경어사용에 대해서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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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2차 탈락후 기로에 섰던 내가 시작한 일(1)
사시 2차 시험을 탈락한 후 나는 곧 다시 준비를 했지만 아들의 탄생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노동부산하기관에 입사지원하였었다.
처음 입사 면접을 보러가니 6명 뽑는데 3600명이 지원했다더라.
안되면 사시 다시 준비하지 싶으니 긴장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다양성경영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집단토론 주제였다.
알지만 가만 있었다.
전부 이말저말하는데 틀린 말들이었다. 끝까지 참았다.
토론 사회 역할을 맡은 경쟁지원자가 입술을 한쪽만 삐죽 올리며 한마디도 안하고 있는데 나도 아무말이나 해보라했다.
다양성경영은 기존의 기준에 의하면 채용되지 않을 외국인 장애인 노인 경단녀 등 다양한 인재풀을 기용하여 결국 회사의 경영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개념이다, 라고 설명하였다.
이제 1차면접에서 3600명 중 36명이 2차에 올라왔다.
이번엔 토론이 아니고 임원 여럿이 지원자들 앞에 나란히 앉아 자기 맘대로 질문하는 과정이었다.
정말 짜증났다.
왜냐면 임원 개저씨들이(feat.민희진) 미모의 여성지원자 한명에게만 계속 질문을 하며 시간을 때웠기 때문이었다.
질문 수준도 같잖았다, 영어 어떻게 하면 잘하냐는 둥....내귀를 의심케하는 질문들이었다,
갑자기 그런데 한분이 내게 질문을 했다.
청각장애 왜 기재했냐고.
그거 안 적어도 너는 붙는데?
열이 가슴 깊숙한데서 올라왔지만 아네, 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미모의 여성지원자에게 질문하더니 이제 마지막으로 발언할 분 하세요, 마치겠습니다.
이러는 거였다.
이대로 마칠 수 없다, 싶었다.
아까 저에게 장애인기재 왜 했냐고 했던 분이 계셨는데,
이렇게 운을 뗐다.
졸던 분이 희한하게 이때는 내 말을 듣고 눈을 번쩍 떴다.
좋지 못한 청력 때문에 저는 학습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저는 겸손할 수 있었고 내 인생에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장애는 제 인생에 떼놓을 수 없는 굴레였습니다.
그럼에도 왜 그걸 적었냐는 질문은 정말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에라이 난 개겼다가 떨어졌구나, 싶었다.
그런데 붙었다.
대신 서울토박이이던 내게, 그리고 애가 3살짜리이고 당시 입양했던 큰 애까지 있던 나에게 대구발령이 떨어졌다,
대구 내려가기 전날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불 싸들고 낡은 1세대 스포티지를 몰고 대구로 일요일 밤 9시에 출발했다
밤 12시에 도착하니 우부장이 목화아파트(매우 낡은) 대문을 열어주었다
트렁크를 끌고 현관신발 벗는곳에서 신발도 못벗은 내게 던진 질문
자네 지금 그나이까지 뭐하다가 여기 왔나
난처했다
일단 가방이랑 들고 들어가겠습니다. 애 태어나서 신림동고시학원에서 형사소송법 강의하고 그랬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눈만 쳐다보고 있다.
난감했다.
파란 만장한 대구생활이 시작되었다.
-길어질 거 같아서 끊어서 가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다 읽었네요..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ㅎ
글도 흡입력이 너무 좋아서 지금 하시는일 그만 두시고(농담) 전업 작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필력이 너무 부럽네요.
(미모의 여성지원자분은 불합격(소근소근))
공부한 시기가 겹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오며가며 스쳐지나간 사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편 기다리겠습니다
언능 올려주세요..ㅋㅋㅋ
2편 부탁해요!
빨리 다음편이요
감동도 되고요!
진지하게 에세이 한편 가보시죠
부업으로 작가하셔도 될 듯요.
글에서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ㄱㅊㅅㄹ에서 봤어요 ㅎ
글이 읽기 좋게 잘 쓰시네요.
2편 기다리겠습니다~
초롱초롱!!!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