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사회가 아니라 교회에서요 ㅎㅎ
교회에서는 보통 달란트라는 포인트 제도가 있습니다.
아마 어린시절에 잠깐이라도 교회를 다녀보신 분이면 알겠지만 달란트를 받고 나중에 달란트 잔치에서 먹을거나 간단한 상품으로 교환하곤 했습니다.
사실 요즘은 이런게 많이 퇴색되어있는 실정입니다.
일단 물건들이 넘쳐나고 믿음이나 간절함, 그런게 당연히 옛날과 같지 않구요.
달란트도 다들 아이들에게 장부에 적어놓게 했었습니다.
다들 시큰둥하고 뭐 그냥 장부의 숫자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다 올해부터는 제가 레이저 커팅기를 이용해서 직접 만나(달란트)코인을 주조해 보고 있습니다.
일반 동전(사실현금 보기도 힘든 요즘이죠) 형태로 제작하고 일단 실물감을 느끼게 해주는게 목표였습니다.
현재 화폐 발행한지 3개월.
한가지 확실한건 아이들이 굉장히 실물 코인을 좋아합니다.
받을 때 태도나 소중히 갖고 다니더라구요.
게다가 실물이다 보니 잊어버리면 그냥 없어지는 거라 했습니다.
한마디로 소각효과인거죠. 그냥 잃어버렸으면 재발행 불가. 잘 갖고 있으라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씩 전용 파우치(?)를 갖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현재 목사님과도 이야기해서 교회 내 작은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아이들이 음료를 하나 마실 수 있게 했습니다.
대략 1만나가 1천원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네요.^^;ㅋㅋ
그리고 보통 평소에 쓸 일이 없고 1년에 딱 한번 달란트 잔치에 썼던 것과는 달리
물건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이 갖고 있는 컨텐츠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이 밥사주기, 함께 인생네컷, 영어 잘하는 선생님은 영어놀이 등..
일단 사용처를 부지런히 늘리는 방안을 계획중입니다.
벌써 저의 특제 공중 비행기 돌리기 스페셜 놀이에 한 아이는 홀린듯이 2만나를 저에게 주고 놀았습니다. 아이를 빙빙 돌려서 극한의 G를 경험하게 하는 것인데.. 사실 선생님으로서 정말 힘든일이지요..ㅋㅋㅋ ㅜㅜ 다시 그 2만나는 연방은행(달란트 금고)으로 귀속시켰습니다.
그 외에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선생님들과 전도사님들에게 무분별한 배포 금지를 해놓았습니다. 이제 전도사님이 질문이나 대답 잘한 아이에게 과거엔 10만나 줬던것도 제 눈치 보면서 1만나, 하루 최대 3만나로 제한받고 있습니다..;;;
막상 제가 연방은행이 되어서 화폐를 운용하려고 하니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더라구요.
발행량도 제가 알고 있어야 하고 유통이 얼마나 되는지,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무분별한 배포, 즉 화폐가치의 하락을 방지시켜야 하고
또 사용처, 즉 화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 받아줘야 하기도 하구요.
위조는 다행이 아크릴 레이저 커팅이라 쉽게는 못합니다
나중에 대출프로그램을... 농담이고
아무튼 이게 뭐라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도 있고 또 한편에서는 그걸로 내기도박(?!)을 하는 아이가 있어서 보이는 손이 개입해 강제 금지 시키고 몰수 경고도 했습니다.
아직은 빈부격차가 없지만 아예 못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일찍 교회에 오면 1만나를 주는 등등
다양한 현상들을 볼 수 있어 재밌네요.. ㅎㅎ
암튼 이 글을 가상화폐당에 올려야 하나 고민하다 모공에 올려봅니다.
어렸을때 부터, 경제 관념을 시켜주는 이런 교육 좋은거 같습니다. 젤 좋은게 본인들이 생활에서 느끼면서 배우는거죠
훌륭한 지역 화폐 같은데요 ㅎㅎ
경제교육 효과는 탁월하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경제 개념도 알려주시고..ㅎㅎ
저 어릴 때를 생각해보니, 특정 선생님의 과한 지급은 허탈감을 주는 케이스였습니다. 이런 부분도 중재하신다 하니.. 대단하시네요.
수고로울수록,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 배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화이팅입니다!! 건강도 잘 챙기시구요~!
천민자본주의 성공주의신학에 경도된 매우 잘못된 해석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달란트'를 나눠주는 것도 사실 매우 잘못된 활동이라고 봅니다.
비유에서, 임금이 달란트를 나눠주고 이를 몇 배로 불린 시종에게는 상을 주고, 그대로 다시 들고온 시종에게 벌을 주지요.
그런데, 혹시 아시나요 1달란트가 얼마인지? 1달란트는 현재 우리 화폐 가치로 약 6억원이라고 합니다.
뭔가 여기부터 쎄하지 않습니까?
당시 (현재까지도) 유대 사회에서는 동족에게 이자 받는 것을 엄금하고 '은행'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수십억원을 주고 몇 배로 불려오지 않으면 벌 준다는 이 임금이라는 자는 도대체 뭘까요?
이를 하나님이라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해석입니다.
당시 청중은, 우리로 치면 철거촌 도시 빈민이라 할 수 있는 로마 식민지배하 가난한 소작농들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의도는, 로마제국, 유대 왕, 유대 교회, 지방 민간 세금징수업자에게 4중의 수탈을 받으며
절대적 빈곤의 이유도 모른채 힘겹게 살던 민초들에게, 지배 계급의 허상을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족에게 돈놀이 하지 말라는 유대교의 가르침을 비웃듯이
수십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맡기고 이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몇 배로 불려오지 않으면 벌을 주는 포악한 왕,
그런 자들이 바로 갈릴레아 가난한 농부들이 겪는 고통의 구조적 원인 제공자라는 폭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도와 정반대로 조용기 류의 성공신학 쪽에서는 이 '달란트'의 비유를 신나라 써먹고 있죠.
같은 맥락으로, 겨자씨 비유도 있죠. (겨자는 나무가 아니라 덤불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예수님 의도를 왜곡)
지금, 아이들에게 수십억원씩 뿌리고 있는 상황이에요.
'만나'도 그렇습니다.
이집트를 나와 광야를 떠돌며 굶주림에 시달리던 유대인에게 내려진 은혜인 만나는 하루만 지나면 사라집니다.
한 마디로, '쌓아 놓지 말라'는 분명한 메세지가 있죠.
그런데, 그걸 화폐로... ㅠㅠ
물론,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현물 화폐 형식을 빌리는 것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 봅니다만,
좀더 성경적으로, 그리스도교의 본래 가르침을 해치지 않도록 깊은 성찰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