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5월 서울예대 학보에 실린 신수진(요조)의 칼럼.
빛나는 오늘의 발견
빛나는 오늘의 나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 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 '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 '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바나나 파티>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전에 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 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같은 건 관심도 없다.
얼마 모이면 쓰겠다 그런거 없습니다. 몇십만원 모이면 애들하고 호텔가서 하루 놀다 오기도 하고요.
아니면 당일치기로 근처 어디 좋은데 갑니다. 해외여행 가겠다고 오랫동안 모으지도 않아요. 몇만원 모이면 케이크 사먹은 날도 있고 바쁜 시절에는 200만원 넘게 모여서 큼직한 모니터를 지른적도 있습니다.
그냥 돈이 적당히 모였는데, 뭘 하고 싶으다. 그러면 사용합니다.
굳이 죽음이라는 어쩌면 거창하고 어쩌면 무거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는데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많든 적든 나를 위한 행위들이 있어야 오래 버틸수 있는거 같아요.
저도 평소에는 아끼며 살면서 일정 금액씩 따로 저축 해놨다가 그 돈으로는 하고 싶은거 지르고 사는데 좋은 것 같아요
고인한테는 도대체 저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하면서요.
내가 하고 싶은일이 '나를 위해 사는 것' 보다 '내 아이들을 위해 사는 것'쪽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 때문이겠지만요.
출근해서 일 하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일 혹은 다음주에 내가 우리 아이들을 못보게 될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럼 오늘, 이번주에 아이들이랑 좀더 나은 시간을 보내고 좀더 예뻐해줘야지..
뭐 그런 마음에 또 회사에서 하루를 버티고 지내는 걸지도 몰라요 ㅎㅎ
후회가 남지 않게 매순간 열심히 산다면 현실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 모두 만족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이들의 미래를 바라는 "오늘 아빠"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오늘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매달 꼬박꼬박 저축하고 일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현재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내가 오늘 한 일"이 되겠죠.
그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그것으로 오늘을 만족할 수 있으면 내일 죽어도 아쉬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세 아이의 아빠 씀.
저는 저의 20대를 비추어보면, 좀 더 현명한 소비와 미래 설계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거든요.
미래의 나 가 현재의 나가 되기까지 시간이 사실...
그리 여유로운건 아니니까요. ㅠㅠ
저도 위 댓글에서 하루 만원은 나를 위해 쓰자고 한거고요. 저는 위험을 대비해 보험도 들어놓았고요.
하루 만원이 얼마 안될지 모르지만 한달만 해도 30만원정도 되는 큰돈이잖아요.
오늘의 나를 위해 만원 내일의 나를 위해 만원 이렇게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봐요.
내일만을 위해 살아 10년모을거 오늘의 나도 다독여주며 20년이 걸린다면 전 20년을 택할것 같아요.
어떤것이든 적당한 선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그 선이라는게 모두에게 다 다른거라서 그걸 찾기가 좀 힘들겠지만요. ^^
6미리님은 참으로 현명한 생활을 하고 계시네요.
요즘 20대가 저의 시기와는 다르게 생각도 많고 참 똑똑하다 생각합니다.
다만.. 20대는 감정의 기복이 큰만큼 섣부른 조언이 극으로 닫는 경우가 많다보니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나 생각되어 적어봤어요.
삶을 보는 관점은 비슷한거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요즘 젊은애들은 참 생각없이 돈을 펑펑 쓴단말이야,
우리때는 말이지 차비가 아까워서 몇정거장은 그냥 걸어다니고 블라블라...
이런 인간들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보고, 저는 공감하는 편입니다.
물론 저축도 하고 그 외 대비는 하고 있지만서두요.
혹시 엄마나 아빠 갑자기 죽으면 3일만 슬퍼하고 기일에 제사같은 거 하지 말구 모여서 밥이나 먹어. 라고 큰애에게 말했는데 그러고 보니 이게 현재 저의 유언이네요.
그 돈으로 선물을 사주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요조의 글을 잘못 보면 욜로를 부추기는 것 같지만, 저도 항상 내일이 있을 수는 없다 생각하기에 적당히 하고 싶은거 하고 적당히 또 내일을 준비하기도 하고요.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저금을 했어'도 오늘의 나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지금의 모습에서 찾아지는 거죠.
그쵸..
욜로가 아니고...하루하루 충실히, 온전히 살라는 내용이죠.
근데 나 자신을 위해 사는거에 비중을 늘리는건 여러모로 맞는거 같습니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이런 걸 지원하는거죠. 당장 오늘은 뭘 먹으며 살 수 있을까..생존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선택하는 기회를 작은거라도 주자는 거요.
하지만, 저 강연을 듣고, 책을 사고, 음반을 사고, 저 포스트를 보고
요조가 이후에 문신을 새기고, 서점을 열고, 페미니즘을 주장해도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꺼내보는 글인데 또 봐도 좋네요. 공감합니다.
슬픔이 있는데도 행복한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맘이 조금 먹먹해지더라구요. 요새 간간히 음악 내주시는거 받아먹고 있습니다.
내일이 없고 오늘만 사는,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이야기가 한동안 회자 되었지요.
저는 요조씨와 반대의 입장입니다만
항상 응원은 하겠습니다..
부처님같은 성현들도 지금을 살으라고 강조하셨고요. 돈도 없으면서 오마카세 먹고 해외여행 가는건 그냥 멍청하고 충동적인데 자기는 욜로라고 착각하는 거고요.
단순 소비/과다한 해외여행 등으로 무모하게 간다면
비참한 미래를 맞이할 확률이 높아질것 같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소비를 정당화하게 되는 듣기좋은 말 중 하나가 될것 같네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오늘 소비량이 늘어나면 미래에 그 책임을 져야하니깐요
늙어서 까지 산다는 보장이 없어서 노년을 대비 하지 않는다는건 정말 무책임한 생각으로 보여집니다.
70대 나의 삶도 나의 삶
결론은 밸.런.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나름이더라고요.
누군가는 젊어서 욜로하다 늙어서 초라해지고
누군가는 즐기지않고 나름 모으고 산거 같은데 여전히 모이는 건없고 소유한 것도 없고
누군가는 즐기지도, 모으지도 못하고
누군가는 열심히 모으고 벌었으나 늙어서 지나가버린 젊을 때 하지 않아 기회가 없는 후회하는 삶을 살기도 하죠.
우린모두 죽음을 향해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사는 것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거죠.
내용과는 별개로 20대는 일반적으로 소득이 크지 않은 시점이고 저축보다 소비를 통한 자기 경험, 가치 향상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하죠. 저축은 조금 더 늦게 확실히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루 하루 살아가야해서 이런 얘기가 사치인 분들도 많은건 알고요.
그러니 '무언가'를 위한 내일을 걱정하기 보단
당신의 내일은 잠시 내려두고
오늘 자신에게 집중해봐요"
생각이라는게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저 하루 하고픈대로 고민없이 살자 라고 들리기도 하고
'이랬다면, 저랬다면' 같은 과거의 생각으로
'이랬을텐데, 저랬을텐데'같은 내일의 상상때문에
오늘 너무 힘들지 말자 라고 들리기도 하니까요.
내가 어떻게 그 혼란의 과정을 다 뒤로 하고 지금의 나이까지 왔나 기억도 잘 나지않습니다.
그져 최고의 선택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갈뿐이죠. 언제 어떻게 될지 알수는 없지만 앞으로든 옆으로든 나아가야죠.
저 엄청난 경험후의 깊은 소회가 자칫 욜로로만 비춰질까 우려스럽긴합니다.
극단으로 치닫는게 제일 경계해야하겠죠.
한때 강신주 강의 인기가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안맞아? 이혼해. 하기싫어? 하지마....이런식의 논조가 저변에 깔려있죠. 혼란스러웠어요. 맞는말을 하곤있는데 너무 막던지는거 같은... 그저 모든 일이 무탈하게 잘 진행되기만을 바랄뿐이죠.
바득바득 저축하면서 돈 모으던 사람들은 젊은 시절에 좀 더 즐기지 못한거 후회하죠
인생은 무엇을 하건 후회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냥 다른사람의 삶과 비교하지말고
내위치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확행이 대표적이구요
모른다는 것은 당장 내일 죽을 수 있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합니다.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것이
맛있는 것은 오늘 먹자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을 오늘 가자는 것만이 아닌데
때때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집안 상황이 안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10년 전에 아버지의 건강이 갑자기 안좋아지신 것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전에 1000원짜리 대신 500원짜리 사먹던걸 그 때를 계기로 아예 안 사먹고 굶는 수준으로 더욱 아꼈습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아끼면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해서 지금은 저도 안정된 생활을 할 정도로 자리를 잡고 돈 걱정 안하고 살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건강을 회복하셨고요.
저는 지금도 남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끼고 살지만 아버지께는 절대로 돈 아끼지 말고 그간 못 해보신 것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보시라고, 돈이 없으면 저한테 얘기를 하시라고 늘 말씀드립니다. 원래 돈을 막 쓰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지만요.
직장생활 한지 몇 년째지만 저를 위해 통크게 돈 써본건 모니터 하나 산게 거의 전부였습니다. 작년 제 생일에는 저에게 주는 선물로 자전거를 샀습니다. 그것도 비싼건 아니지만요. 유일한 취미가 주말에 차 타고 드라이브 하거나 자전거 타는 거라서 다음에 저에게 주는 선물로는 전기차를 살까 고려하고 있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고상한 의미를 찾지는 못하겠습니다.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아니 정말 이 말을 이해한 것 맞아요?
내일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도 열심히 사는 겁니다.
험한 세상을 좀 더 겪은 후에 인생을 논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사랑하는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일생의 아주 슬픈 일이기는 하지요.
그것은 충분히 공감하는 일입니다.
다만 일생의 슬픈 일과 일생의 위기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저 분의 삶의 태도가 선뜻 공감 해주기는 어렵더라는 얘기입니다.
만일 저 분의 동생이 죽은 것이 아니라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할 중대한 사고를 당하여
평생을 가족들에게 의지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면
저 분은 그때도 내일 크게 다쳐서 불구가 될 수도 있으니 오늘 즐길 수 있는 것은 즐겨보자
이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독해 능력이 부족해서 저 분 글 속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쨋든 내일은 모르니 오늘 아등바등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은 공감을 못 하겠다는 말입니다.
소비로 설명했지만 말은 경험할 수 있는거(먹거리, 여행 등등) 할 수 있다면 해보라고 이야기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군가의 의견에 니가 덜 겪어봐서 그래라는 식의 조언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싶네요.
직접 겪어본 느낌은 '내일 죽을수 있다' 가 아니라요, 그냥 오늘 아무때나 아니면 자다가 혹은 길가다가 죽을수 있는거더라구요.
아무튼 번거보다 더 쓰고 산지가 오래됐는데요, 빚도 있고 점점 애들 크고 쓰는 돈도 늘어나지만 어떻게든 살아지고요, 저축대신 건강에 투자하고 하니까 몸도 또래중에 제일 낫고 사는것도 재밌고 좋습니다.
언제 죽어도 후회없는 삶이예요.
어느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지만 너무 오래 살게 될수도 있으니까요..
이 사고인가보네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333086
청량리역 사고 관련 굴착기 운전자 행방 묘연
미래는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기에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내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개인의 운명 아니고라도 지금 사회적으로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불행한 일이 생길 확률이 점점 커지고 있죠. 세월호, 이태원, 티핑 포인트를 넘은 듯한 기후 재난 등등 정말 당장 내일도 어찌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태어난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나 사고 아닌 이상은 대충 평균 수명을 살아가기는 할거고, 그에 대한 대비도 분명 필요하긴 합니다.
누누이 말해온 점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사이의 균형점을 잘 잡아서 살면 현재도 어느 정도 즐기면서 미래도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습니다. 저 분도 나중에 쓴 글에는 그런 내용을 쓰기도 했고요. 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그 균형점은 다를텐데 어찌되었든 너무 아둥바둥 살지는 않았으면 싶네요. 우주의 티끌도 안되는 존재니까요~
같은 무대 김어준 편도 있는데 추천합니다.
이 후의 글이 안보이는 분들이 좀 있나보네요.
그 안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추구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