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희.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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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학교는 1970년에 공과대학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의대와 공대가 중심이다 보니, 인문대의 경우 솔직히 지역의 유일한 종합대로서 없으면 안될 것 같아 있는 듯한....그냥 있으니까 있는 그런 존재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의외로(?) 도서관의 인문학 특히 한국학과 일본/중국학 등 동아시아학 컬렉션이 괜찮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생각 외로 필요한 연구서들이 거의 다 있어서.(내가 문헌을 많이 쓰는 편이라 내게 필요한게 어지간히 있음 진짜 괜찮은 거다 ㅎㅎ)
이를 테면 일제시대 총독부 자료들이나 1960~80년대 초창기 연구서들, 그리고 국공사립 도서관과 박물관/문화재단/연구소 등에서 제작한 비매품 자료, 영인본, 연구보고서 등 이런 것도 있을까 싶은 것들이 검색하면 거의 있어 때로 놀람을 넘어 당황하기도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자료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해 다른 곳에 그게 없는 걸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책들은 이용자가 거의 없다 보니 그냥 다 내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책들은 수년 간 내 연구실에 계속 비치된 경우도 있고.(‘예약’ 들어오면 바로 반납하는데, 지금까지 예약 들어온 경우가 진짜 잘 없다 ㅋㅋㅋ)
이번에 도서관 장서 폐기 사건을 겪으며 폐기 목록에 오른 수십 만권에 이르는 ㅠㅠㅠ 책들의 목록을 검토하면서, 한편으로 ‘와~~~ 이런 책도 있었구나!’ 감탄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는데....
최근 어떻게 그런 장서를 갖출 수 있었는지 그 비밀 중 하나를 알게 되었다.
* 노경희, [책을 말하다①] 중앙도서관의 한국학 장서 ‘옥재(玉宰)문고‘(경상일보, 2024.01.19.)
그간 내가 빌린 책들 중 상당수는 ‘옥재문고‘ 소장서라 한 경우가 많아 늘 그 문고가 궁금했다. 마침 이번에 지역 신문 <경상일보>에 인문대학 교원들이 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책들과 그 장서를 둘러싼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를 만들어 릴레이 연재를 하게 되었고 어찌어찌 내가 첫회를 맡았다.
그래서 ‘옥재문고’를 조사하기로 마음 먹고는 도서관 팀장님을 여러 번 찾아가 엄청 괴롭히며 ㅋㅋ 수십 년 전 손으로 쓴 서류들을 다 뒤진 끝에 이 옥재문고가 1986년에 큰 기부를 받아 마련한 기금으로 국문과/사학과/철학과 교수들이 운영위원회를 만들어 책을 추천하고 전문 서점상을 통해 구입한, 교원들의 엄격한 도서 선정과 전문 고서상들의 적극적인 탐서 작업이 맞물려 이루어낸 특별한 문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서수 자체는 1500책 정도의 큰 규모는 아니지만, 책들 하나하나가 엄선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서적부터 1970~1980년대 국학자들의 저술 초판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한 권도 허투로 들어온 것이 없었다. 2024년인 오늘날에는 1970년대 책들도 이미 반세기 전의 것이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임을 생각할 때, 이 장서들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나로서는 이번 <훈민정음> 발표를 준비하면서 초창기 연구자들의 저술을 거의 초판으로, 예를 들어 일제 시대 오구라 신페이 같은 일본인 학자들의 저술도 초판본으로 전부 빌려 볼 수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
김윤경의 <조선문자급어학사>(조선기념도서출판관, 1938)은 해방 이후 나온 재판본이 흔하게 보일 뿐 이 ‘조선기념도서출판관 ’ 초판본은 찾기 어렵다(그런데 이걸 난 대출까지 해서 연구실에 비치한ㅋㅋㅋㅋ) ‘초판’이 중요한 것은 처음 그 책이 탄생할 당시의 형태를 보여 주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상을 아울러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도서관 특히 ‘대학도서관’이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고민한 시간들이 너무 많았는데, 여전히 내게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뭐라 답을 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도서관의 ‘과거’에 대해서 만큼은 제대로 기록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청춘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도서관들에도 빛나는 시간들이 있었다는 걸 후세의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이제는 낡은 서류철의 묶음으로만 남아 만지면 부스러질 것 같은, 1980~1990년대 손으로 또박또박 쓴 구입 희망 도서 목록과 서점상들의 납품서 목록, 서적 구입 기안서, 매매 당시의 수기 영수증들을 살피고 있노라면, 오늘날 인문학의 처지와는 사뭇 다른, 이제 막 성장하는 지역 사립대 도서관의 넘쳐나는 패기와, 이제는 퇴임하거나 돌아가신 원로 선생님들의 소장학자 시절의 열정이 절로 느껴지며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한편에서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아울러 드는 건 그저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울산대학교 #대학도서관 #옥재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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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전문가들이 계기가 되어 힘들게 발굴한 책이 낡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폐기된다면, 앞으로 누군가를 통해 지식 공유가 될 기회도 사라지는 거네요.
전자도서로 카피해야하지 않을까요.
당시 조선으로 파견된 선교사나 신부들이 보내온 편지가 그득한데,
(17세기 부터- 당시는 명에 파견된 주교 자료. - 19세기까지 많은데 주로 조선 것은 19세기 것이 대부분이라고 )
문제는 19세기 필기로 쓰인 불어를 읽을 사람이 거의 없다고.
(불어로 쓰인 이유는 예수회 사람들의 공용어가 불어였다군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19세기 필기체 불어를 읽어서
19세기 한자와 국어로 전환해 생각할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나름 다행이라면 서양에서 나름 알파벳 필기체에 대한 ocr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거 라고 할까요.
(본문 중에 오타가 있네요. '조선문학급어학사'는 '조선문자 급 어학사'의 오타입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2012